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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스크랩] 4월16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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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스토(4.16)

카리시오(4.16)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칼리스투스(또는 갈리스토)와 성 카리시우스(Charisius)를 비롯한 9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코린토스(Corinthos)에서 바다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다.

 

드로고(4.16)

신분 : 은수자

연대 : 1105-1189년

 

드루온으로도 알려져 있는 성 드로고는 플란더즈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태어나서부터 고아로 자랐다. 18세부터 그는 여러 성소를 방문하는 순회 통회자가 되어 순례하였다. 그런 다음에 드루고는 세부르그에서 6년 동안 목동으로 생활하였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의 성덕을 높이 받들고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하였다. 그는 또 다시 순례의 길에 올랐고, 마침내 세부르그에서 죽을 때까지 거의 40년 동안을 은수자로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목동들의 수호성인이다.

 

루페르코(4.16)

마르티알리스(4.16)

사투르니노(4.16)

수체소(4.16)

아포데미오(4.16)

에벤시오(4.16)

엔크라티스(4.16)

옵타토(4.16)

우르바노(4.16)

율리아(4.16)

체칠리아노(4.16)

퀸틸리아노(4.16)

펠릭스(4.16)

푸블리오(4.16)

프론토(4.16)

프리미시보(4.16)

 

신분 : 순교자

연대 : 304년

지역 : 사라고사

 

 30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지방장관 다키아누스가 다스릴 때 에스파냐의 사라고사에서 18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성 옵타투스(Optatus), 성 루페르쿠스(또는 루페르코), 성 수케수스(Successus),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 성 우르바누스(Urbanus), 성녀 율리아(Julia), 성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 성 푸블리우스(Publius), 성 프론토(Fronto), 성 펠릭스(Felix), 성 체칠리아누스(Caecilianus), 성 에벤티우스(Eventius), 성 프리미티부스(Primitivus), 성 아포데미우스(Apodemius) 그리고 4명의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사라고사에 잠시 살았던 성 프루덴티우스(Prudentius, 4월 6일)는 후에 그들의 순교에 대해 기록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1389년 사라고사에서 발견되었다.

 

베네딕토 요셉 라브르(4.16)

 

신분 : 평신도, 증거자

연대 : 1748-1783년

 

성 베네딕투스 요셉 라브르(Benedictus Josephus Labre, 또는 베네딕토)는 부유한 상인의 15자녀 가운데 맏이로 불로네 근교에서 태어났다. 1770-1776년 사이에 그는 수차에 걸쳐 수도회에 입회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너무도 신중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하였다. 그런 뒤에 그는 로마(Rome)의 순례 길에 나섰는데 맨발로 구걸하면서 기도 중에 걸어갔다. 그로부터 3-4년 동안 그는 서유럽의 성지 이곳저곳을 순례했는데, 이탈리아의 로레토(Loreto), 아시시(Assisi) 그리고 바리(Bari), 스위스의 아인지델른(Einsiedeln), 프랑스의 파레이르모니알(Paray-le-Monial),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등지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어디를 가나 항상 맨발로 여행하였고, 노천이나 추녀 밑에서 밤을 새웠으며 옷은 누더기였고, 몸은 더러웠으며 음식은 문전걸식하였고, 돈을 얻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말 수는 적었으나 기도는 많았으며, 다른 사람들의 냉대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1774년부터 그는 로마에 머물렀는데, 낮에는 성당에서 기도로 지냈고, 밤에는 콜로세움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건강을 해쳤기 때문에 걸인 수용소를 찾을 형편이 되었다. 마침내 그는 성당에서 허물어지듯 쓰러진 후 어느 푸주한의 집에서 임종을 맞았다. 

로마의 사람들은 이 새로운 프란치스코 성인의 높은 성덕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1881년 그는 그들의 성인으로 높이 받들어졌다. 성 베네딕투스 라브르는 서방 교회보다 동방 교회에 더 많이 알려진 수덕적인 성소를 받은 분이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가 된 그리스의 살로이와 러시아의 유로디비에 견줄만한 위대한 성덕을 쌓았다. 그는 또한 40시간 성체조배 신심의 전파자였다. 그는 1860년에 복자품에 올랐고, 1881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빌리암(4.16)

신분 : 은수자

연대 : 1317년

지역 : 폴리치

 

빌리암 그노피(William Gnoffi)는 이탈리아 팔레르모(Palermo) 근교 폴리치 출신으로 카스텔누오보(Castelnuovo) 근방에서 한동안 은수자로 살다가 걸식 수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어느 여인의 끈질긴 유혹에 휘말려서 수도원을 떠나 세속으로 돌아가려는 욕망이 끊임없이 타올랐다고 한다. 그런 고민에 빠진 그에게 하느님의 계시가 내렸다. 그 후 그는 시칠리아(Sicilia) 산으로 올라가서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독수생활에 빠져들었다. 여기서 그는 11년 동안 살다가 선종하였고, 그의 덕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윌리엄으로도 불린다.

 

아르칸젤로(4.16)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513년

지역 : 볼로냐

 

 아르칸젤루스(또는 아르칸젤로)의 생애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볼로냐 시민들의 폭동 때문에 부친과 형제들을 잃은 뒤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에 입회하여 유명한 수도자가 된 것은 틀림없다. 한때 그는 부친과 형제들의 살인자에게 복수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모든 일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자마자 그 자리에서 복수를 포기했다고 한다. 아르칸젤로가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의 대주교로 임명된 적이 있다고 하지만,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유해는 구비오(Gubbio)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성당에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요아킴(4.16)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305년

지역 : 시에나

 

이탈리아의 시에나 태생인 요아킴은 그 지방에서 유명한 피콜로미니가(家)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성모신심에 남다른 열성을 보였던 그는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기를 즐겨하였다. 14세 때 그는 성 필리푸스 베니치(Philippus Benizi)로부터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수도복을 받았으나, 자신은 사제직에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대신 미사에 참례할 때에는 너무나 열심이었기 때문에 종종 탈혼에 빠졌다. 그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직책을 가장 좋아하였다. 시에나 사람들의 존경을 피하기 위하여 그는 원장에게 한적한 수도원으로 보내주도록 간청하여 아레초(Arezzo)로 갔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분이었다. 시에나 사람들이 그를 백방으로 찾아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는 47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카이오(4.16)

크레멘시오(4.16)

신분 : 순교자

연대 : 304년

 

성 카이우스(Cajus, 또는 카이오)와 성 크레멘티우스(Crementi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에스파냐의 사라고사(Zaragoza)에서 순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해에 발발한 두 번째 박해 때 순교했기 때문에 사라고사의 18명의 순교자들(4월 16일)에 속하지는 않는다.

 

콘타르도(4.16)

신분 : 순례자

연대 : 1249년

지역 : 에스타

 

성 콘타르도 순례자는 이탈리아 페라라(Ferrara)의 에스테 가문 출신으로 두 동료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순례한 후, 높은 언덕에 올라가 브로니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만일 하느님이 원하신다면 이 아름다운 곳에서 죽고 싶다는 예언적인 말로 기도하였다. 이런 기도를 바친 직후부터 그는 너무나 심한 고통 때문에 브로니에 그대로 머물게 된 것이다. 그의 병이 장기적인 치료를 요한다는 결론이 났을 때 두 동료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콘타르도를 무섭게 생각한 집주인은 그를 헛간으로 내쫓았으므로 짚더미 위에서 고통을 참아 받아야 하였다. 그의 죽음 이후 높은 성덕을 증명하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자 비로소 그가 위대한 성인으로 모셔지게 되었다고 한다.

 

투리비오(4.16)

신분 : 주교

연대 : 450년경

지역 : 아스투리아스

 

 성 투리비우스(또는 투리비오)는 프리실리아누스 이단이 에스파냐의 여러 지역에서 판을 치고 있을 당시에 아스투리아스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릇된 사도적 저술에 기반을 둔 이 이단들은 교묘한 마니교도와 비슷했고 성직자나 평신도들에게 큰 호소력이 있어 보였다. 투리비우스 주교는 처음부터 이단의 간교한 술책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강력히 대응했다. 그는 대 레오 교황의 강력한 지지자로 부상되었고 그래서 투리비우스와 레오 교황 사이에는 이 이단에 따른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차례에 걸쳐 서신으로 협의하였다. 투리비우스의 이런 노력에 따라 이 이단은 크게 흔들렸다. 이때를 기해 투리비우스는 교구 내의 성직자들의 기강을 바로 잡고 신자들의 윤리성 회복에 박차를 가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파테르노(4.16)

신분 : 수사, 주교

연대 : 5 -6세기경

지역 : 웨일스

 

성 파테르누스(또는 파테르노)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의 레타비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아내와 어린 파테르누스를 고향에 남겨두고 아일랜드로 건너가서 은수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역시 장성하자 부친의 뒤를 따르기로 결정하고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웨일스 지방으로 갔다. 그들은 란바다른 포르(Llanbadarn Fawr)라고 알려진 곳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성 파테르누스가 원장 겸 그 지역의 주교로서 활약하였다. 이 수도원의 영향으로 성 다윗(David) 같은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였다. 파다른(Padarn)으로도 불린다.

 

파테르노(4.16)

신분 : 주교

연대 : 564년

지역 : 아브랑슈

 

 성 파테르누스(또는 파테르노)는 푸아티에(Poitiers) 출신으로 그의 부친은 공직에 있었다. 그는 소년 시절에 앙시옹(Ansion)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그 얼마 후에는 동료 수도자인 성 스쿠빌리우스와 함께 노르망디(Normandie)의 쿠탕스(Coutance)라는 황량한 지방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는 그랑빌이 가까운 쉬시에 정착하였는데 주변의 많은 은수자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됨으로써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70세의 고령에 아브랑슈의 주교로 임명되어 13년 동안 교구를 지도하였다. 파테르누스는 파리 공의회(Council of Paris)에 참석했고, 국왕 킬더베르트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웠다. 페어(Pair)로도 불린다.

 

프룩투오소(4.16)

신분 : 주교

연대 : 665년

지역 : 브라가

 

서고트족(Visigoths) 왕가에 예속된 장교의 아들로 에스파냐에서 태어난 성 프룩투오수스(또는 프룩투오소)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희망하다가 양친이 사망하면서부터 자기 성소를 찾게 되었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그는 가난한 사람과 노예 해방을 위하여 혹은 수도원을 세우는데 사용하였다. 그가 첫 번째로 세운 수도원은 비에르조(Vierzo) 근교의 산에 세운 것이었다. 그 후 그는 이집트에서 은수자로 정착하려고 하였으나 왕의 명에 의해 좌절되었다. 656년 그는 브라가(현재는 포르투갈의 도시)의 대주교로 승품되었고 톨레도 공의회(Council of Toledo)에도 참석하였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출처 : 별을 헤는사람들
글쓴이 : 바오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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