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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9월 7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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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모니아(Grimonia)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피가르디

 

성녀 그리모니아는 아일랜드 어느 족장의 딸로서, 12세 때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평생 동정을 서원하였다. 이 같은 서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부친은 결혼하기를 강요하므로, 그녀는 프랑스로 도망하였고 피카르디의 티에라슈 숲에서 은수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녀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관상할 때이면 자주 탈혼상태에 빠져 들곤 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친이 보낸 사람들은 그녀를 찾으면 데려오든지 아니면 죽이라는 명을 받았다. 그녀는 끝내 돌아가기를 거절하므로 그들의 손에 살해당하였다. 이 이야기는 삽시간에 퍼져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녀가 살던 곳에 성당을 지었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라 샤펠이다. 그녀는 동정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한 것이다.

 

네모리오(Nemorius)

신분 : 부제, 순교자

연대 : 451년

 

   성 네모리우스(또는 네모리오)는 프랑스 트루아(Troyes)의 부제로 그곳의 주교인 성 루푸스(Lupus)에 의해 다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훈족(Hun)의 왕 아틸라(Attila)에게 자비를 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러나 훈족은 그들을 모두 참수시켰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다지 신빙성은 없지만 그들의 유해는 여전히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네모리우스는 메모리우스(Memorius, 또는 메모리오)로도 불린다.

 

랄프 코비(Ralph Corby)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598-1644년

 

더럼가(Family of Durham)의 후손인 랄프 코비는 메이누스에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양친과 함께 잉글랜드(England)로 돌아왔다. 그의 부친인 제랄드 코빙톤이 예수회원의 재정 보조자가 됨으로써 비로소 가톨릭과 화해하였고, 랄프 코비는 플랑드르(Flandre)의 바텐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632년에 그는 더럼 지방에 산재해 있는 신자들을 사목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런던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가톨릭 사제임이 발각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1644년 9월 7일 아침, 그는 타이번(Tyburn)에서 참수치명 당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다.

 

마델베르타(Madelberta)

신분 : 수녀원장

연대 : 706년

지역 : 모뵈주

 

성녀 마델베르타는 성 빈첸시오 마델가리우스(Vincentius Madelgarius)와 성녀 발데트루다(Waldetrudis)의 딸로 가족 모두가 성인 성녀로 공경을 받는 거룩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머니의 자매인 보뵈주의 성녀 알데군디스(Aldegundis)의 지도를 받으며 수도생활을 하다가, 알데군디스의 사망 후 수녀원장을 이어받은 자매 알데트루다(Aldetrudis)가 세상을 떠났을 때 원장직을 이어받았다. 그녀의 유해는 성 후베르투스(Hubertus)에 의해 722년경에 모뵈주에서 리에주(Liege)로 이장되었다.

 

마르코(Mark)

멜키오르(Melchior)

스테파노(Stephen)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1619년

지역 : 코시치

 

성 마르코(Marcus Knzevcanin)는 크로아티아(Croatia) 출신으로서 로마(Rome)의 제르마니쿰(Germanicum)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사제품을 받은 후 고향에서 일하기 위하여 귀향하였다. 그는 헝가리의 수석 주교 휘하에서 에스테르곰(Esztergom) 대교구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예수회원인 헝가리 출신의 성 스테파누스 폰그라츠(Stephanus Pongracz)와 체코 출신의 성 멜키오르 그로데크(Melchior Grondech)와 함께 슬로바키아(Slovakia)의 코시치 근방에서 선교사로서 활동하였다. 1619년 이들 사제들이 사도직과 교육 활동을 펴고 있던 중, 이 지방을 침략한 캘빈파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 야만적인 죽음을 당하였다. 그들은 1995년 7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코시치의 순교자로서 시성되었다.

 

소존(Sozon)

 

신분 : 순교자

연대 : 604년

지역 : 실리시아

 

성 소존은 세례명이고 보통으로는 타라시우스(Tarasius)라고 불렀다 한다. 그는 실리시아의 양치기였는데, 어느 날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던 중에 주님이 발현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지금 양떼를 떠나 나를 따르라” 하셨다. 그가 잠을 깨서 가까운 마을인 폼페이오폴리스로 갔더니 마침 그곳에서 이교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는 곧장 이교 신전으로 가서 황금 신상을 끌어내리고 손을 떼어내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이 사건 때문에 수많은 무죄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체포되는 것을 보고, 그는 법정으로 가서 자신의 행위를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후 그는 산 채로 화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스테파노(Stephen)

신분 : 주교

연대 : 1208년

지역 : 샤티용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프랑스 샤티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포르테(Portes)의 카르투지오회 수도원에서 입회하여 1196년 그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1203년 그는 디에(Die)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신분 : 순교자

연대 : 304년경?

 

로마 순교록에는 아퀼레이아(Aquileia)의 순교자인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의 순교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으나 순교 장소나 시기 등은 정확하지 못하다. 성 아나스타시우스는 아퀼레이아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는 사도의 말씀을 상기하여 마전장이(Fuller)가 되었으며, 주로 달마티아(Dalmatia)의 살로나(Salona)에서 영업을 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그는 자신의 신앙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용감하게 자기 집 문 밖에 십자가를 내걸었다. 그는 곧 체포되어 별다른 신문도 없이 목에 큰 바위를 건 채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그 도시의 귀부인인 아쉴레피아가 노예들을 시켜 유해를 회수하여 장례를 지냈다.

 

아우구스탈리스(Augustalis)

신분 : 주교

연대 : 450년

지역 : 프랑스

 

성 아우구스탈리스는 프랑스의 주교로 아마도 아를(Arles)의 주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아우구스탈루스(Augustalus, 또는 아우구스탈로)로도 불린다.

 

알크문도(Alcmund)

틸베르토(Tilbert)

신분 : 주교

연대 : 781년

지역 : 헥삼

 

성 알크문두스(Alcmundus, 또는 알크문도)와 틸베르투스(Tilbertus) 주교의 생애는 잘 모르지만 영국 잉글랜드(England) 노섬벌랜드(Northumberland) 헥삼의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성 알크문두스는 767년에 성 프리터베르투스를 계승하였고 성 아카(Acca)의 묘 근처에 묻혔다. 그러나 연대사가인 버틀러는 성 틸베르투스 역시 헥삼의 초창기 주교였다고 하나 기록상으로 그를 알 수 있는 근거는 전무한 형편이다.

 

에보르시오(Evortius)

신분 : 주교

연대 : 4세기?

지역 : 오를레앙

 

성 에보르티우스(또는 에보르시오)는 프랑스 오를레앙의 초대주교인 듯하고, 그의 이름이 공동 기도서의 달력에 나오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그는 처음에 로마 교회에서 봉사하던 부제였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프랑스 지방의 주교가 되었다는 이야기만 전해온다.

 

에우프시키오(Eupsychius)

신분 : 순교자

연대 : 130년

지역 : 카이사레아

 

성 에우프시키우스(또는 에우프시키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에서 순교하였다.

 

요한(John)

신분 : 순교자

연대 : 303년

지역 : 니코메디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칙령이 니코메디아에까지 붙여졌을 때, 평신도 한 명이 맨 먼저 처형당하였는데 그의 정확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요한’(Joannes)이란 이름으로 공경하곤 하였다.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요한은 황제의 이 잔인한 칙서를 보자마자 그것을 뜯어 광장에서 불태웠다고 한다. 이것이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삽시간에 온 니코메디아에 박해의 손길이 뻗혔다고 한다. 시리아인들은 그를 에우티스(Euthis)라고 부른다.

 

요한 둑켓(John Duckett)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613-1644년

 

요한 둑켓(Joannes Duckett)은 영국 잉글랜드(England) 요크셔(Yorkshire)의 세드버그에서 태어나 프랑스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에 들어가서 1639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파리(Paris)에서 공부하였는데, 이때 매우 높은 관상 수준에까지 올라갔다. 영국 선교를 결심하면서부터 그는 니외포트의 카르투지오 회원들과 함께 준비를 한 후, 12개월 동안 더럼(Durham) 지방에서 선교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런던으로 이감되어, 예수회원이던 복자 랄프 코비(Ralph Corby) 신부와 함께 처형되었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이해 시복되었다.

 

클로도알도(Clodoald)

신분 : 신부, 왕자

연대 : 520-560년

 

프랑크 왕국의 초대 국왕인 클로비스(Clovis)가 511년 파리(Paris)에서 사망한 후 그의 왕국은 네 명의 자녀들에게 분할 상속되었다. 이 중 둘째인 클로도미르(Clodomir) 왕이 524년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그의 막내아들인 성 클로도알두스(Clodoaldus, 또는 클로도알도)와 그의 두 형제는 프랑크 왕 클로비스의 미망인인 할머니 성녀 클로틸다(Clotilda)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들의 야심 많은 숙부 힐데베르트(Childebert)의 사주로 클로도알두스의 다른 두 형제는 어린 나이에 살해를 당했는데, 그는 이런 운명을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였다. 그는 성장하면서 프랑크 왕이 되라는 주변의 요구를 뿌리치고 은수자로서 삭발을 하였다. 그 다음에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참으로 조용한 생활을 하였다. 그가 운명한 지점이 오늘날의 베르사유(Versailles) 광장 부근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그곳을 생클라우드(Saint-Cloud)라 부른다.

 

팜필로(Pamphilus)

신분 : 주교

연대 : 400년

지역 : 카푸아

 

성 팜필루스(또는 팜필로)는 그리스 출신으로 교황 성 시리키우스(Siricius)에 의해 이탈리아 카푸아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런데 그의 유해는 베네벤토(Benevento)에 모셔져 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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