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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6월 14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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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냐(6.14) (동정)

아나스타시오(6.14) (부제)

펠릭스(6.14) (수도승)

신분 : 순교자

연대 : 853년

 

성 아나스타시우스(Anastasius)는 에스파냐 코르도바(Curdoba)에 있는 성 아키스클루스(Acisclus) 성당의 부제였다.

그는 후에 근처 타바노스(Tabanos)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수도승이 되었다.

성 펠릭스(Felix)는 알칼라(Alcala)에서 베르베르(Berber, 북아프리카 원주민의 한 종족)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나서 아스투리아스(Asturias)에서 서원을 한 후 성 아나스타시우스와 같은 수도원으로 옮겼다.

 성녀 디냐 역시 같은 수도회의 수녀였다. 이들 세 명은 코르도바 최초의 순교자들로서 칼리프의 명령에 의해 참수되었다.

 

루피노(6.14)

발레리오(6.14)

신분 : 순교자

연대 : 287년?

 

 성 발레리우스(Valerius)와 루피누스(또는 루피노)는 로마(Rome)에서 파견되어

프랑스 지방을 선교하기 위한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수아송(Soissons) 지방에서 선교하던 중에 체포되었다.

그들은 일단의 주요 인물 중의 지도자였으므로 가까운 숲 속의 어느 동굴에 숨었다고 한다.

그러나 곧 수색대가 도착하여 체포되었고,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리카르도(6.14)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046년

지역 : 생반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는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늘 사용하던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베르됭(Verdun)의 생반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기 전에는 랭스(Reims)의 주교좌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리카르두스는 클뤼니(Cluny)의 성 오딜로(Odilo, 1월 1일)와 그에게 수도생활을 권유했던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 7월 13일) 황제의 친구였다.

 

마르치아노(6.14)

신분 : 베드로의 제자, 주교, 순교자

연대 : 255년

지역 : 시라쿠사

 

시칠리아(Sicilia) 섬의 전설에 의하면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 또는 마르치아노)는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서방의 첫 번째 주교로서 시라쿠사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문서들을 보면 그가 3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나온다.

아마도 그는 교황에 의해 3세기에 시칠리아 섬으로 파견되었을 것이다. 그는 유대인들에 의해 탑에서 던져져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메토디오(6.14)

 

신분 : 주교

연대 : 847년

지역 : 콘스탄티노풀

 

시칠리아(Sicilia) 섬의 시라쿠사(Siracusa) 출신인 성 메토디우스(또는 메토디오)는

고향에서 공부한 뒤에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궁중 관리가 되었다.

이것은 그의 재능을 인정한 황제 미카엘 2세가 강력히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7년을 봉직한 그는 수도자가 되었고,

 키오스(Chios) 섬에 수도원을 세웠으나 총대주교 니케포루스(Nicephorus)의 요청에 따라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와서 성상 파괴주의자들을 극력 반대하고 나섰다.

그가 성상과 성물 공경의 합법성을 더욱 강력히 주장하자

그의 선임자인 니케포루스(Nicephorus)와 테오필루스 황제는 그를 고문하고 감옥으로 보냈다.

7년 동안 옥살이 하는 동안 황제가 죽고

그의 아내인 성녀 테오도라(Theodora, 2월 11일)가 섭정에 오르자 이번에는 정세가 일변하였다.

성녀 테오도라는 성상 공경을 반대한 모든 칙령을 폐기하고,

성 메토디우스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즉시 콘스탄티노플 시노드를 소집하고 성상에 관한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칙령을 재확인함으로써,

이번에는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11월 11일)와의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종증으로 운명하였다.

 

안토니오(6.14)

신분 : 순교자

연대 : 1342년

지역 : 리투아니아

 

성 요한(Joannes),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

성 에우스타키우스(Eustachius)는 모두 젊은 관리들로서 그 당시 리투아니아를 통치하던

 올지에르드 공작의 휘하에 있었다. 그들은 고향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교도들이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그리스도교를 알고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새로 받아들인 이 신앙에 너무나 충실하였고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들은 교회의 단식일에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버티다가 결국 투옥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성 요한은 1342년 4월 14일에 교수형을 받았고,

성 안토니우스는 그 해 6월 14일에, 성 에우스타키우스는 12월 13일에 각각 처형되었다.

그들은 리투아니아 사람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로부터 공경을 받고 있다.

 

에테리오(6.14)

신분 : 주교

연대 : 6세기

지역 : 비엔

 

성 아이테리우스(Aetherius, 또는 에테리오)는 프랑스 비엔의 주교였다.

 

카스토라 가브리엘리(6.14) (복녀)

신분 : 과부

연대 : 1391년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구비오(Gubbio) 태생인

카스토라 가브리엘리는 매우 아름답고 귀여운 여성으로 뭇사람의 사랑을 받는 귀족 가문의 딸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신분에 맞는 어느 법률학자와 결혼하였는데,

남편의 성격이 의외로 포악하였으므로 많은 세월을 눈물로 지내며 불행한 결혼생활을 인내로 참고 지냈다.

이 때문에 그녀는 가정에서 늘 기도와 묵상으로 신심을 단련하였고,

가까운 곳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성인에 대한 묵상으로 하루를 보내곤 하였다.

그 후 남편이 죽자 카스토라는 프란치스코 재속 3회원의 수도복을 입고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다.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자신은 기도와 고독 가운데서 여생을 보내면서 평수도자의 삶을 아름답게 살았던 것이다.

 

퀸시아노(6.14)

신분 : 주교

연대 : 연대미상

 

성 퀸티아누스(Quinctianus, 또는 퀸시아노)는 프랑스의 확인되지 않는 어느 교구의 주교였다.

 1970년 이전의 로마 순교록은 그를 프랑스 남부 로데즈(Rodez)의 주교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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