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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스크랩] 5월 24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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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타(5.24)

신분 : 순교자

연대 : 1186년

지역 : 페레아슬라브

 

성 니케타(또는 니체타)는 원래 페레아슬라브와 인근 마을 로스토프의 세리였다. 그는 자신의 부도덕한 생활과 탐욕스런 마음 그리고 직업상의 월권 때문에 모든 시민에게 외면을 당하며 지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를 잡아주셨다. 그는 우연히 이사야 1장 16절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몸을 씻어 정결케 하여라. 내 앞에서 악한 행실을 버려라. 깨끗이 악에서 손을 떼어라.” 이 말씀으로 크게 감명을 받은 그는 아내와 가족과 소유물을 모두 버리고 극도의 보속생활이 가능한 어느 수도원으로 잠적해버렸다. 그는 고행복을 입고 지냈으며, 주행 수도자들처럼 기둥 위에서 생활하였다. 그런데 그가 입었던 고행복이 마치 은으로 수놓은 옷으로 보였기 때문에 강도들이 그를 살해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순교자로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윗 1세(5.24)

 

 

신분 : 왕

연대 : 1084-1153년

지역 : 스코트렌드

 

말콤 3세와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의 아들인 성 다윗은 1093년에 잉글랜드(England)의 노르만 궁에 파견되었다가, 1113년에 노샘프턴(Northampton) 백작의 과부인 마틸다와 결혼하였으며, 그의 형 알렉산데르 1세가 국왕이 될 때 자신은 컴브리아(Cumbria)의 백작이 되었다. 그 후 그는 형을 승계하여 스코틀랜드의 국왕이 되었고, 잉글랜드와의 오랜 투쟁을 하였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보게 되어 1139년에는 잉글랜드와 평화를 이룩하였다. 그는 수많은 교구와 수도원을 세웠으며, 스코틀랜드에 노르만 법을 제정하였고 연방 법원을 세웠으며, 정의와 사랑 그리고 자비가 온 누리에 빛나도록 노력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칼리슬에서 운명하였는데,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 전례력에서 모두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공적으로 시성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도나시아노(5.24)

로가시아노(5.24)
신분 : 순교자

연대 : 289/304년

지역 : 낭트

 

 막시미아누스 황제 치하의 낭트에는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또는 도나시아노)라는 젊은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유명한 로만 갈로(Roman-Gallo) 집안 아들이자 열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박해가 한창 진행되던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 성 로가티아누스(Rogatianus)는 동생의 표양과 신심에 감동되어 영세받기를 원하였으나, 주교가 피신하였기 때문에 성사를 받지 못하였다.

이때 황제는 주피터와 아폴로 신상에 제사 바치기를 거부하는 이들을 체포하라는 칙서를 내리고 잡히는 대로 사형을 선고하였다. 집정관이 낭트에 도착할 즈음에 도나티아누스가 체포되었다. 그는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투옥되었는데, 그를 따라 로가티아누스도 신앙 때문에 감옥에 들어왔다. 동생은 형이 아직 영세를 받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터이라 그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결국 로가티아누스는 피로 인한 혈세를 받게 되었다. 두 형제는 집정관 앞으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머리에는 창을 받았다. 이 두 순교자들은 ‘낭트 사람’으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디오클라(5.24)

세르빌리오(5.24)

실바노(5.24)

조엘로(5.24)

펠릭스(5.24)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조엘루스(Zoellus), 성 세르빌리우스(Servilius), 성 펠릭스(Felix), 성 실바누스(Silvanus)와 성 디오클라는 순교하였으나 그 시기나 순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란프랑코(5.24) (복자)

신분 : 주교

연대 : 1005-1089년

지역 : 켄터베리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 출신인 란프랑코는 고향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한동안은 변호사로 지내다가, 1035년경에 프랑스로 갔다. 그는 노르망디(Normandie)의 아브랑슈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또 가르치기도 하다가 1042년에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불과 3년 뒤에 그곳 수도원의 원장 겸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됨으로써, 그의 성덕과 학문이 크게 알려졌다. 

그는 베렌가르와 성체성사에 관한 논쟁을 벌였고, 이 때문에 그는 레오 9세의 초청으로 로마 회의에 참석하여 베렌가르가 단죄를 받는데 큰 몫을 하였다. 1063년경에 그는 카엔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1070년에는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노르만 전례를 영국교회에 심었고, 사제 독신제를 강력히 시달한 1076년의 윈체스터 시노드(Synod of Winchester)에도 참석하였다. 그의 저서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사”는 중세시대의 주요 저서로 널리 읽혀졌다.

 

로부스티아노(5.24)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밀라노

 

성 로부스티아누스(또는 로부스티아노)는 초기 밀라노의 순교자였다.그는 아마도 밀라노에서 공경을 받고 성 마르코(Marcus)와 함께 8월 31일에 기념하는 성 로부스티아누스와 동일인으로 여겨진다.

 

마나엔(5.24)

신분 : 예언자

연대 : 1세기

 

성 마나엔은사도행전 13장 1절에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와 함께 자란 사람으로 안티오키아(Antiochia) 교회의 예언자와 교사 중의 한 명으로서 언급되었다. 전통적으로 그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사망한 것으로 믿어져왔다.

 

마르치아나(5.24)

수산나(5.24)

팔라디아(5.24)

신분 : 순교자

연대 : 2세기

 

성녀 수산나(Susanna)와 성녀 마르키아나(또는 마르치아나) 그리고 성녀 팔라디아(Palladia)는 성 멜레티우스(Meletius, 5월 24일)가 지휘하던 부대의 군인들의 부인들이다. 그들은 자녀들과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갈라티아(Galat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행전은 전설적이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은 종려가지를 들고 있는 세 명의 여성 순교자로 그 옆에 어린이들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멜레시오(5.24)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로마 순교록은 거룩한 순교자 성 멜레티우스(또는 멜레시오)의 수난과 군 장교였던 그와 그의 동료 252명이 갖가지 방법으로 고통을 받고 순교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그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빈첸시오(5.24)

신분 : 신부

연대 : 445년

지역 : 레랭

 

성 빈첸시오(Vincentius)는 프랑스 트루아(Troyes)의 성 루푸스(Lupus)의 동생으로서 레랭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에는 군인이었다. 434년경 그는 이 수도원의 수도자 및 사제로 생활하던 중에 이단을 반박하는 저서(Commonitorium)를 출간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자신을 이방인 혹은 이 세상의 순례자로 묘사하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 외에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소리치고 있다. 그는 이단을 반박하는 자료로서 교부들의 뛰어난 저서와 신학 이론을 제시했는데, 모두 42장으로 구성된 저서였다. 

성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o)는 “작은 칙서와 같은 지극히 귀중한 저서”로 평가하였다. 여기서 교회의 관심을 끈 대목은 성서가 참 진리의 유일한 기준으로 사용되지 않고, 교회의 성전과 함께 그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가 이 저서를 쓸 때에는 레랭의 원장과 수많은 수도자들이 반펠라기우스 주의를 신봉했던 점을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정통교리 수호를 위하여 이단의 주장을 이처럼 수용하여 반박한 책은 아주 드문 것이다.

 

빈첸시오(5.24)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포르토

 

   성 빈첸시오(Vincentius)는 현재는 사라진 옛 로마의 항구였던 포르토 로마노(Porto Romano)에서 순교하였다.

 

아프라(5.24)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브레시아

 

성녀 아프라는 이탈리아의 브레시아에서 순교하였다.그녀는 성 파우스티누스(Faustinus 2월 15일)와 성 요비타(Jovita) 순교자 형제와 관련이 있다. 그 외의 전설은 별로 신빙성이 없다.

 

요한(5.24)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1613년

지역 : 프라도

 

레온(Leun)의 모르고브레시오(Morgobresio)의 에스파냐 귀족 가문 출신인 성 요한(Joannes)은 살라망카(Salamanca)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1584년에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다. 사제직에 오르자마자 그는 이방인들의 선교사가 되려고 원하였으나 그의 소원은 곧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3년 후 그는 모로코(Morocco) 선교단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일행과 더불어 모로코에 도착하자마자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상대로 하여 활동을 개시하여 큰 성과를 얻었지만 자신도 잡히는 몸이 되었다. 그는 산 채로 불에 타 숨졌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출처 : 별을 헤는사람들
글쓴이 : 바오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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