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페(Myropes)◀
신분 : 순교자(성녀)
연대 : 251년
지역 : 키오스
그리스 에게해의 키오스 섬의 순교자인 성녀 미로페는 순교자들의 묘를 많이 순례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성 이시도루스(Isidorus, 5월 15일)의 순교 후 그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성녀 미로페와 로마 군인 암미아누스(Ammianus)는 그 일로 해서 체포되었다.
그녀는 채찍을 맞고 투옥 중에 고문의 결과로 사망하였다. 암미아누스 또한 순교하였다.
▶밀드레다(Mildred)◀

신분 : 수녀원장
연대 : 700년경
지역 : 민스터
머시아(Mercia)의 왕 미르왈드와 켄트(Kent)의 공주인 성녀 에르멘부르가(Ermenburga)의 딸이며,
성녀 밀부르가(Milburgis)와 밀드지타(Mildgitha)의 동생인
성녀 밀드레다(Mildreda)는 파리(Paris) 교외 셀레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열렬한 구혼자의 청을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타넷(Thanet) 섬에 있는 민스터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 후 그녀는 그곳의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켄트에서 열린 교회회의에도 참석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놀라운 자애심이 크게 돋보였다.
▶세라피온(Serapion)◀
신분 : 순교자
연대 : 195년
성 세라피온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통치 초기에 마케도니아(Macedonia)에서 순교하였다.
▶실라(Silas)◀
신분 : 사도들의 제자, 증거자
연대 : 1세기경?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성 실라는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에 따라
이방인 공동체로 진출하기 위하여 사도 바오로(Paulus)와 바르나바(Barnabas)와 함께 시리아로 파견되었다.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마르코(Marcus)라는 요한 문제로 언쟁했을 때,
그는 바오로를 수행하여 그의 제2차 전교 여행지인 시리아(Syria),
실리시아(Cilicia) 그리고 마케도니아(Macedonia)를 순회하였다(사도 15,38-40).
실라는 필립비(Philippi)에서 바오로와 함께 고발되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으며(사도 16,19 이하),
테살로니카(Thessalonica)에서는 유대인들의 폭동에 직면하였으나
교우들이 그날 밤으로 베레아(Berea)로 떠나게 주선해 주었다(사도 17,5-10).
바오로가 실바노(Silvanus)라고 언급한 사람(2고린 1,19)은 실라의 다른 이름인 듯하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코린토스(Corinthos) 교회의 초대주교였고 마케도니아에서 운명하였다.
▶아나클레토(Anacletus)◀

신분 : 교황, 순교자
연대 : 90년/92년?
성 아나클레투스(또는 아나클레토)의 정확한 생애는 알 수 없고 다만
79년에 교황 성 리누스(Linus)를 계승하여 제3대 교황이 되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또한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로마(Rome)에서 순교하였다. 클레투스(Cletus)로도 불린다.
▶에우제니오(Eugene)◀
신분 : 주교, 증거자
연대 : 505년
지역 : 카르타고
카르타고 태생인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는
학덕과 성덕, 애덕과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반달족(Vandals)의 왕 후네릭이 승인하는 선거에서 카르타고의 주교로 선임되었는데,
이곳은 거의 50년 동안 주교좌가 공석이었다.
그러나 이 도시의 통치자이며 아리우스파(Arianism)이던 후네릭은 그의 주교직 수행을 금지시키고,
가톨릭 박해를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반달족의 가톨릭 개종을 법으로 금하였다.
또 그는 주교회의를 개최토록 명하였는데,
에우게니우스는 아리우스파 주교들을 등용하려는 국왕의 음모를 미리 알고 회의 참석을 거부하였다.
가톨릭과 아리우스파간의 관계를 토의한다는 명목으로 열린 이 회의는 484년에 개최되었다.
이때 왕은 가톨릭 교회들의 약탈을 중지시켰으나, 수많은 가톨릭 주교들을 추방하였는데,
이들 가운데 에우게니우스도 포함되었다. 그는 트리폴리(Tripoli)의 사막으로 쫓겨 갔는데,
이곳의 아리우스파 주교인 안토니우스(Antonius)는 그를 아주 가혹하게 대하였다.
484년에 후네릭이 죽자 그의 조카이며 계승자인 곤타문드가 그의 귀향을 허락하였고,
가톨릭 교회를 허용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왕인 트라시문드는 박해를 재개하여 에우게니우스에게
사형을 선교하였으나 죽이는 대신 그를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로 유배를 보냈다.
그는 이곳의 알비(Albi) 교외의 어느 수도원에서 운명하였다.
▶에즈라(Ezra)◀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연대 : 4/5세기 BC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성문서에, 그리스어 성서에서는 역사서에 속하는
구약성서 에즈라서의 후반부(7-10장)에 가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에 따라 제목이 붙여진
에즈라서는 느헤미야서와 함께 바빌론 귀양 후의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하느님의 도움이라는 뜻을 지닌 성 에즈라(Esdras)는 바빌론으로 귀양 간
유다인들의 사제로서 페르시아 정부의 유다인 담당 기구 안에서 조언자의 직무를 맡고 있었다.
페르시아 왕 아르닥사싸 9년에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유다인의 공동체를 다시 이룩할 임명을 받았다.
약 1,500명의 유다인과 그 외의 많은 성전 봉사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와서(7장 이하) 법을 선포하고
그것을 의무적으로 지킬 것을 명하며 타민족과의 혼인을 금하였다(9장 이하).
이는 많은 동포가 이민족들과 혼인하여 민족의 순수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이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그 뒤 그는 페르시아로 돌아갔으리라고 본다.
▶요엘(Joel)◀
신분 : 구약인물
연대 : 4세기 BC
요엘서는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 중 두 번째로 등장하는
예언서로 브두엘의 아들 요엘(1,1)이 선포한 말씀으로 모아져 있다.
요엘은 ‘하느님은 (참) 하느님이시다’라는 뜻을 지니며
역대기와 느헤미야서와 에즈라서 등 구약성서 후대의 역대기계 문헌에는 18회나 언급되지만,
그 외에는 사무엘 예언자의 맏아들 이름으로 단 한 번만 사용된다(1사무 8,1).
그래서 요엘이 오래된 이름이기는 하지만 구약성서의 후대에 와서 흔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구약성서 어느 곳에서도 요엘 예언자가 언급되지 않는다.
요엘서 자체에서도 요엘 예언자 개인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런데 요엘의 예언이 유다 지방, 특히 예루살렘과 그곳의 성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그가 유대인이고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였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요엘은 성전에서 거행되는 종교 의식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이사야나 에제키엘처럼 이스라엘인들의 잘못된 종교 의식을 비판하였던 예언자들과는 달리,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지니고 있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가뭄과 메뚜기 떼의 침입으로 성전에서 매일 바쳐야 하는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여러 외적 궁핍보다 더 큰 불행으로 여긴다(1,9. 13. 16).
또한 그의 많은 표현도 전례 용어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직하던 ‘전례 예언자’였으리라고 추측된다.
다른 한편, 기존의 성서에 정통한 요엘은 선배 예언자들의 사상을 어어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미 공포한 말씀을 다시 선포하고 그들의 어구나 어휘를 인용하고 재활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예언자를 ‘성서 예언자’ 또는 ‘성서 해설가’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예언자로서 요엘의 성격을 흐리게 하거나, 그의 독창성을 부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기원전 4세기 초엽이 요엘 예언자의 시대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는 페르시아 제국 시대로, 유대인들은 민족과 땅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나름대로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느헤미야와 에즈라가 감행한 종교개혁 덕분에 예루살렘 성전은 유일한 성소로 자리를 굳히고,
그곳의 모든 전례도 이미 잘 정비되어 거행되고 있었다.
▶클렐리아(Clelia)◀
신분 : 설립자 (성녀)
연대 : 1847-1870년
이탈리아에서 1847년 2월 13일에 태어난 성녀 클렐리아 바르비에리(Clelia Barbieri)는 어릴 때부터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영적인 삶에 중심을 두었다.
그녀는 슬픔의 어머니의 작은 자 수녀회(The Congregation of Minims of the Sorrowful Mother)를 설립하여
병원과 초등학교에서 환자와 노인 그리고 외로운 이를 위해 섬기고 가난한 이를 위해 기도하는데 집중하였다.
그녀는 1870년 7월 13일 결핵으로 이탈리아의 볼로냐(Bologna)에서 사망하였다.
1968년 10월 2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그녀는 1989년 4월 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토마스 턴스탈(Thomas Tunstal)◀
신분 : 순교자 (복자)
연대 : 1616년
토마스 턴스탈은 잉글랜드(England) 웨스트모어랜드(Westmoreland)의 켄달(Kendal) 교외 윈펠(Whinfell) 태생으로
1606년에 프랑스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그 후 그는 1610년에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가 즉시 체포되어 거의 6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였다.
한번은 그가 탈출에 성공하여 킹스린(King's Lynn)에 있던 친구 집에 은신했으나 또 다시 체포되었다.
그는 노리치(Norwich)의 세인트 베넷 게이트에서 처형되었다.
이때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 만찬 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늘 나 같은 미물을 천상의 식탁으로 초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투리아보(Turiaf)◀
신분 : 주교
연대 : 750년
지역 : 돌(Dol)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성 투리아부스(Turiavus, 또는 투리아보)는
그 지방 돌의 주교인 성 삼손(Samson, 7월 28일)에게 사제서품을 받았고, 후에 그를 계승하여 돌의 주교가 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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