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렌시오(Laurence)◀ (복자)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457년
지역 : 리파프라타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이미 부제품을 받고서 피사(Pisa)에 있는 설교자회에 입회하여 다년간 학문과
설교를 연구하였으며, 코르토나(Cortona) 수도원의 수련장이 되었다. 그는 매우 엄격히 회칙을 준수하는 사람이었으나, 이해심이 많았고
수련자들이 하느님의 사랑에 불타오르도록 지도했던 뛰어난 수도자였다.
그의 수련생 중에서 뛰어난 제자들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프라 안젤리쿠스 그리고 무젤로의 베네딕투스(Benedictus)가 있다. 그는 프라 안젤리쿠스와 베네딕투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안배하면서, 입에서 나오는 말과 같이 그림으로도 설교할 수 있다는 신념을 그들에게 심어주어 후일 위대한 화가로 만들었다. 또
그의 해박한 성서 지식은 그로 하여금 ‘성서의 궤’라는 별명을 얻게 하였다. 또한 그는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에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 특히
농아들을 위하여 수도자들이 봉사토록 배려하였다.
▶레오 이냐시오 만진(Leo Ignatius Mangin)◀

신분 : 수교자
연대 : 1900년
지역 : 중국
4명의 예수회원과 52명의 중국인 평신도들이 1900년에 순교하였는데, 레오 이냐시오 만진은 그들의 대표자였다. 그는 2000년
10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중국 교회 120명의 성인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리오바(Lioba)◀
신분 : 수녀원장
연대 : 782년
성녀 리오바는 웨식스(Wessex)의 훌륭한 가문 출신으로, 그녀의 모친 에바는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와 친척이다.
세례명은 트루트게바였으나 흔히들 지오브게타라 부르다가 줄여서 리오바라 하였다. 그녀는 성녀 테타가 원장으로 있던 윔보른(Wimborne)
수도원에서 지냈는데, 그녀의 천진난만한 성품과 온순함은 다른 수녀들의 모범이 되었다.
크레디톤의 성 보니파티우스가 주교가
되면서 원장 수녀에게 부탁하여 독일 내의 자기 선교지역에 30명의 수녀들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하자, 원장은 리오바를 원장으로 삼아 수녀들을
파견하였다. 그들은 프랑코니아(Franconia)의 비쇼프스하임(Bischoffsheim)에서 활동을 개시하여 급속도로 퍼져나가 독일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그들은 조화로운 공동체, 부지런한 수녀 혹은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자매들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리오바
원장은 용모도 아름다웠고 지적 수준도 어느 성직자 못지않았다. 이리하여 독일에서 그녀는 유명인사가 되었으므로, 주위 사람들은 무슨 위험이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주교나 성직자까지도 그녀의 충고를 들으러 왔다. 특히 카알 대제의 왕비 부인이 된 힐데가르트(Hildegard)는 절친한
친구였다. 776년에 그녀는 다른 수녀원으로 은퇴하여 지내다가 782년 9월 28일 마인츠(Mainz) 근처
쇼른스하임(Schornsheim)에서 운명하여 풀다에 안장되었다.
▶베드로 산즈(Peter Sanz)◀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1747년
지역 : 중국
1747년과 1748년 사이에 중국의 푸첸 지방에서는 성 베드로 산즈(Petrus Sanz) 주교와 네 명의 사제들이 순교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성 프란치스코 세라노(Franciscus Serrano), 요아킴 로요 페레스(Joachim Royo Perez), 요한 알코버
피구에라(Joannes Alcober Figuera) 그리고 프란치스코 디아스(Franciscus Diaz)이다. 이 다섯 명의 에스파냐
선교사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열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들의 지도자인 베드로 산즈 주교는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Cataluna)의 아스코 출신으로 1714년에 중국에 입국하여 활동했고, 1730년에는 모리카스트로의 주교로서 선교단의
책임자였다. 성 베드로는 순교하기 전에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용기를 잃지 마시오. 하느님의 법을 위하여 죽는 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그 후 그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베드로 산즈 주교와 동료 사제들은 모두 2000년 10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중국 교회 120명의 성인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시몬 데 로하스(Simon de Rojas)◀
신분 : 신부, 수사
연대 : 1624년
성 시몬 데 로하스는 삼위일체회의 모범적인 수도자로 뽑혀서 에스파냐의 국왕 필립 3세의 궁에서 지냈다. 여기서 그는 왕비인 이사벨라의
고해신부로 큰 활동을 하였는데, 마드리드에 페스트가 만연하자 희생자들을 돌볼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국왕은 그가 병균을 옮겨올까 두려운
나머지 이를 금지시켰다. 이에 그는 궁중을 떠나 선교사로 활약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성모 성명 축일의 성무일도를 만들 정도로 성모
성명 신심에 불탔던 인물이었다.
▶에우스토키움(Eustochium)◀

신분 : 동정녀
연대 : 419년경
지역 : 베들레헴
성녀 바울라(Paula)의 딸인 성녀 에우스토키움 율리아(Eustochium Julia)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를 그들의 영적 지도자로 모시고 열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382년에 그녀는 평생 동정을 서약하였는데, 그녀의
갸륵한 행동에 감탄한 성 히에로니무스는 “동정을 지키는 일에 관하여”(384년)라는 유명한 글을 남겼다.
그녀는 어머니와
히에로니무스와 함께 예루살렘 성지로 갔는데, 이들 모녀는 베들레헴에서 히에로니무스의 성서 번역을 여러 면에서 도왔다. 또한 그녀는 성
히에로니무스가 설립한 새 공동체를 지도하는 어머니를 도왔고, 후일 그녀는 어머니 바울라가 운명하였을 때 원장이 되었다. 에우스토키움은 이
수도원을 크게 개혁하였으나 약탈자의 무리들이 수도원을 파괴한 이후로는 다시 일으키지 못하였다고 한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그녀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베들레헴에서 운명하였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글에 의하면 그녀는 조그마한 육체에 큰 덕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한다.
▶엑스수페리오(Exsuperius)◀
신분 : 주교
연대 : 412년경
지역 : 툴루즈
피레네 산맥의 아로에서 출생한 성 엑스수페리우스(또는 엑스수페리오)는 405년경에 툴루즈의 주교로 승품되어 그의 선임자인 성
실비우스(Silvius)가 시작했던 성 사투리아누스(Saturianus) 대성당을 완공시켰다. 이 주교의 뛰어난 특징은 관용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집트와 팔레스티나(Palestina)에까지 은수자들에게 선물을 보냈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는 그로부터 선물을 받고 “그는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을 곧 자기 자신으로 알았던 사람”이라고 엑스수페리우스의 성덕과 관용을 격찬하는 감사의 글을 보낼 정도였다.
창백한 그의 얼굴은 다소 엄격하게 보였지만 실은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지닌 애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그리스도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사망 연대와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의 과도한 자선행위 때문에 죽기 얼마 전에 유배를 갔기
때문인 듯하다. 성 바울리누스(Paulinus)는 이분이 지방 교회에서 가장 위대한 주교 중의 한 분이었다고 회상하였다.
▶요아킴 로요 페레스(Joachim Royo Perez)◀

▶요한 알코버 피구에라(John Alcober Figuera)◀

▶프란치스코 디아스(Francis Diaz)◀
▶프란치스코 세라노(Francis Serrano)◀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1747년
지역 : 중국
1747년과 1748년 사이에 중국의 푸첸 지방에서는 성 베드로 산즈(Petrus Sanz) 주교와 네 명의 사제들이 순교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성 프란치스코 세라노(Franciscus Serrano), 요아킴 로요 페레스, 요한 알코버 피구에라(Joannes Alcober
Figuera) 그리고 프란치스코 디아스(Franciscus Diaz)이다. 이 다섯 명의 에스파냐 선교사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열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들의 지도자인 베드로 산즈 주교는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Cataluna)의
아스코 출신으로 1714년에 중국에 입국하여 활동했고, 1730년에는 모리카스트로의 주교로서 선교단의 책임자였다. 성 베드로는 순교하기 전에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용기를 잃지 마시오. 하느님의 법을 위하여 죽는 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그 후 그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베드로 산즈 주교와 동료 사제들은 모두 2000년 10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중국 교회
120명의 성인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파우스토(Faustus)◀
신분 : 주교, 수도원장
연대 : 493년경
지역 : 리에즈
성 파우스투스(또는 파우스토)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사람으로 처음에는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양심적으로
변호하기가 어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레랭 수도원의 은수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7-8년을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성
막시무스(Maximus)를 계승하여 원장이 되었다. 그는 동시대를 살았던 성 호노라투스(Honoratus)와 성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Sidonius Apollinaris)로부터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들에 의하면 그는 사막의 교부처럼 엄격한 수도생활로 성덕을
높이 닦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리에즈의 주교로 승품되었다. 그는 훌륭한 주교이자 수도원장이었다. 주교직을 수행하면서도
수도자의 고행과 기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를 배격하여 강력히 대처한 분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성 요한 카시아노(Joannes Cassianus)와 힘을 모아 아리우스(Arius) 이단 등 교회 내의 모든 이단을 거슬러
정통 교리를 옹호하였다. 결국 그는 이런 활동의 결과로 죽을 때까지 유배형을 받았다.
(가톨릭 굿뮤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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