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틸라(Donatilla)◀ (동정)
▶막시마(Maxima)◀
▶세쿤다(Secunda)◀
신분 : 순교자
연대 : 304년
성녀 막시마(Maxima)와 성녀 도나틸라 그리고 성녀 세쿤다(Secunda)는
막시미누스 황제 때에 북아프리카의 테부르바(Tebourba)에서 순교하였다. 성녀 세쿤다는 겨우 12살의 소녀였다.
▶루피노(Rufinus)◀
신분 : 순교자
연대 : 1세기
지역 : 아시시
성 루피누스(또는 루피노)는 이탈리아 아시시의 초기 순교자이다.
▶리카르도 페터스톤(Richard Fetherstone)◀
신분 : 순교자
연대 : 1540년
에드워드 포웰(Edward Powell)은 웨일스(Wales) 출신으로 옥스퍼드의 오리얼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1506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523년 그는 루터를 반박하는 글을 썼는데, 이 글은 옥스퍼드 대학뿐만 아니라 솔즈베리(Salisbury)의 주교로부터 큰 칭찬을 받을 만큼 비중 있는 논문이었다. 이러한 그의 명성은 높았기 때문에 그는 국왕의 결혼 무효소송 문제에 있어서 카타리나 측의 법률가로 뽑혔다. 1529년에 열린 재판정에서 그는 왕에게 반박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였고 이를 책으로 펴냈다. 그의 놀라운 이론과 웅변은 헨리 8세 측의 미움을 샀으며, 1534년에 도체스터(Dorchester) 감옥에 갇혔다가 런던탑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거의 6년 동안이나 옥중생활을 하면서도 국왕의 수장령을 끝까지 반대하여 순교하였다.
리카르두스 페터스톤(Richardus Fetherstone,또는 리카르도)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지만,그는 교구사제로서 케임브리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박식한 사제였다. 그의 뛰어난 신심과 학식 때문에 그는 메리 공주의 라틴어 가정교사가 되었다. 1529년에 열린 재판정에서 그도 역시 카타리나 왕비의 결혼은 정당하다는 편에 투표함으로써, 요한 피셔(John Fisher) 추기경과 에드워드 포웰 박사 및 다른 동료들과 함께 런던탑에 갇혔다가 순교하였다. 그는 1886년 레오 13세(Leo XIII) 교황이 시복한 영국 순교자 54명 중의 한 명이다.
▶만네스(Mannes)◀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230년
펠릭스 데 구즈만과 아자의 성녀 요안나(Joanna)의 맏이는 안토니우스(Antonius)이고, 둘째가 만네스 그리고 막내는 설교자회의 설립자인 성 도미니코(Dominicus)이다. 만네스는 칼라루에가에서 태어났고, 1170년에 도미니코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였다. 그는 자기 동생인 도미니코의 사업에 관여하여 서원하였고, 도미니코에 의해 6명의 다른 형제들과 함께 그는 파리(Paris)로 가서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그는 프루일에서 수녀들을 지도하였다. 성 도미니코도 자기 형의 높은 덕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항상 관상생활을 하였고 또 마드리드 수녀들의 지도자로서는 최고 적임자였다.그는 동생의 사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가미엘에 있는 성 베드로(Petrus)의 시토 성당에 안장되었다.
▶베드로(Peter)◀
신분 : 수도원장
연대 :1442-1490년
지역 : 모글리아노
베드로(Petrus)는 이탈리아 안코나(Ancona)의 마르카 지방인 모글리아노에서 태어나 페루자(Perugia) 대학에서 3년간 법률을 공부하였다. 1467년 그는 우연히 프란치스코회 사제인 도미니코 레오니사의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았다. 그 후 프란치스코 회원이 된 베드로는 성 야고보 델라 마르카와 함께 설교단을 구성했는데, 그는 놀라운 설교력을 보임으로써 카메리노 공작의 자문역까지 맡았다. 성 베드로는 바라니, 마르슈 등지의 관구장을 역임했다. 그는 예수님의 성명을 수차례나 부르다가 숨을 거두었다.
▶센넨(Sennen)◀
▶압돈(Abdon)◀
신분 : 순교자
연대 : 303년?
성 압돈(Abdon)과 센넨 두 사람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치하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했던 페르시아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료들을 위로 격려하였고, 순교자들의 시신을 모아 장례 지내는 등 힘든 일을 많이 하였다. 그들이 로마(Rome)로 압송되어 이방의 신 앞에 희생을 드리라는 명을 거절하다가 야수들의 밥이 되었다. 이 야수들은 사자나 곰이 아닌 바로 검투사들이었다. 로마의 신자들은 이 페르시아인들을 이방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 이들의 유해를 티베르 강가 포르토로 옮겼다.
▶시몬(Simon)◀ (복자)
신분 : 설교가
연대 : 1482년
지역 : 리프닉차
폴란드의 크라쿠프(Krakow)에서 멀지 않는 리프닉차 출신인 시몬은 그 도시의 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1453년에 성 요한 카피스트라노의 설교에 감명을 받고 그의 첫 제자가 되었다. 그래서 시몬은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어 그의 스승과 함께 설교하면서 활동하였다. 성 시몬은 프란치스코회 설교자들이 큰 활약을 하던 시기의 주요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성 베르나르디노와 함께 ‘예수 성명’ 신심을 보급하는데 주력하였다. 크라쿠프에 페스트가 유행하여 큰 재난을 당할 때 그는 정열적으로 활동하다가 자신도 병에 걸려 운명하였다. 그는 1685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아르칸젤로(Archangelo)◀ (복자)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390-1460년
지역 : 칼라타피미
시칠리아(Sicilia)의 플라첸티니 가(家) 후손인 아르칸젤루스(또는 아르칸젤로)는 어릴 때부터 신심이 두터웠으므로, 청년이 되었을 때부터 동굴에 살면서 은수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자주 그를 찾아와서 충고를 구하였지만, 그는 놀라운 인내심으로 그들을 따뜻이 영접하여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사람들이 가장 깊이 감명을 받은 것은 그의 겸손 때문이었다.
교황 마르티누스 5세(Martinus V)가 시칠리아의 모든 은수자에게 명하여 세속으로 나가든지 아니면 회수도자가 되라고 명했을 때, 그는 파르마(Parma)로 가서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다. 성 아르칸젤루스는 성 프란치스코의 초기 규칙을 받아들였고, 성 마태오 지를라니를 이어 알카모의 원장이 되었다.
▶에드워드 포웰(Edward Powell)◀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540년
에드워드 포웰은 웨일스(Wales) 출신으로 옥스퍼드의 오리얼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1506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523년 그는 루터를 반박하는 글을 썼는데, 이 글은 옥스퍼드 대학뿐만 아니라 솔즈베리(Salisbury)의 주교로부터 큰 칭찬을 받을 만큼 비중 있는 논문이었다. 이러한 그의 명성은 높았기 때문에 그는 국왕의 결혼 무효소송 문제에 있어서 카타리나 측의 법률가로 뽑혔다. 1529년에 열린 재판정에서 그는 왕에게 반박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였고 이를 책으로 펴냈다. 그의 놀라운 이론과 웅변은 헨리 8세 측의 미움을 샀으며, 1534년에 도체스터(Dorchester) 감옥에 갇혔다가 런던탑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거의 6년 동안이나 옥중생활을 하면서도 국왕의 수장령을 끝까지 반대하여 순교하였다.
리카르두스 페테스톤(Richardus Fetherstone)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는 교구사제로서 케임브리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박식한 사제였다. 그의 뛰어난 신심과 학식 때문에 그는 메리 공주의 라틴어 가정교사가 되었다. 1529년에 열린 재판정에서 그도 역시 카타리나 왕비의 결혼은 정당하다는 편에 투표함으로써, 요한 피셔(John Fisher) 추기경과 에드워드 포웰 박사 및 다른 동료들과 함께 런던탑에 갇혔다가 순교하였다. 그는 1886년 레오 13세(Leo XIII) 교황이 시복한 영국 순교자 54명 중의 한 명이다.
▶에버라드 한스(Everard Hanse)◀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581년
에버라드 한스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노샘프턴셔(Northamptonshire)의 어느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한 후에 선교사가 되어 가장 훌륭한 삶을 전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대중 설교자가 되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1579년에 프랑스의 랭스(Reims)로부터 영국 선교단으로 파견된 동생 윌리엄(William)의 개종과 호소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나, 때마침 중병을 앓게 되었다. 그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늘이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이상한 두려움으로 가득하였다. 한편으로는 그의 동생이 보여주는 뛰어난 표양과 말이 그로 하여금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기회를 만들어 마침내 스스로 굴복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가 영국 교회로부터 은전 받기를 거절함과 동시에 그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하였다. 그 후 그는 랭스에서 9개월 동안 공부하였는데, 특히 윤리신학에 뛰어난 적성을 보였다. 1581년 3월 25일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4월 24일에는 에반스 둑켓으로 추정되는 다른 사제와 함께 영국 선교사로 출발하였다.
그는 겨우 3개월 동안 선교활동을 하다가 가톨릭 사제임이 발각되어 투옥되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난 뒤 동생에게 편지를 썼는데, “하느님은 자비하시다”는 말이 가장 돋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를 기억하고, 자신이 빚진 돈을 갚아 주며 또 빌린 책을 돌려주라는 부탁이 있었고, 죽는 날을 기다리면서 그날은 ‘행복한 날’이라고 하였다. 그는 런던의 사형 집행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올라보(Olav)◀
신분 : 왕
연대 : 1024년
지역 : 스웨덴
정복자 에릭의 아들인 성 올라부스 스콧트코눙그(Olavus Skottkonung, 또는 올라보)는 993년에 스웨덴의 왕위에 올랐고, 덴마크의 스벤(Svend) 왕과 에릭과 더불어 성 지그프리드(Sigfrid)로부터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다. 그 후 그는 스웨덴의 그리스도교화를 위하여 크게 활약하다가 이교 신들에 대한 희생 금지로 인한 폭동으로 인하여 스톡홀름(Stockholm)에서 살해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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