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리나(Catherine)◀ (복녀)
신분 : 동정녀
연대 : 1486-1547년
지역 : 라코니지
라코니지는 1486년에 어느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고,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가 낡아빠진 광에서 태어난 것은 묘하게도 그녀의 일생이 물질적으로 궁핍하며 건강치 못하고 또 이해받지 못한 사람으로 살 것임을 상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그녀는 이미 5살 때부터 아기 예수와 성모께 대한 남다른 신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집안에서 힘든 일을 하거나 굶주림으로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녀는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서 큰 위로를 받곤 하였다.
1500년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축일에 그녀는 이 성인에게 기도하였는데, 참으로 기적적으로 성 스테파누스가 발현하여 성령께서 특별히 보살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때 세 줄기의 빛이 그녀를 비추며, “나는 네 안에 내 거처를 정하고, 너의 영혼을 깨끗하고 밝게 할 것이며, 생기를 주리라”고 했다. 그 후 카타리나는 신비적인 신랑과의 동정 서원을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손가락에는 신비스런 반지가 끼워 있었고, 이때부터 그녀는 가시관과 주님의 오상의 아픔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다. 그 후 카타리나에게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영적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짓누르는 악마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등 오랜 병고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녀는 62세 때 카르마뇰라에서 운명하였다.
▶루피노(Rufinus)◀
▶비탈리코(Vitalicus)◀
▶실바노(Silvanus)◀
신분 : 소년, 순교자
연대 : 연대미싱
성 루피누스(또는 루피노)와 성 실바누스(Silvanus) 그리고 성 비탈리쿠스(Vitalicus)는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함께 소아시아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안키라(Ancyra, 오늘날 터키의 앙카라)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나이 어린 소년들이었다.
▶마뇨(Magnus)◀
▶막시모(Maximus)◀
▶카스토(Castus)◀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마뇨, 성 카스투스(Castus), 성 막시무스(Maximus)를 비롯해서 모두 17명의 신자들이 같은 날 소아시아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안키라(Ancyra, 오늘날 터키의 앙카라)에서 순교하였다.
▶마르첼로(Marcellus)◀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트리어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0세기로, 그는 아마도 독일 트리어나 통그레(Tongres)의 주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르첼로(Marcellus)◀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178년
지역 : 리옹
177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 때 리옹에서는 주교 성 포티누스(Pothinus)와 수많은 신자들이 대량으로 학살되었는데, 이때 리옹의 사제이던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샬롱쉬르손으로 피신하였다. 그를 숨겨준 이는 이교인이었다. 그 사람이 마르스, 머르쿠리 그리고 미네르바 신상 앞에 향을 피우고 기도하므로 마르첼루스가 그를 설득하여 개종시켰다.
한번은 마르첼루스가 여행하던 중에 집정관 프리스쿠스를 만났는데, 그가 자기 집에 와서 기도해 주기를 청하므로 따라갔다. 프리스쿠스가 예식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구경꾼들이 갑자기 폭도로 변하여 마르첼루스를 나무위에 묶었다. 그리고 집정관은 사투른 신상 앞에 제사를 드리라고 강요하였다. 이를 거절하자 형리들은 그를 사온느 강가의 땅에다 목만 나오게 하여 묻어두었다. 그는 3일 동안 갈증과 뜨거운 태양으로 말미암아 순교하였다.
성 발레리아누스(Valerianus)는 이때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탈출하였지만, 오툉(Autun) 교외 투르뉘(Tournus)에서 체포되어 참수형을 받고 치명하였다.
▶마리노(Marinus)◀
신분 : 부제, 은수자
연대 : 4세기?
지역 : 산 마리노
성 마리누스(또는 마리노)는 달마티아(Dalmatia) 해안의 사람으로 채석공이다. 리미니의 성채를 재건한다는 소문을 듣고 다른 석수 레오(Leo)와 함께 그곳에 가서 몬테 티타노의 채석장에서 일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중노동을 하고 있던 일단의 신자들이 섞여 있었다. 마리누스와 레오는 그들을 위로 격려하면서 또 다른 개종자들을 얻고 있었다.
그 후 레오는 리미니의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어 몬테펠트로 갔고, 성 마리누스는 부제가 되었으나 그전의 석공 일을 계속하였다. 12년 동안 그는 수로공사 일을 하면서 뛰어난 기술자일 뿐만 아니라 신자 노동자의 모델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으니, 달마티아의 한 여인이 그를 자기 남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부인하지 않고 가만히 물러나서 몬테 티타노로 가서 숨어 살았다. 그 후 그는 계속하여 은수자 생활을 하며 여생을 지냈는데, 그가 살았던 곳을 중심으로 하여 오늘의 산 마리노 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모세(Moses)◀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율법학자
연대 :
성 모세(Moyses)는 출애급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요 예언자이자 율법의 중개자였다. 그의 절대적인 권위는 구약과 신약성서 시대는 물론 오늘날가지 이스라엘의 율법이 ‘모세법’이라고 불리는 전통이 철저히 지켜지는 데서도 드러난다. 구약성서의 모든 신학이 흘러나오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출애급 사건’과 ‘시나이 산 계약’이라고 한다면, 야훼 하느님이 모세를 선택하여 이 해방 사건과 계약의 중개자로 삼은 것은 바로 이스라엘 안에서 모세가 가지는 절대적인 권위의 근거가 된다. 출생에서부터 특별한 일화를 남기고 있는 모세는, 비록 모세오경 외의 구약성서에서 그 이름이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율법 중심의 이스라엘 사회에서 계약과 율법의 중개자로서의 그 독보적인 권위는 확고하다.
출애굽기 1장에 의하면 모세는 불어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위협을 느낀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이 낳은 자식 가운데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도록 명령한 시대에 태어났다. 그는 레위 지파에 속한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의 누이는 미리암이었으며 형제로는 아론이 있었다(출애 2,1; 6.16-20; 7,7; 민수 26,59; 1역대 23,12-14). 모세의 부모는 파라오의 눈을 피해 석 달 동안 기르다가 더 이상 숨기가 어려워지자 왕골 상자에 아기를 넣고 강물에 띄웠다. 파라오의 딸인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이를 안아 들자, 이를 지켜보던 아기의 누이(미리암)는 아기의 친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하여 아기는 다시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다가 파라오의 딸에게로 보내졌다.
모세는 공주의 양자로서 이집트 궁중 안에서 성장하였다. 청년이 된 모세는 어느 날 이집트인이 한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쳐 죽여 몰래 모래 속에 묻어 버리지만, 이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는 광야로 도망을 갔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시뽀라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장인 르우엘(혹은 이드로라고도 함, 출애 2,18; 3,1; 4,18; 18,1)의 집안에서 양 떼를 치는 목자 생활을 하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불꽃이 이는 가운데에도 타지 않는 떨기 가운데 신비로이 나타나신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극심한 노역에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고, 또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모세에게 이집트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당신이 약속하신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갈 것을 명하셨다(출애 3,1-12).
야훼 하느님의 사명을 받고 파견된 모세는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야훼를 섬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을 전하지만, 파라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역을 더욱 심하게 부과하여 모세는 같은 민족들로부터 원성을 듣게 되었다. 모세는 파라오의 고집을 꺾기 위해 야훼의 말씀에 따라 이집트 땅에 열 가지 재앙을 선포하였다. 결국 열 번째 재앙에 파라는 굴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주었다.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 나오지만 곧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받았다. 이 때 갈대 바다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서 바다를 건너고, 뒤쫓던 이집트 군대는 갈라진 바다 한가운데에서 다시 합쳐지는 물에 휩쓸려 몰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성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급을 한 지 석 달째 되는 초하룻날 시나이 광야에 이르게 되었다(출애 19,1). 야훼 하느님은 모세를 산 위로 부르시고 그를 중개자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삼아 계약을 맺으셨는데, 여기에서 모세의 특별한 위치가 분명히 드러났다. 모세는 산을 오르내리며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해 주었다. 모세가 백성 앞에 내놓은 하느님의 말씀은 곧 계약의 말씀으로서 주된 내용은 십계명이었다. 모세가 하느님의 이 모든 말씀과 법규들을 백성에게 전하자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환호하며 야훼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라 살 것을 서약하고, 모세는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의 제사를 드렸다(출애 24장). 이로써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야훼 하느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출애급의 해방 사건을 맞은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보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여행을 시작할 때, 광야에서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세에게 굶겨 죽이려고 이집트 땅에서 데려 내왔느냐는 식으로 대들고, 모세는 백성의 불평을 야훼께 아뢰어 만나와 메추라기와 물을 얻었다(출애 15,22-17,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생활을 하면서 단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동적인 위치에만 있지 않고, 하느님의 법이 곧 삶의 길임을 백성에게 가르치고, 혹 그들이 하느님의 길을 벗어날 때에는 맹렬히 비난을 하면서도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분노를 풀어드리기 위한 기도를 끊임없이 드렸다.
이렇게 모세는 야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면서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로이 탄생하게 하는 중개자가 되었고, 40년의 광야생활에서 한편으로는 하느님 백성의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백성에게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고 그들의 모함과 질시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죄를 일깨우고 하느님께 중재의 기도를 드려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 광야의 여정에서 만나는 이민족과의 전투에서는 군사 지도자로서 백성을 지휘하여 앞길을 터가야 했다.
40년 광야의 여정이 끝나고 예리고 맞은편 느보 산의 비스가 봉우리 위에서 야훼는 모세에게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자리한 약속의 땅을 보여주셨다. 이때 모세의 나이는 120세였다. 그러나 모세는 그 강을 건너지 못하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때 출애급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는 이미 광야에서 다 죽고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만이 남아 있었으니, 모세를 포함한 출애급 세대에게 허락된 몫은 자신들이 아닌 그 후손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의 풍요함을 누리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모세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신명 34장), 그로 인해 그의 무덤은 전례적인 장소가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모세는 고별사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치고(신명 32장), 축복 예언(신명 33장)을 하는 부분은 모세에 관한 성서 내용 중 아름다운 에필로그를 이루고 있다. 모세오경을 끝맺는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모세에 대한 찬사는 모세의 업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파시오 1세(Boniface I)◀

신분 : 교황
연대 : 422년
로마(Rome)의 사제였던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418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의 선출에는 큰 소란이 따랐다. 일단의 반대파들이 라테라노(Laterano)를 점거하고, 에우랄리우스를 교황으로 선출한 바로 그 다음 날 그가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황제 호노리우스는 두 번의 회의를 소집하여 보니파티우스의 적법성을 가려내고, 에루랄리우스와 그의 일파를 제거하였다. 보니파티우스는 펠라기우스파에 반대하던 선임자들의 정책을 계속하였고, 황제 테오도시우스를 설득하여 일리리쿰(Illiricum)을 서방교회 관할권으로 되돌아오게 하였으며, 펠라기우스파를 반박하는 수편의 글을 썼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를 공개적으로 지지함으로써 혼란스럽던 교회를 끝까지 잘 지켰다.
▶암미아노(Ammianus)◀
▶오체아노(Oceanus)◀
▶율리아노(Julian)◀
▶테오도로(Theodore)◀
신분 : 순교자
연대 : 310년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성 오케아누스(Oceanus), 성 암미아누스(또는 암미아노)와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동로마 제국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화형대 위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울탄(Ultan)◀
신분 : 주교
연대 : 657년
지역 : 아르드브라칸
성 울탄은 아르드브라칸의 주교인 듯하며 달 콘추베르 지방에서 사목생활을 하였다. 그는 특히 어린이에게 지극한 정성을 쏟았는데, 주로 가난한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에 헌신하였다. 성녀 브리지다(Brigid)의 찬미가 ‘우리 섬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성 울탄을 기리는 노래이다. 아일랜드에는 이런 말이 전해온다. “성 울탄의 오른 손에는 어린이들을 먹이는 양식이 있고, 왼손에는 약탈자들을 내좇는 힘이 있다.”
▶윌리엄 브라운(William Browne)◀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605년
지역 : 노샘프틴셔
토마스 웰본(Thomas Welbourne)과 윌리엄 브라운에 대한 기록은 극히 미미하다. 토마스 웰본은 영국 잉글랜드(England) 요크셔(Yorkshire)의 허턴 부셸(Hutton Bushel) 태생의 교사로서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고, 윌리엄 브라운은 노샘프턴셔 출신이다. 이들은 가톨릭 신자라는 죄목으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윌리엄은 리펀(Ripon)에서 순교하였으며 1929년에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하여 복자품에 올랐다. 빌리암 브라운으로도 불린다.
▶이다(Ida)◀

신분 : 과부
연대 : 825년
지역 : 헤르츠펠트
귀부인이었던 성녀 이다는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의 손녀딸로서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친은 샤를대제(Charlemagne)의 고관이었으므로 궁중에서 성장하여 에그베르투스(Egbertus)란 사람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청상과부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극도의 기도와 고행에 몰두하는 한편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데 전념하였다. 또 그의 아들은 어머니의 고결한 모습을 보고 자신도 수도자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관을 미리 만들어 두고 그 속에는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음식들을 보관하였다고 전해온다.
▶젠틸리스(Gentilis)◀
신분 : 순교자
연대 : 1340년
지역 : 마텔리카
이탈리아 안코나(Ancona)의 마텔리카 출신인 성 겐틸리스(또는 젠틸리스)는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서원한 뒤 알베르나 산으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두 번이나 수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극도의 고독과 침묵을 사랑하였다. 그 후 그는 이집트 선교사로 파견되었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왔다가 다시 페르시아로 가는 베네치아(Venezia) 대사를 따라 아라비아로 가던 중에 코마로에서 중병에 걸렸다. 그러나 그들은 시나이 사막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경당을 순례하였는데, 어느 날 하느님의 신비스런 권능에 의하여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탈리아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트레비소(Treviso) 지방을 돌며 설교하다가 순교하였다.
▶칸디다(Candida)◀
신분 : 베드로의 제자, 동정 순교자
연대 : 78년
지역 : 로마
로마에서 오랫동안 공경을 받아온 성녀 칸디다는 사도 베드로(Petrus)가 로마로 가는 여정 중에 나폴리(Napoli)를 통과할 때 처음으로 그를 환영한 여인으로 사도에 의해 기적적으로 병의 치유를 받았다. 그녀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사도 베드로의 제자가 되었고, 후에 나폴리의 초대주교가 된 성 아스프레누스(Asprenus, 8월 3일)를 개종시켰다. 성녀 칸디다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로마 성문 밖 오스티아노(Ostiano) 가도에서 순교하였다. 9세기에 그녀의 유해는 교황 성 파스칼 1세(Paschalis I)에 의해 성 프락세데스(Praxedes) 성당에 안치되었다.
▶타멜(Thamel)◀
신분 : 순교자
연대 : 125년
성 타멜은 이교도의 사제였으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동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그의 여자 형제를 포함한 동료 신자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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