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니오(7.16)◀
신분 : 순교자
연대 : 295년
지역 : 베르가모
성 돔니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의 베르가모에서 순교하였다. 그의 순교에 대한 행전은 분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라이넬다(7.16)◀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680년경
성녀 라이넬디스(또는 라이넬다)는 비트겔(Witger) 백작과 성녀 아멜베르가(Amelberga, 7월 10일)의 딸이다. 그녀의 부모가 수도생활을 택했을 때, 그녀의 언니 성녀 구둘라(Gudula, 1월 8일)는 모르셀(Moorsel)에 은거했고 성녀 라이넬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로브(Lobbes) 수도원에 들어갔다. 여기서 3일 동안 밤낮으로 기도하여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다가, 성지순례를 떠난 뒤 7년 후에 돌아왔다고 한다. 이때 그녀는 할(Hal) 근교 생트(Saintes)에서 살면서 신심생활에만 전념하다가 야만인들의 침입 때에 살해되어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Mary Magdalen Postel)◀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연대 : 1756-1846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Maria Magdalena Postel)은 요한 포스텔과 테레사 러발로 사이에서 태어나 율리아 프란치스카 카타리나란 이름으로 영세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4년 먼저인 8세 때에 첫 영성체를 하였다. 그 후 지방 학교를 나온 후 베네딕토 수녀회에서 지내다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생활을 바랐으나 사적인 서원만 발하였으며, 바르플뢰르로 돌아온 뒤에는 여학교를 개교했는데 이 학교가 프랑스 혁명 동안에는 성직자법을 거부하는 교회 인사들의 지하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혁명이 지나자 그녀는 다른 동료들과 더불어 혁명의 후유증, 특히 신자들의 종교적 무관심을 치유하고 교육하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자비의 그리스도인 학교 수녀회’의 설립이 실현되었는데, 이때 그녀는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러나 이 수녀회의 초창기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1830년에 생-소뵈르-러-비콩트에 본원을 개설했고, 1837년에는 성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 후로 이 수녀회가 날로 발전해 나갔는데, 설립자는 거의 41년 동안 피나는 노력을 경주했다. 그녀는 90세를 일기로 운명했고, 1925년에 시성되었다.
▶밀로(Milo)◀ (복자)
신분 : 주교
연대 : 1158년
지역 : 테루안
밀로는 처음에 생-요스-오-보아에서 은수생활을 하던 중에 공동체 생활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을 자각하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 후 1131년에 그는 테루안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그의 첫 번째 활동은 생-베르탱 수도원의 새 원장인 시몬에게 교회법적인 강복을 준 것이다. 그는 자신의 교구에 수도원 규칙을 적용하여 개혁을 시도하였다. 추기경 바로니오는 밀로의 성덕과 학문을 높이 평가하였다.
▶비탈리아노(Vitalian)◀
신분 : 주교
연대 : 연대미상
성 비탈리아누스(Vitalianus, 또는 비탈리아노)는 이탈리아 남부 카푸아의 주교였다.
▶비탈리아노(7.16)◀
신분 : 주교
연대 : 776년
지역 : 오시모
성 비탈리아누스(Vitalianus, 또는 비탈리아노)는 이탈리아 오시모의 주교였다. 그는 아스콜리(Ascoli) 지방의 교구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시세난도(7.16)◀
신분 : 순교자
연대 : 851년
지역 : 코르도바
포르투갈 에스트레마두라(Estremadura)의 바다호스(Badajoz)에서 태어나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서 사망한 성 시세난두스(또는 시세산도)는 십자가의 사람이었다. 그는 십자가 표시를 자신과 모든 것에다 그렸다. 아침에 일어나 얼굴에 십자 표시를 하고 빵에다, 여행하는 길에다 십자표시를 했다. 걸음걸음과 각 귀퉁이마다 십자 표시를 했다. 땅에 십자가를 그리거나 제대 위에 십자가를 높이 긋기도 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신심이 출중했던 그는 신앙으로부터 희망하는 법을 배웠고 십자가의 묵상을 통해 자비를 배웠다. 십자가에 이끌린 그는 코르도바로 가서 라틴어, 신학, 교회법, 전례 등 사제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과목을 배우고 나서 부제품을 받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의 순교자인 성 아키스클루스(Acisclus, 11월 17일) 성당에 머무르던 그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성 아키스클루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했다. 그는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질 십자가가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도 성인에게 열정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십자가에 동참할 수 있도록 청했다. 그리고는 하느님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그의 믿음은 더욱 커지고 주저함은 적어졌다. 그는 코르도바에서 무어족의 왕인 아브탈 라흐만 2세(Abd ar-Rahman II)에 의해 순교한 성 베드로(Petrus), 성 발라본수스(Wallabonsus), 성 사비니아누스(Sabinianus), 성 비스트레문두스(Wistremundus), 성 하벤티우스(Habentius), 성 예레미야(Jeremias, 이상 6월 7일)의 부르심에 두려움 없이 응답할 준비를 하였다.
무어인들은 성 시세난두스를 앞서 순교한 이들과 같은 일행이라고 주장했고, 성 시세난두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맡겼다. 그는 감옥에 갇혔지만 십자가가 열쇠인 그에게 잠긴 문이란 없었기에 감옥마저도 그의 자유를 빼앗아가지는 못했다. 그는 다음날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았으며 간수들의 개종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에게 편지를 썼지만 끝까지 쓰지 못하고 십자가로 마쳐야 했다. 그는 자신을 사형에 처하기 위해 호송관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그의 강한 힘과 용기를 보시고 죽음이 다가왔으며 대면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셨다. 병사들이 와서 그에게 욕을 하고 저주를 하며 형장으로 끌고 갔으나 그는 오히려 성당에 들어가는 듯 십자가를 그었다. 많은 군중들 앞에서 참수당할 때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십자가를 그었다.
▶아테노제네(7.16)◀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05년경
로마 순교록 1월 18일자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원로 신학자인 성 아테노제네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남긴 기쁨의 찬미가를 노래하면서 화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러나 7월 16일자에는 약간 다르게 나온다. “아르메니아(Armenia)의 세바스테(Sebaste)에서 아테노제네 주교와 그의 제자 10명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에 순교하였다.”
▶에우스타키오(7.16)◀
신분 : 주교, 증거자
연대 : 340년경
지역 : 안티오키아
팜필리아의 시드 출신인 성 에우스타키우스(또는 에우스타키오)는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증언한 그대로 박해자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용감히 고백했던 분이다. 그는 학덕이 뛰어났고 또 웅변에 능하였다. 시리아의 베로에아에서 주교로 승품된 그는 즉시 큰 명성을 떨쳤다.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에 참석토록 요청받았는데, 그는 이 공의회에서 아리우스(Arius) 이단을 단죄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수많은 교회일로 항상 분주하였으나, 애덕 실천은 집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자기 자신의 영혼 구원이 최우선한다고 역설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거룩한 목자는 안티오키아 교구를 떠날 때 신자들을 모아놓고 올바른 교리에 정성을 다 하라고 당부하고, 정통 교리를 고수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깨우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권고는 정통 교리를 지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급기야는 ‘에우스타키아노’라는 체제가 형성되어 교회 안팎으로 큰 소동이 일어났다. 이 사건 때문에 그는 몇몇 사제와 부제들과 함께 트라얀폴리스로 유배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사망 장소나 연대가 불분명해졌다. 그가 만든 수많은 사본과 저서들은 소멸되었으나, 그의 주요 업적은 오리게네스(Origenes)를 반박하는 논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파우스토(7.16)◀
신분 : 순교자
연대 : 250년
성 파우스투스(또는 파우스토)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십자가형을 받고 화살에 찔려 순교하였다. 그는 5일 동안 고통 중에 시달리다가 숨졌다고 한다.
▶풀라도(7.16)◀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784년
지역 : 생드니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 출신인 성 풀라두스(Fulradus, 또는 풀라도)는 베네딕토 회원이 된 후에 리에브르(Lievre) 등지에 수도원들을 세웠다. 750년 그는 파리(Paris) 교외 생드니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피핀(Pepin), 카를로만(Carloman), 샤를마뉴(Charlemagne) 등의 고위관리로 봉사하였다. 또한 그는 성 부르카르두스(Burchardus)와 함께 피핀을 프랑크족의 왕으로 인정받게 하는 일에 착수하여 성공하였다. 그는 일생동안 왕을 위하여 그리고 교황을 위한 중재자로서 활약하였다. 이런 일을 수행하면서도 그는 수도원의 원장직을 뛰어난 성덕과 학덕으로 수행하였다. 그가 원장으로 있던 생드니 수도원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수도원 중의 하나였음이 그의 성덕을 증거하고도 남는다.
▶헬리에르(7.16)◀
신분 : 순교자
연대 : 6세기
지역 : 통그레
성 헬리에르는 벨기에의 통그레(오늘날의 림부르흐, Limburg)에서 태어나서 쿠니베르트(Cunibert)라는 사람의 교육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자 그의 부친이 그의 스승을 살해하였다.그래서 성 헬리에르는 집을 나와 멀리 숨어버렸다. 그는 영국 해협에 있는 저지(Jersey) 섬에 정착하여 은수자 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섬에서 해적들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가톡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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