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인축일

[스크랩] 5월 9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5. 11.
반응형
SMALL

니콜라오 알베르가토(5.9)

 

신분 : 추기경

연대 : 1443년경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우스 알베르가투스(Nicolaus Albergatus, 또는 니콜라오 알베르가토)는 법률을 공부하던 중 20세의 나이로 카르투지오회에 입회하였다. 탁월한 그의 능력이 너무나 돋보였으므로 그는 여러 수도원의 장상을 역임하였으나 항상 단순한 집에서 살았고, 또 그의 수도원은 가난한 사람의 거처와 다름없이 꾸몄다고 한다. 교황 마르티누스 5세(Martinus V)는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외교 사명을 맡긴 일이 있다. 1426년 그는 마침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그는 흔히 ‘평화의 천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것은 그의 외교 수완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페라라 공의회(Council of Ferrara)와 피렌체 공의회(Council of Firenze)의 개회를 맡았고, 그리스와의 화해를 모색한 공로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보호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를 방문하던 중에 시에나(Siena)에서 서거하였다.

 

베아토(5.9)

신분 : 은수자

연대 : 112년?

지역 : 비텐베르크

 

 성 베아투스(또는 베아토)의 생애는 거의 모르는 형편인데, 전설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잉글랜드(England)에서 사도 바르나바(Barnabas)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며, 성 베드로(Petrus)에 의하여 스위스의 복음화를 위하여 파견되었는데, 로마(Rome)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이의 이야기는 잘 모르고, 다만 그는 112년경에 한적한 산꼭대기의 한 동굴에서 임종하였다고 전해온다. 용을 물리쳤다는 전설까지 있는 그의 동굴은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으며, 츠빙글리파가 폐쇄할 때까지 순례객이 끊이지 않았다. 성 베드로 카니시우스(Petrus Canisius)가 그의 생애를 이야기하였고, 그의 놀라운 신심을 전파시켰다.

 

제론시오(5.9)

신분 : 주교

연대 : 501년

지역 : 체르비아

 

 성 게론티우스(또는 제론시오)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이탈리아 체르비아 교구의 주교였다는 것뿐이다. 또 그는 교황 성 심마쿠스(Symmachus)가 주재한 로마 시노드(Synod of Rome)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교회는 그를 순교자로 간주한다.

 

파코미오(5.9)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290?-346/347년

지역 : 이집트

 

'왕의 독수리'라는 뜻을 지닌 성 파코미우스(또는 파코미오)는 290년경 북이집트 에스네(Esneh)에서 이교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310년경 군대에 징집되어 이곳저곳에서 복무하던 중 라토폴리스(Latopolis)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매력을 느끼고 군대를 떠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은수자 성 팔레몬(Palaemon, 1월 11일)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이집트 상부 테베(Thebes, 오늘날의 룩소르 Luxor 근방)의 타벤니시(Tabennisi)라는 황폐한 마을에 수도원을 세우라는 환시를 보고 320년경 그곳에 움막을 세웠다. 그러자 즉시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어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 후 그는 테베에만도 6개의 큰 수도원을 세웠고 자매들을 위한 수도원도 세웠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를 철저히 배격했고, 라토폴리스의 주교회의를 공공연히 비난하였다. 그가 임종할 즈음에는 그의 수하에 약 3천명의 수도자들이 있었고, 2개의 수녀원도 있었지만 사제로 서품되지는 않았다. 그는 공주(共住) 수도원 제도의 창시자로 꼽히며,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역시 그의 규칙을 여러 번 인용하여 자신의 규칙을 만들만큼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였다.

 

헤르마스(5.9)

신분 : 사도들의 제자, 교구

연대 : 2세기

지역 : 로마

 

 성 헤르마스는 2세기 초 로마에 살던 그리스도교 신자로 교부 중 한 명이다. 그는 아마도 유태인 내지 유대적 교육을 받은 자이며, 그리스어로 환시적인 개심(改心)을 권하는 묵시문학적인 책 “헤르마스의 목자”(Shepherd of Hermas)를 저술하였다. 그는 사도교부로 볼 수 있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 자신의 저서에 의하는 것밖엔 알 길이 없다. 그는 원래 로데라는 부인의 노예로 로마에 팔려갔다가 해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후 그는 결혼을 하고 상인이 되어 때로는 부정수단으로 축재를 했으나, 박해 때 전 재산을 잃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식들에게 의해 밀고 당하였다. 그러나 마지막에서 그를 비롯한 가족 전원이 회개하였다. 그 자신의 서술에 의하면 그는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 30?∼101?, 교황, 사도교부)의 친구이고, 무라토리 단편(Muratorian canon)에 의하면 교황 성 비오 1세(Pius I)의 형제이며, 오리게네스(Origenes)에 의하면 신약성서 로마서 16장 14절에 나오는 헤르마스와 동일 인물이다.

   “헤르마스의 목자”는 고대 라틴역에 의하면, 5편으로 된 환시 또는 묵시(visiones), 12편으로 된 계명(mandata), 10편으로 된 비유(similitudines)의 3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처음에 노부인이 교회를 대표하여 헤르마스와 그의 가족 모두가 회개하도록 촉구하고, 제5편의 환시에서는 노부인 대신 한 목자가 회개의 천사로서 등장한다. 이 책의 이름도 이 목자에서 딴 것이다. 제2부에서 헤르마스는 유일신에 대한 신앙 · 성실 · 자선 등 그리스도교 도덕을 가르치고 있고, 제3부에서는 여러 가지 그리스도교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2-3세기 그리스 교회에서는, 이를테면 리옹(Lyon)의 주교 성 이레네우스(Irenaeus, 6월 28일),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클레멘스(그리스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서방교회 신학자) 등에 의해서 이 책은 성서와 마찬가지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도 증언하고 있듯이 주로 그 도덕적 가치가 존중되어 영세 지원자들의 교재로 사용되었다. 시나이 사본에서는 신약성서 다음에 넣어졌으나, 라틴 교회에서는 별로 중용(重用)되지 않았다. 이 책의 주요 목적은 한 번은 죄를 용서받을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려 하는 데 있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출처 : 별을 헤는사람들
글쓴이 : 바오로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