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마리아(Gabriel Mary)◀ (복자)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463-1532년
원래 이름은 길베르투스 니콜라우스(Gilbertus Nicolaus)인데 클레르몽의 리옹(Riom)에서 태어나 16세 때에 프란치스코회를 지원하였으나 몸이 허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후 재차 입회를 청하여 라 로셀에서 입회하였는데, 원장은 그의 용기를 가상히 여겨 허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련장은 그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모범적인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리라고 예언하였다. 과연 그는 뛰어난 철학자임과 동시에 신학자가 되었으며, 프랑스의 프란치스코 회원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후일 발루아(Valois)의 성녀 요안나(Joanna)의 고해신부로도 활약하였고, 프란치스코회의 총시찰자가 되었으며, 성모 영보의 신비에 대한 그의 높은 신심으로 교황 레오 10세를 감동시켰다. 이리하여 교황은 그에게 가브리엘 마리아란 이름을 주셨던 것이다. 그는 프란치스코회의 회칙을 개정하였고,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수도원을 여섯 곳이나 세웠다. 그의 마리아 신심은 놀라울 정도였으며, 임종하는 순간에도 마니피캇(Magnificat)을 노래하였다고 전해온다. 1647년에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
▶나르노(Narnus)◀
신분 : 주교
연대 : 75년
지역 : 베르가모
성 나르누스(또는 나르노)는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초대주교로서 스승인 사도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에 의해 주교로 축성되었다.
▶다윗 루이스(David Lewis)◀
신분 : 순교자
연대 : 1616-1679년
성 다윗은 완강한 프로테스탄트이던 모간 루이스와 가톨릭 신자인 마가렛 프리차드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윗 레위스는 아베가브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교육받았고, 16세 때에 미들 템플에 들어갔고, 그 3년 후에 사베지 백작의 문하생으로 런던으로 갔다. 그 후 다시 로마(Rome)로 갔다가 1642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또 2년 후에는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을 마치고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웨일스(Wales) 지방에서 거의 31년 동안이나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 지방에는 가톨릭을 반대하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그는 몸을 피신해야만 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이때 그는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다고 한다.
“나는 양심과 신앙을 위하여 죽는다. 인간의 나약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외면은 죽일 수 있으나 내면은 결코 죽일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나의 몸과 피가 화형에 당할 준비를 마쳤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피에는 피, 목숨에는 목숨이라 하였으나, 그것은 안 된다. 오로지 거룩한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대들을 용서한다. 나는 내가 복음의 아들임을 고백하며, 내가 순종하는 것은 복음이다. … 친구들이여, 하느님을 두려워하라. 그대들의 왕에게 영광을 드려라. … 나는 끝까지 여러분의 믿음이 올바르게 되도록 기도하겠다.”
군중들은 그에게 돌을 던졌다. 다윗의 유해는 가까운 교회 마당에서 불태워졌다. 프로테스탄트에 의하여 처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는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England)와 웨일스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도미니코 바베리(Dominic Barberi)◀ (복자)

신분 : 선교사
연대 : 1792-1849년
1792년 6월 22일 이탈리아의 비테르보(Viterbo) 근교에서 태어난 도미니코(Dominicus)는 1814년에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여 천주의 모친의 도미니코란 수도명을 받았고, 1818년에 서품되었다. 그는 10여 년 동안을 가르쳤고, 수도회의 여러 직책을 거쳤으며, 관구장이 되었다. 그는 1840년 벨기에의 이즈에서 예수 고난회 최초의 피정 집을 세웠으며, 1842년에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스태퍼드셔(Staffordshire)의 에스튼 홀에 예수 고난회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그는 그의 수덕생활과 학문으로 널리 알려졌고, 강론집과 신학 및 신비신학 저서를 발간하였으며, 잉글랜드에 두 개의 수도원을 더 짓고, 또 옥스퍼드 운동의 여러 회원들을 교회로 이끌었는데 그들 중에는 존 헨리 뉴먼이 가장 유명하다. 바베리는 1849년 8월 27일 심장병의 발작으로 숨을 거두었으며, 1964년에 시복되었다.
▶루포(Rufus)◀
▶카르포포로(Carpophorus)◀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295년
지역 : 카푸아
성 루푸스(또는 루포)와 성 카르포포루스(Carpophorus)의 그다지 신뢰할만하지 않은 행전에 의하면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이탈리아의 카푸아에서 순교하였다. 그리고 성 루푸스는 1970년 이전에 나온 로마 순교록에서 카푸아의 주교로 기록된 성 루푸스와 같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주교가 아닌 부제로 나온다. 반면 성 카르포포루스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리체리오(Licerius)◀
신분 : 주교
연대 : 548년
지역 : 쿤세르앙
에스파냐의 레리다(Lerida)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성 리케리우스(또는 리체리오)는 프랑스로 이주하였고, 506년에 쿤세르앙의 주교가 되어 44년간 사목하였다. 그런데 로마 순교록은 실수로 인해 그를 레리다의 주교로 기록하였다. 그는 리지에르(Lizier)로도 불린다.
▶마르가리타(맨발의)(Margaret the Barefooted)◀
신분 : 과부
연대 : 1395년?
맨발의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 the Barefooted)는 안코나(Ancona)의 산 세베리노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은 매우 구차하였다. 15세 때에 결혼하였으나 남편은 그녀를 심하게 학대하였다. 그녀는 신발도 없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주민들은 그녀에게 ‘맨발의 성녀’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 사별할 때까지 놀라운 인내심으로 이 모든 학대를 이겨냈다. 그녀는 일생 동안 고통 중에 살았으나 기도와 고행을 잊지 않았기에, 그녀가 운명하자 주민들은 그곳의 도미니코 수도원 성당에 안장하고 성녀로 공경하는 것이다.
▶마르첼리노(Marcellinus)◀ (호민관)
▶만네아(Mannea)◀
▶베드로(Peter)◀
▶세라피온(Serapion)◀
▶요한(John)◀
신분 : 순교자
연대 : 303년
지역 : 토미
이집트인 테바이드 앞에 그리스도교 신자 17명이 끌려왔는데, 그들은 모두 황제의 칙령을 어기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이들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호민관 성 마르첼리누스(또는 마르첼로)와 그의 아내 성녀 만네아(Mannea) 그리고 그들의 세 아들인 성 요한(Joannes), 세라피온(Serapion), 베드로(Petrus)가 있었으며, 그 외에도 한 명의 주교와 3명의 성직자 그리고 8명의 다른 평신도들이 있었다.
그때 관리는 이렇게 힐문하였다. “기록을 보니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 또는 본시오 빌라도)의 명에 따라 죽고 묻힌 사람을 예배하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그러나 신자들은 그의 어떠한 술책에도 말려들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였기 때문에 모두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런데 마르첼리누스 일행은 흑해 근방의 토미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아론시오(Arontius)◀
▶사비니아노(Sabinian)◀
▶포르투나토(Fortunatus)◀
▶호노라토(Honoratus)◀
신분 : 순교자
연대 : 303년
성 호노라투스(Honoratus)와 아론티우스(또는 아론시오), 포르투나투스(Fortunatus), 사비니아누스(Sabinianus), 펠릭스(Felix),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셉티미누스(Septiminus), 레포시투스(Repositus), 사토르(Sator), 비탈리스(Vitalis), 도나투스(Donatus) 그리고 또 다른 펠릭스(Felix)는 아프리카의 하드럼멘툼 출신인데, 비록 형제지간은 아닐지라도 ‘12명의 거룩한 형제들’로 알려졌다.
그들은 모두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어, 카르타고(Carthago)에서 고문을 받고 이탈리아로 호송되었다. 처음 네 사람은 8월 27일에 포텐차(Potenza)에서, 펠릭스와 야누아리우스 그리고 셉티무스는 베노사(Venossa)에서 그리고 다른 이들은 센티아나(Sentiana)에서 각각 참수당하여 순교하였다.
▶시아그리오(Syagrius)◀
신분 : 주교
연대 : 600년
지역 : 오툉
갈로 로마 사람인 듯한 성 시아그리우스(또는 시아그리오)는 560년경에 오툉의 주교좌에 올랐다. 그는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로부터 ‘덕과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고, 브룬힐다 여왕 앞에서 주교의 팔리움을 받은 유일한 주교였다. 그는 곤트란 왕을 수행하고 가서 클로테르 2세의 세례를 집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젤로(Angelus)◀ (복자)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226-1312년
지역 ; 폴리뇨
토레와 비뇰레의 백작인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아들로 태어난 안젤루스(또는 안젤로)는 20세 때에 이탈리아 체세나 교외 보트리올로에서 아우구스티누스 회원이 되었다. 1248년 그는 고향 땅으로 파견되어 그곳에 수도원을 세웠고, 그 후 20여 년 동안은 폴리뇨 수도원에서 은둔자처럼 생활하여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또 톨렌티노(Tolentino)의 성 니콜라우스(Nicolaus)와 절친한 친구였고, 그의 사후부터 즉시 공경을 받은 덕 있는 수도자였다.
▶안투사(Anthusa)◀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녀 안투사는 페르시아 사람으로서 여겨지며, 자루에 넣어져 꿰맨 후 우물에 던져져 순교했다.
▶에우탈리아(Euthalia)◀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렌티니
볼랑디스트(Bollandists, 성인전집 Acta Sanctorum을 편집하여 간행한 벨기에의 예수회 학자들을 가리키는 말)는 시칠리아(Sicilia) 섬의 렌티니에서 순교했다고 추정되는 성녀 에우탈리아의 존재에 대해 수긍하지 않고 있다.
▶요한(John)◀
신분 : 주교
연대 : 813년
지역 : 파비아
성 요한(Joannes)은 801년부터 813년까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파비아의 주교였다.
▶체사리오(Caesarius)◀
신분 : 주교
연대 : 470-543년
지역 : 아를
훌륭한 갈로-로마가(家)의 출신인 성 카이사리우스(또는 체사리오)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의 샬롱에서 태어났다. 그는 교회 경력을 쌓기로 결심하고 18세 때 레랭의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원의 주방에서 일하는 동안 수도자들 간의 묘한 감정 등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병 때문에 그곳을 떠나 아를에서 요양하는 동안 그곳의 주교인 아저씨 에오누스의 주의를 끌게 되었으며, 마침내 그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근교에 있던 수도원에서 3년을 생활한 뒤 그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503년에 아를의 주교로 승품되었다. 이때부터 카이사리우스는 수많은 개혁운동을 전개하여 실효를 거두었고, 아리우스(Arius) 이단과 싸웠으며, 아를의 성당에서는 매일 성무일도를 노래로 기도할 것을 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동생인 성녀 카이사리아(Caesaria)와 함께 수도원을 세우고 수녀들을 위한 규칙을 썼으며, 국제적인 몇 차례의 시노드(Synod)를 주재하였다. 505년 아리우스파의 서고트족(Visigoths)과 동고트족(Ostrogoths)에 의하여 그의 주교직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심한 위기에 직면하였으나 그 후 안정되었다. 그는 부르고뉴 왕에 의하여 아를이 공격을 당했을 때 수많은 희생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테오도리쿠스(Theodoricus)와 동고트족이 아를을 점령했을 때 그는 재차 체포되어 모든 직책에서 면직되었다.
그 후 그는 로마(Rome)로 갔다. 여기서 그는 프랑스 지방의 교황사절로 임명되었고, 교황 성 심마쿠스(Symmachus)로부터 팔리움을 받았다. 이것은 서방 유럽 주교에게 허용된 첫 번째 경우이다. 536년 프랑크족들이 아를을 점령한 후 카이사리우스는 성 요한 수도원에서 거의 모든 생활을 하다가 8월 27일에 운명하였다. 그는 운명할 때까지 자신의 교구를 40년간 지도하였고,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주교였으며, 그의 성덕과 사랑 그리고 능력은 당대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는 529년의 오랑주 공의회(Council of Orange)에서 반펠라기우스설(Semi-Pelagianism)의 단죄에 앞장섰으며, 로마법을 응용하여 테오도시아누스 법전(Codex Theodosianus)의 주요 골격이 되는 ‘브레비아리움 알라리치’(Breviarium Alarici)를 간행하였는데, 이것이 프랑스 시민법이 되었다. 그의 설교집도 여러 권 전해지고 있다.
▶포이멘(Poemen)◀
신분 : 수도원장, 은수자
연대 : 5세기경
지역 : 스케테
성 포이멘은 세상을 등지고 스케테의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갔다. 이때 그는 여러 명의 동료들을 이끌고 공동생활을 꿈꾸었다. 408년 그들의 첫 정착지가 베르베르족(Berbers)의 침략으로 파괴되자 테레누티스(Terenuthis)로 피신하였다. 밤 열두 시가 되면 4명은 일하고, 4명은 성무일도를 노래하였으며 또 다른 4명은 잠을 잤다. 그들은 낮 12시까지 그렇게 지냈다. 성 포이멘은 가끔 거의 한 주간씩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냈다. “우리는 육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기 위하여 단식한다.” “회개의 정신과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피어오르면 모든 악은 사라진다.” 이런 정신을 그는 자신의 은수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우주의 빛, 수도자의 귀감’이란 칭호로 수도자들에게 기억되었다.
▶후고(Hugh)◀
신분 : 소년, 순교자
연대 : 1255년
지역 : 링컨
중세의 비극 중의 하나인 영국 잉글랜드(England) 중동부 링컨 출신 성 후고(Hugo)의 죽음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는 불과 9살의 어린 나이로 코핀(Koppin)이라는 유대인의 집으로 끌려가 매를 맞고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그 후 그의 시체는 우물에 던져졌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분노한 시민들은 코핀과 92명의 다른 유대인을 체포하여 심문한 결과, 코핀은 모든 죄를 자백하면서 유대인은 매년 그리스도교 어린이를 십자가형에 처하여 죽이는 관습이 있다고 태연하게 진술했다고 한다. 그 후 후고가 유기되었던 우물에서는 신기한 기적이 많이 일어나 수많은 신자들의 기도소가 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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