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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7월 1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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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롤리나(Carolina)(7. 1)

 

신분 :

연대 :

 

가롤리나 성녀 축일은 일년 중에 두 번으로 한 번은 베르지네 성녀와 오늘 축일을 기념하는 가롤리나 데 말베르그 성녀이다.

이분은 아직 정식으로 성인품에 오르지 않았고 복자로 올리려고 준비중이다.

 

갈로(7.1)

신분 : 주교

연대 : 486-551년

지역 : 클레르몽

 

성 갈루스(Gallus, 또는 갈로)는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클레르몽에 처음으로 이주한 사람의 아들로서,

부친이 그에게 결혼을 요구하자 수도생활에 대한 열망을 이기지 못하여 집을 뛰쳐나왔고,

그 후 쿠르농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원장은 부친의 허가를 얻을 때까지 입회를 거부하였으나,

그의 뛰어난 인품을 알게 되면서부터 기쁘게 그를 대하였다.

그 후 그는 그곳 주교의 눈에 들게 되어 서품되었고, 526년경에 주교로 서품되었다.

그의 겸손과 애덕 그리고 사도적 정열은 크게 돋보였으므로 그는 아주 후덕한 주교로 알려지게 되었다.

 

도미시아노(7.1)

신분 : 은수자, 수도원장

연대 : 440년

 

성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또는 도미시아노)는 로마(Rome) 출신의 고아로서 성장해서 프랑스 레랭(Lerins)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또한 베브론(Bebron)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마르티노(7.1)

신분 : 사도들의 제자, 주교

연대 : 2세기경

지역 : 비엔

 

프랑스 비엔의 제3대 주교인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교황 성 알렉산데르 1세(Alexander I)에 의해 그 지방의 사도로서 파견되었다.

 

세르바노(7.1)

신분 : 주교

연대 : 6세기경

지역 : 오크니

 

전승에 따르면 성 세르바누스(또는 세르바노)는 성 팔라디우스(Palladius)에 의하여 주교로 축성된 아일랜드 사람이며,

스코틀랜드의 컬로스에 수도원을 세웠고, 그곳에서 운명하여 묻혔다고 한다.

좀 엉뚱한 듯 보이는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는 왕위를 버린 가나안 왕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를 거쳐 교황까지 되었으나 나중에 교황직을 사임하고 스코틀랜드인에게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이다.

성 세르바누스는 오크니(Orkney) 섬의 수호성인이지만, 그가 이곳에 설교했는지는 의문이다. 세르프(Serf)로도 불린다.

 

세쿤디노(7.1)

카스토(7.1)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05년

지역 : 시누사

 

성 카스투스(Castus)와 성 세쿤디누스(또는 세쿤디노)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

지방 카세르타(Caserta) 부근 시누사에서 그곳의 주교이자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시메온 살로(7.1)

 

신분 : 은수자

연대 : 6세기경

 

성 시메온은 친구인 성 요한(Joannes, 7월 21일)과 함께 사해 근방의 사막으로 들어가서 29년 동안이나 회개생활을 하였다.

그는 실로 겸손 자체라 할 정도로 겸손의 덕을 닦았다.

그 후 그는 시리아의 에메사에서 잠시 동안 머무른 적이 있는데,

이때 '살로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말은 '미쳤다'는 뜻의 그리스어였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가 미치지 않았음을 알리려고 수많은 특은을 허락하셨다.

그의 사망 연대는 알 수 없지만 588년의 대지진 이후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아론(7.1)

율리오(7.1)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아론과 성 율리우스(Julius)는 영국으로 이주한 로마 사람으로

3세기 중엽에 웨일스(Wales) 남동부 만머스셔(Monmouthshire)의 체를론(Caerlon)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순교한 듯하다.

그러나 이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304년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했다고 전해 오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칙령이 영국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또 다른 두 사람의 무명 순교자는 소크라테스(Socrates)와 스테파누스(Stephanus)인데,

이들도 어떤 순교록에 보면 영국(Britain)에서 순교했다고 전하여 진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인 비티니아(Bithynia)의 오기일 것이다.

 

아론(7.1)

신분 : 구약인물, 사제

연대 :

 

성 아론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결정적으로 하느님을 체험했던 출애급 사건과 이어지는

 광야 여정 중 모세와 함께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레위 지파의 첫 번째 사제이다. 성서에서는 아론을 모세의 형제이며 공동 지도자이자,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사제 계급의 시조라고 하였다.

성 아론은 레위 지파의 후손으로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모세가 그의 동생이고(출애 6,20), 미리암은 그들의 누이였다(민수 26,59).

암미나답의 딸이며 나흐손의 누이인 엘리세바와 결혼한 뒤

나답, 아비후, 엘르아잘, 이다말을 자녀로 둔(출애 6,23)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구하려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모세와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의 나이 83세 때였다(출애 7,7).

그러나 그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성서 어디에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해 벌인 파라오와의 담판에서 그는 모세의 대변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 출애급 이후 광야 여정에서도 모세와 함께 공동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으며,

갈증과 배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탄원을 듣고(출애 16,2)

그들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를 통해 하느님께서 보여 주실 자비의 구원을 선포하였다(출애 16,6).

시나이 산에 이르러 그는 야훼가 명한 대로(출애 29,4-9) 성대한 임직식을 통해 사제로 축성되는데(레위 8장),

그의 사제직은 여러 징표들을 통해 확인된다(민수 16장; 17,16-28).

또 바란 광야에서는 모세와 더불어 가나안 땅을 정찰하고 돌아온 정찰대를 맞았으며(민수 13,25-29),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징벌을 선포하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실행하기도 하였다(민수 14,26-38).

이처럼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대부분 함께하였던

아론은 에돔 땅 경계 부근의 호르 산에서 모세와 자신의 아들 엘르아잘이 지켜보는 가운데

므리바에서의 물 사건(민수 20,12) 때 하느님이 선언하였던 것처럼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민수 20,22-29).

아론의 죽음에 관해서는 민수기 33장에서 보충되는데,

그가 죽은 날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지 40년 되던 해 다섯째 달 초하룻날이었고,

그의 나이는 123세였다(민수 33,38-39).

이스라엘의 온 집안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30일 동안 울었다고 한다(민수 21,29).

 

에파르키오(7.1)

신분 : 수도원장, 은수자

연대 : 581년

 

성 에파르키우스(또는 에파르키오)는 양친의 반대를 물리치고 세속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아마도 도르도뉴(Dordogne)의 생 치바르 수도원인 듯하다.

여기서 원장 마르티누스(Martinus)의 지도를 받으면서 불과 몇 년을 지냈지만

그의 덕행과 기적으로 인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헛된 영광을 물리치기 위하여 앙굴렘 근교의 한적한 곳으로 숨어들어가 독수생활을 시작하였으나,

그의 잠복이 오히려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그곳의 주교는 그에게 사제직을 받도록 요구하였다.

그런데 그는 은수생활을 하면서도 제자를 단 한 사람도 받지 않았다.

그 대신에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노동일을 하면서 글자 그대로 기도생활에 전념하도록 허용하였다.

그는 철저한 독수자로 일생을 마친 위대한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시바르도(Cybard)로도 불린다.

 

카릴레포(7.1)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536년?

 

성 카릴레푸스(또는 카릴레포)는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에서 태어났으나 리옹(Riom) 근교의 메나(Menat) 수도원에서 성장하였고,

성 아비투스(Avitus, 6월 17일)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함께 은수자가 되어 오를레앙(Orleans) 근교 미시(Micy) 수도원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러나 성 카릴레푸스는 사제직보다는 더욱 외로운 독수생활을 열망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의 동료를 구하여 프랑스 북서부 멘(Maine)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고대 동방의 은수자들이 지키던 엄격한 규율을 스스로 적용하며 생활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도를 받고 함께 살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찾아왔는데,

그는 이것을 수덕의 한 방편으로 여기고 끝까지 인내하며 살다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수도원을 세우게 되었다.

그의 유명한 수도원 이름은 아니솔(Anisole)이다. 그는 칼라이스(Calais)로도 불린다.

 

테오도리코(7.1)

신분 : 신부, 수도원장

연대 : 533년

 

프랑스 랭스(Reims) 출신인 성 테오도리쿠스(Theodoricus, 또는 테오도리코)는

친척의 농간에 빠져 결혼하였지만 곧 이를 바로 잡고 아내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랭스의 주교 성 레미기우스(Remigius)의 제자가 되어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몽도르’(Mont Dore)에 수도 공동체를 세웠다.

그는 수많은 개종자를 얻은 뛰어난 설교가로 명성이 높았다.

그의 부친도 아들로부터 감명을 받아 개종하였고,

테오도리쿠스 1세 왕의 눈병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치유함으로써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는 티에리(Thierry)로도 불린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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