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로페즈(Gregory Lopez)◀ (복자)
신분 : 은수자
연대 : 1596년
에스파냐의 마드리드 출신인 그레고리우스 로페즈(Gregorius Lopez, 또는 그레고리오)는
궁중의 사환으로 일하던 중에 에스트레마두라에 있는 과달루페의 성모 경당을 순례하였다.
이때 그는 멕시코에 과달루페의 다른 경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기 위하여 그곳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그는 베라크루스에서 소유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에 은수자로 살만한 곳을 찾다가,
어느 한적한 계곡에서 기도와 고행으로 평화스럽게 얼마를 살았다.
그 후 그는 도미니코회의 유명한 선교사의 권유를 받고
멕시코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하기 위하여 길을 떠났으나,
몇몇 공동체에서 생활한 결과 자신은 공동생활보다 은수자가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부터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고,
멕시코의 대주교조차 그를 일컬어 특별한 신심과 덕행을 갖춘 사람이라고 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특히 그의 철저한 가난 생활은 지나칠 정도였고,
늘 성서 공부를 하여 성서에 뛰어난 지식을 가졌다.
그는 54세를 일기로 운명하였는데 멕시코 전역에서 그를 공경한다.
▶마크로비오(Macrobius)◀
▶막시모(Maximus)◀
▶바울라(Paula)◀
▶사비노(Sabinus)◀
▶율리아노(Julian)◀
▶카시아(Cassia)◀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사비누스(Sabin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마크로비우스(또는 마크로비오), 성녀 카시아(Cassia), 성녀 바울라(Paula)와
다른 1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Damascus)에서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다.
▶바오로(Paul)◀
신분 : 부제, 순교자
연대 : 851년
지역 : 코르도바
성 바오로(Paulus) 부제는 에스파냐 코르도바에 있는 성 조일루스(Zoilus)의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그는 무어인들에 의해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열성적으로 봉사하였다.
그가 참수되었을 때 그의 동료들은 그의 유해를 정성껏 수습해 성 조일루스 성당에 안치하였다.
▶불마로(Vulmar)◀
신분 :수도원장
연대 :700년경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y)의 불로뉴 출신인 성 불마루스(Vulmarus, 또는 불마로)는
기혼자였으나 아내의 요구에 따라 갈라선 뒤에 오트몬트 대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주로 소를 기르거나 숲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곧 그의 기도 정신이 뛰어나고 또 지혜가 번쩍였으므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몇 년 동안을 몬테 카셀 근교의 은둔소에서 독수생활을 하다가,
칼레스 지방에 사메르 수도원과 비에르-오-보와 수도원 등을 세웠다.
웨식스(Wessex)의 왕 체드왈라는 688년경에 로마(Rome)로 가던 중 그의 성덕에 감명을 받아 세례를 받았다.
▶빌제포르타(Wilgefortis)◀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포르투갈의 공주로 태어난 성녀 빌제포르타는 부친의 결혼 강요를 물리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다가 마침내 동정 서원을 발하는데 성공하였다.
빌제포르타는 결혼할 수 없는 징표를 늘 주님께 간구하던 중 얼굴에 수염이 돋아났다고 한다.
시칠리아(Sicilia)의 왕과 결혼하기로 예정되었으므로 왕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부친은 빌체포르타를 십자가형에 처하였다.
빌체포르타는 리베라타, 리브라다, 쿠메르니스 등 여러 이름으로 공경을 받는데,
영국에서는 언컴버라고 부르면서 남편과 불화 중인 아내들이 이 성녀의 전구를 기도한다.
▶세베라(Severa)◀
신분 : 동정녀, 수녀원장
연대 : 680년
지역 : 빌뇌브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의 주교인 성 모도알두스(Modoaldus,
5월 12일)의 누이인 성녀 세베라는 프랑스 부르주(Bourges) 교구의 빌뇌브에 있는 성녀 젬마 수도원의 첫 번째 원장이었다.
▶아우렐리오(Aurelius)◀
신분 : 주교
연대 : 429년
지역 : 카르타고
392년경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다음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성 아우렐리우스(또는 아우렐리오)는 히포(Hippo) 교회에 임명되었다가 그곳의 주교가 되었다.
그 당시 아프리카 최대의 성당이던 이 히포 교회는 막대한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신임 주교는 두 가지 이단과 싸워야 했는데,
곧 도나투스주의와 펠라기우스주의였다.
38년간 재임한 그는 이러한 이단 퇴치에 정력을 쏟았으나 역부족이었다.
또한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도 절친한 친구였다.
▶안세지소(Ansegisus)◀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770-833년
지역 : 폼트넬
프랑스 리옹(Lyon) 출신인 듯 보이는 성 안세기수스(또는 안세지소)는
18세 때에 그의 친척이 원장으로 있는 퐁트넬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의 선성과 학식이 크게 돋보였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랭스(Reims)의 성 식스투스(Sixtus) 수도원의 관리를 맡았으며,
보베(Beauvais)의 성 제르메르-드-폴리 수도원장이 되었다.
이 수도원은 건물뿐만 아니라 공동체까지 곧 파괴될 운명에 있었기에
그는 즉시 개혁 사업에 착수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퐁트넬 수도원의 장상직을 맡았을 때에는 도서실을 비롯하여
장서 수집에 박차를 가하여 이 분야에서 유명한 수도원으로 만들었다.
만년에는 중병으로 고생하였다.
▶엘리야(Elias)◀
신분 : 주교, 증거자
연대 :518년
지역 : 예루살렘
성 엘리야는 아랍인으로서 이집트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이단 주교인 티모테우스(Timotheus)로부터
정통 가톨릭이란 이유로 그 지방에서 쫓겨났다.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로 갔다가 성 에우티미우스(Euthymius)의 은둔소에서
잠시 머물렀으며 예리코(Jericho)에 공동체를 세웠다. 여기서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494년에는 예루살렘의 주교가 되었다.
이 당시에 그는 시리아 수도자인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를 만났다.
482년에 황제 제노는 가톨릭과 그리스도 단성설자 간의 논쟁을 종식시킬 목적으로
‘헤노티콘’(Henotikon)이란 칙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문서가 서방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단성설자를 단죄하는 결과가 나왔고,
동방 교회에서는 이단이 더욱 기세를 부리는 근원이 되어버렸다.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총대주교인 플라비아누스와 엘리야도
이 문서를 받아들이긴 하였으나 행동은 다소 애매하였다.
그러나 이 두 성인의 마음속에는 정통성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성설자들과 함께 황제를 지원하라는 명을 거절하고 유배를 당하였다.
성 플라비아누스는 아라비아의 페트라(Petra)로 유배를 갔고,
성 엘리야는 아일라(Aila)로 갔는데,
이 당시에 그의 친구인 성 사바(Sabas)가 그와 함께 지냈다고 한다.
▶요셉 바르사바(Joseph Barsabas)◀
신분 : 예수의 제자, 증거자
연대 : 1세기경
성 요셉 바라사바(Josephus Barsabas)는 예수를 잡아 넘긴 유다(Judas)의 자리를 대신하여
성 마티아(Matthias)와 경합을 벌였던 사람이다(사도 1,23).
그는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에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다녔고,
예수의 부활의 증인 중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72제자 중의 한 명인 듯하며,
제자들이 흩어진 다음부터 그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였으나 큰 탈 없이 지내다가 끝내는 독살되었다고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말한다.
바르사바 또는 유스투스(Justus, 또는 유스도)로도 불린다.
▶플라비아노(Flavian)◀
신분 : 총대주교, 증거자
연대 : 518년
지역 : 안티오키아
성 엘리아(Elias)는 아랍인으로서 이집트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이단 주교인
티모테우스(Timotheus)로부터 정통 가톨릭이란 이유로 그 지방에서 쫓겨났다.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로 갔다가 성 에우티미우스(Euthymius)의 은둔소에서
잠시 머물렀으며 예리코(Jericho)에 공동체를 세웠다.
여기서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494년에는 예루살렘(Jerusalem)의 주교가 되었다.
이 당시에 그는 시리아 수도자인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또는 플라비아노)를 만났다.
482년에 황제 제노는 가톨릭과 그리스도 단성설자 간의 논쟁을 종식시킬 목적으로 ‘헤노티콘’(Henotikon)이란 칙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문서가 서방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단성설자를 단죄하는 결과가 나왔고,
동방 교회에서는 이단이 더욱 기세를 부리는 근원이 되어버렸다.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인 플라비아누스와 엘리아도 이 문서를 받아들이긴 하였으나 행동은 다소 애매하였다.
그러나 이 두 성인의 마음속에는 정통성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성설자들과 함께
황제를 지원하라는 명을 거절하고 유배를 당하였다.
성 플라비아누스는 아라비아의 페트라(Petra)로 유배를 갔고, 성 엘리아는 아일라(Aila)로 갔는데,
이 당시에 그의 친구인 성 사바(Sabas)가 그와 함께 지냈다고 한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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