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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9월 22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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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냐(Digna)

에메리타(Emerita)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259년

지역 : 로마

 

로마의 처녀인 성녀 디냐와 성녀 에메리타(Emerita)는 재판관 앞에서 기도하는 중에 죽임을 당해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로마의 성 마르첼루스(Marcellus) 성당에 모셔져 있다.

 

라우토(Lauto)

신분 : 주교

연대 : 568년

지역 : 콩스탕스

 

성 라우토는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 지방 콩스탕스의 주교로서 40년 동안 사목하였다. 때때로 성 로(Lo) 또는 성 라우두스(Laudus)로도 불리는 그의 가족들의 토지는 후에 생로(Saint-Lo)의 마을이 되었다.

 

비탈리스(Vitalis)

빅토르(Victor)

엑스수페리오(Exsuperius)

인노첸시오(Innocent)

칸디도(Candidus)

 

신분 : 군인, 순교자

연대 : 287년경

지역 : 아가우눔

 

프랑스 리옹(Lyon)의 주교인 성 에우케리우스(Eucherius)에 의하면, 막시미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테반의 헤르쿨리우스 부대는 이집트 상류에서 온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부대장인 성 마우리티우스(Mauritius)와 수많은 동료들은 바고데족을 격퇴한 승전 축하연에서 이방신에게 희생 제물 드리는 것을 거절하였다. 거듭 같은 명령이 떨어졌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에 황제는 반란을 두려워한 나머지 일단의 테반 부대원들을 아가우눔(Agaunum)에서 전멸시켰다고 한다.

   이들의 지도자는 성 마우리티우스와 엑스수페리우스(Exsuperius) 그리고 칸디두스(Candidus)였다고 한다. 또한 이름이 전해지는 군인 순교자로 성 비탈리스, 빅토르(Victor),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 등이 있다. 후일 전기 작가들은 쾰른(Koln)에서 파엔그라까지 무수한 무명의 테반 부대 순교자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현재 생 모르스 앙발래에 있는 수도원은 이때 죽은 순교자들을 기념하여 세운 수도원이라 한다. 이들은 보통 아가우눔의 순교자들로 기억되고 있다.

 

살라베르가(Salaberga)

신분 : 수녀원장

연대 : 665년

 

뤽세이유(Luxeuil)의 성 에우스타시우스(Eustasius)가 바이에른(Bayern) 여행을 마치고 수도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집에서 쉬게 되었다. 그 집에는 맹인 소녀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살라베르가였다. 그는 이 소녀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였는데, 기적적으로 그녀의 시력이 회복된 것이다.

그 후 성녀 살라베르가는 장성하여 어느 젊은이와 결혼하였으나 두 달 만에 남편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이것은 분명히 하느님의 계획으로서 자신이 수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단정하였으나, 부모들은 그녀를 블란디누스란 사람과 재혼시켰다. 그녀는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 그들 중에 보두인과 안스트루다는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이 부부는 이제 세상을 떠나 수도원에서 살기로 결심하고 각기 헤어졌는데, 블란디누스는 은수자가 되고 살라베르가는 수녀가 되었다. 

성 보도(Bodo)는 그녀의 동생인데, 살라베르가가 설득하여 그의 아내는 라옹(Laon) 수도원으로 보내고,보도는 수도자로 만들었다. 성 보도는 후일 툴의 주교까지 되었다.

 

상티노(Sanctinus)

신분 : 주교

연대 : 300년

지역 : 뮤

 

성 상티누스(또는 상티노)는 프랑스 파리(Paris)의 초대주교인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의 제자로 뮤(Meux) 교구의 초대주교였다. 그는 또한 베르됭(Verdun) 교구를 설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엠메라모(Emmeramus)

신분 : 주교

연대 : 7세기

지역 : ㅠㅜ아티에

 

거룩한 순회 설교가 성 엠메라무스(또는 엠메라모)는 프랑스의 푸아티에 지방을 주로 다니며 지칠 줄 모르고 복음을 선포하다가 푸아티에의 주교로 정착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어느 교구의 명단에도 올라 있지 않다고 한다. 엠메라무스는 독일 지방에 우상숭배자들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바이에른(Bayern)으로 갔는데, 그는 이곳에서 3년 동안 설교하여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 후 그는 로마(Rome)를 순례하려고 길을 가다가 뮌헨(Munich)과 티롤(Tirol) 사이에서 테오도 백작의 부하들에 의하여 만행을 당하였다. 결국 그때 생긴 상처 때문에 끝내 운명하였다. 엠메라무스 성인의 유해는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에 이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밝혀진 바 없다. 또한 그가 백작의 부하들에게서 상처를 입게 된 원인도 신비에 속한다.

 

요나(Jonas)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3세기

 

프랑스 파리(Paris)의 주교인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의 제자인 성 요나 신부는 파리 인근을 복음화하였다. 그는 로마제국의 지방장관 율리아누스에 의해 파리에서 채찍질과 칼을 맞고 순교하였다.

 

이라이스(Irais)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300년

 

  이집트 태생의 성녀 이라이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녀는 헤라이스(Herais)로도 불린다.

 

토마스(Thomas)

신분 : 대주교

연대 : 1488-1555년

지역 : 발렌시아

 

알론조 토마스 가르시아와 루치아 마르티네스 카스텔라노스의 아들로 태어난 빌라 노바의 성 토마스(Thomas a Villa Nova)는 에스파냐 카스티야(Castilla)의 푸엔텔라나(Fuentellana)에서 나서 자랐고, 10세 때에 알칼라(Alcala)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여기서 문학 석사와 신학교수 자격증을 받고, 불과 26세의 나이에 그 대학교의 교수로 발탁되었다. 1516년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하여 1518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여러 수도원의 원장을 역임하다가 안달루시아(Andalusia)와 카스티야의 관구장이 되었다. 이때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회 최초의 선교단을 멕시코로 파견하였다. 

그 후 그는 카를로스 5세의 전속사제로 임명되었으나 그라나다(Granada)의 주교직은 거부하던 중 1544년에 발렌시아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이 교구는 90년 동안이나 주교좌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그는 즉시 개혁에 착수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일약 유명한 주교로 인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어인들의 개종을 위해서도 정열을 쏟았다. 또한 그는 사제들로 하여금 개종자들의 어린이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조처하였다. 비록 트렌토 공의회(Council of Trento)에는 참석하지 못하였으나 에스파냐 교회 내의 개혁 운동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

 

펠릭스 3세(Felix III)

신분 : 교황

연대 : 530년

 

526년 교황 요한 1세(Joannes I)가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고 돌아오자마자 이탈리아 동고트족(Ostrogoths)의 왕 테오도리쿠스(Theodoricus)에 의하여 투옥되어 얼마 후에 서거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테오도리쿠스 왕은 펠릭스 신부를 그의 후임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임을 이용하여 교회의 유익을 꾀하는 매우 현명한 정책을 펴 나갔다. 성 펠릭스는 아를(Arles)의 성 카이사리우스(Caesarius)의 은총과 자유 의지에 관한 저서를 승인하였고, 529년의 프랑스 오랑주(Orange) 제2차 시노드(Synod)에 대표자를 파견하였으며, 성 코스마(Cosmas)와 다미아누스(Damianus) 대성당을 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4년간 재임하였는데, 가장 돋보이는 점은 그의 단순성과 겸손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이었다고 한다.

 

포카(Phocas)

 

신분 : 정원사, 순교자

연대 : 303년

지역 : 시노페

 

흑해 근방 파피아고니아(Paphiagonia)의 시노페(Sinope)에서 정원사로 있던 성 포카는 기도와 관상의 엄격한 생활을 하면서 여행자들에게 쉴 곳을 제공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또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을 적극 도왔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트라야누스 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순교하였다.

한 번은 일단의 군인들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 그는 군인들이 쉴 곳을 마련해 주었는데, 그들의 말인즉 포카라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군인들에게 내일 아침에 그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성 포카는 자신의 임종 준비를 마치고 무덤을 판 뒤에 군인들에게 자신이 포카임을 밝혔다. 그때 군인들은 그의 친절한 자세와 용기에 기가 꺾였으나 이미 명령을 받은 자들인지라 그를 참수시켰다고 한다.

 

(가톨릭 굿뉴스 홈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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