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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스크랩] 3월 16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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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마카르(3.16)

신분 : 주교

연대 : 1010년경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출생한 성 그레고리우스 마카르(Gregorius Makar, 또는 그레고리오)는 리틀 아르메니아의 니크로폴리스 교외의 한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다가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설교가로서 크게 성공하였고, 그의 선임 주교가 서거할 때 주교로 승품되었다. 독수생활을 늘 갈망하던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순회 설교하던 중에 피티비엘에 자리를 잡고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특히 영적 지혜가 뛰어났고, 대중들을 사로잡는 능력이 비상하였으며 치유의 은사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덴텔리노(3.16)

신분 : 소년

연대 : 7세기

 

성 덴텔리누스(또는 덴텔리노)는 성 빈첸시오 마델가리우스(Vincentius Madelgarius, 9월 20일)와 성녀 발데트루디스(Waldetrudis, 4월 9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은 메스(Metz)의 주교인 성 란데리쿠스(Landericus, 4월 17일)이고, 그의 누이들도 모두 성녀로 공경을 받는 성녀 알데트루디스(Aldetrudis, 2월 25일)와 성녀 마델베르타(Madelberta, 9월 7일)이다. 그는 7살 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덴틀린(Dentlin)으로도 불린다.

 

디오니시오(3.16)

라르고(3.16)

타시아노(3.16)

펠릭스(3.16)

힐라리오(3.16)

신분 : 순교자

연대 : 284년

지역 : 아퀼레이아

 

 이탈리아 아퀼레이아의 주교인 성 힐라리우스(Hilarius)와 그의 부제인 성 타티아누스(Tatianus) 그리고 평신도인 성 펠릭스(Felix), 성 라르구스(Largus),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이들 모두는 누메리아누스 황제 때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데니스(Denis)로도 불린다.

 

로베르토 달비(3.16)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589년

 

요한 아미아스(Joannes Amias)와 로베르투스 달비(Robertus Dalby, 또는 로베르토)는 요크셔(Yorkshire) 출신으로 프랑스 랭스(Reims)의 두에 대학교를 마치고 사제로 서품된 후 1589년에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 요한은 7년 정도 선교하였고, 로베르투스는 1년 남짓 활동하였다. 이들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아가피토(3.16)

신분 : 주교

연대 : 4세기

지역 : 라벤나

 

 성 아가피투스(또는 아가피토)는 이탈리아 라벤나의 주교였다. 그는 교회 미술에서 주교관과 문장 사이에 서 있는 주교로 표현된다.

 

아브라함 키두나이아(3.16)

신분 : 은수자

연대 : 6세기경

 

성 아브라함 키두나이아는 메소포타미아의 에데사(Edessa) 교외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부모들이 결혼을 강요하면서 신부를 골라 두었지만 아브라함 자신은 독신생활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입 밖에 발설할 수는 없었다. 당시의 결혼 풍습은 7일 동안 결혼 축제를 계속했는데, 그는 7일째 되는 날에 어느 사막으로 숨어버렸다. 그를 찾는 수색작업이 끊임없이 계속되었지만 모두 허사로 끝났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이 사막에 있는 그의 은둔소를 발견하여 억지로 그를 끌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부모들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기부하라는 위임장을 친구들에게 써 주었다. 아브라함 자신에게는 시계와 염소털옷 그리고 몇 개의 식기만 남겼다.

그는 하루하루의 삶을 자신의 마지막 날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였다. 그의 성덕이 차츰 알려지자 에데사의 주교가 그에게 은둔소를 떠나 백성들에게 설교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여, 그는 결국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주교에게 요청하여 이교도들이 득실거리는 키두나에 성당을 짓도록 하고 그곳을 자신의 본거지로 삼았다. 아브라함은 잔잔한 미소와 인내심 그리고 끊임없는 기도를 통하여 우상숭배에 빠진 주민들을 감동시킴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선교활동 중에 혹시라도 이 세상일에 마음이 흔들릴까봐 늘 조심하다가 결국은 은퇴하여 자신의 은둔소로 돌아가서 여생을 지냈다. 그는 70세에 운명하였다. 그는 아브라함 키두니아(Abraham Kidunia)로도 불린다.

 

에우세비아(3.16)

신분 : 수녀원장

연대 : 627-680년

지역 : 아마예

 

성녀 에우세비아는 오스트레반트(Ostrevant)의 성 아달발두스(Adalbaldus, 2월 2일)와 성녀 릭트루다(Rictrudis, 5월 12일)의 딸이다. 남편이 살해된 뒤 성녀 릭트루다는 두 딸과 함께 마르시엔(Marcienne) 수도원으로 은거하였다. 이때 그녀는 맏딸 에우세비아를 아마예 수도원으로 보내어 그녀의 시할머니인 성녀 게르투르다(Gertrudis, 12월 6일)의 지도를 받게 하였다. 성녀 게르투르다가 사망했을 때 성녀 에우세비아는 불과 12살이었지만 성녀의 대를 이어 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 당시에 어쩔 수 없는 관습 중의 하나였다. 왜냐하면 막강한 집안의 사람을 원장으로 세움으로써 내외적으로 안정과 도움을 받으려는 자구책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녀 에우세비아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덕이 출중해져 주위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 젊은 원장이지만 매우 현명하게 처신하였고, 성녀 게르트루다 시대처럼 수도원 규칙을 다시 손보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사실 그녀가 죽은 후에도 수도원 내부 문제에는 아무런 요동이 없을 정도로 거의 완벽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나이 40세가 되었을 때 뜻하지 않는 죽음을 당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지금 온 방안에 큰 빛이 퍼지고 있다”고 말한 즉시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요한(3.16) (복자)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1183년

지역 : 비첸차

 

 이탈리아 크레모나(Cremona)의 소르디 가문 태생인 요한 소르디(Joannes Sordi)는 16세 때에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다. 8년 후에 그는 성 빅토르(Victor) 수도원장이 되었고, 1155년에는 생 로랑 수도원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빅토르 4세의 이름으로 성 베드로좌를 요구하는 산타 체칠리아의 추기경인 옥타비아누스를 반대하고 교황 알렉산데르 3세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황제 프레데리쿠스 바르바로사로부터 추방당하였다. 

그는 만투아(Mantua) 지방에서 몇 년 동안이나 고적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는 엄격한 생활을 계속했고, 음식과 의복 그리고 집안 가재도구 등에도 세심할 정도로 가난을 지켰다. 그는 만투아의 주교, 그 다음에는 비첸차의 주교로 봉직하였는데 대중적인 주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반대자들로부터 살해당하였는데, 비첸차의 주민들이 모두 슬픔과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살해자를 색출하여 그 집에 불을 지르고 소란을 피웠으나 그를 지원했던 이들이 살인자를 몰래 도망시켰다고 한다.

 

요한 아미아스(3.16)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589년

 

요한 아미아스(Joannes Amias)와 로베르투스 달비(Robertus Dalby)는 요크셔(Yorkshire) 출신으로 프랑스 랭스(Reims)의 두에 대학교를 마치고 사제로 서품된 후 1589년에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 요한은 7년 정도 선교하였고, 로베르투스는 1년 남짓 활동하였다. 이들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율리아노(3.16)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안티오키아

 

 실리시아(Cilicia)의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의 고향에서는 그를 일컬어 ‘아나자르부스(Anazarbus)의 율리아누스’라고 부른다. 그는 많은 고문을 받고 자루에 묶인 채 바다에 던져졌기 때문에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는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는 자신의 강론에서 자주 그를 언급하였다.

 

토렐로(3.16) (복자)

신분 : 은수자

연대 : 1282년

지역 : 포피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의 포피 출신인 토렐로는 열성적인 부모의 배려로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해왔으나 부친을 잃은 뒤부터 나쁜 길로 접어들었다. 하루는 같은 패거리들과 함께 나무공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닭장에서 수탉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팔 아래 앉아서 세 번 울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자신의 잘못을 통절히 뉘우치게 되었다. 그는 이것이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하고 그길로 산 페델레(San Fedele) 수도원으로 찾아가서 고백을 한 후 권고 말씀을 따르게 되었다. 

그는 고향 포피를 떠나 8일 동안 숲 속을 방황하다가 어느 큰 바위 밑에 쉴 곳을 마련하여 8일을 머문 뒤 은둔소 예정지를 확정하였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에 은둔소 예정지로 돌아갔다. 그는 이어서 움막을 짓고 고행복을 입고서 철저한 회개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고, 빵과 물도 없이 이틀씩 단식하곤 했으며, 평소의 음식은 빵 한 조각과 냉수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토렐로는 거의 40년 동안 은수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에게는 수많은 영적 은혜들이 따랐고 기적이 수없이 많았다. 그는 발롬브로사 혹은 프란치스코 회원이라고도 하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어느 수도회에도 속하지 않았던 포피의 어느 원장으로부터 수도복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파트리치오(3.16)

신분 : 주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오베르뉴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또는 파트리치오)는 로마 순교록에 프랑스 오베르뉴의 주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오베르뉴 교구 주교 목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필사자의 잘못된 기록으로 인해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성 파트리키우스(3월 17일)와 중복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에스파냐의 항구도시인 말라가(Malaga)에서는 그 도시 출신 주교인 성 파트리키우스의 축일을 3월 16일에 지내고 있다. 그 지역 전승에 따르면 성 파트리키우스는 오베르뉴로 가서 그곳에서 307년에 사망하였다.

 

파파(3.16)

신분 : 순교자

연대 : 300년

지역 : 리카오니아

 

   성 파파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고대 소아시아 중남부 지방인 리카오니아에서 순교하였다.

 

핀니안 로바르(3.16)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560년

 

 아일랜드 렌스터(Leinster)의 브레지아(Bregia)에서 태어난 성 핀니안 로바르는 성 콜룸바(Columba)의 제자로서 수학한 뒤에 패트래드(Fathlad) 주교에 의하여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가 ‘로바르’, 즉 나병환자(the Leper)란 별명을 얻게 된 것은 그 자신이 몇 년 동안 앓아오던 나병 때문이었다. 그는 덕행과 기적으로 좋은 명성을 얻었는데, 특히 그의 치유 은사가 돋보였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한번은 어떤 부인이 태중 소경에다 벙어리이며 나병환자이던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왔다. 이 성인이 밤낮으로 기도하고 고행하여 기적적으로 치유하여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아일랜드 남서부 케리(Kerry)의 인니스팰런(Innisfallen)에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으나, 렌스터의 클론모어(Clonmore) 수도원에서 생활한 기간이 더 길다. 그 후 그는 성 콜룸바가 원장직을 사임한 더블린(Dublin) 근교 스워드(Swords)로 가서 원장이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30여 년 동안 원장으로 봉사하다가 선종하였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출처 : 별을 헤는사람들
글쓴이 : 바오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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