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오(Lucius)◀
▶프톨레메오(Ptolemaeus)◀
신분 : 순교자
연대 : 161년경
성 유스티누스(Justinus) 순교자 당시에 어느 부인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 남편을 개종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예비자 모임에 인도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나태하여 그 모임에 나가지 않으므로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남편과 헤어졌다. 이에 앙심을 품은 남편이 그녀를
고발하였지만 무혐의로 풀려나자, 그 대신에 자기에게 교리를 가르친 성 프톨레메우스(Ptolemaeus)를 고발하여 체포되었다. 그가 재판을 받는
자리에 함께 있던 성 루키우스(또는 루치오)라는 사람은 재판관에게 항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죄를 범한 일이 없는데 왜 사형선고를
내리는지요?” 이때 재판장은 그 역시 그리스도인인줄 알고 함께 처형하여 이들은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바로(Varus)◀
신분 : 군인, 순교자
연대 : 4세기경
로마의 순교록에는 이집트의 성 바루스(또는 바로)의 고난 이야기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황제 막시미누스 치하의 군인이던 바루스는
거룩한 일곱 명의 수도자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들을 찾아가서 먹을 것을 넣어주곤 하였는데, 그분들 중에서 한 분이 운명하자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 후 혹심한 고문이 시작되어 나머지 수도자들과 함께 거룩하게 순교하였다.”
▶베라노(Veranus)◀
신분 : 주교
연대 : 590년
지역 : 카바이용
프랑스의 보클뤼즈(Vaucluse)에서 태어난 성 베라누스(또는 베라노)는 카바이용의 주교로서 자선사업 개발의 지도자로서 또 지역
수도원의 후원자로서 봉사하였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는 그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베로니코(Beronicus)◀
▶펠라지아(Pelagia)◀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베로니쿠스(또는 베로니코)와 성녀 펠라기아(Pelagia)를 비롯한 총 51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중에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아퀼리노(Aquilinus)◀
신분 : 주교
연대 : 620-695년
지역 : 에브뢰
성 아퀼리누스(또는 아퀼리노)는 프랑스의 바이외(Bayeux)에서 태어나 궁중에서 지냈다. 그는 클로비스 2세의 전투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아내인 샤르트르를 만났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며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데 여생을 바치기로 서로
약속했다. 이 당시 성 아퀼리누스는 40세였다. 그들은 에브뢰로 가서 10여 년 동안 조용히 살았는데, 성 에테르누스의 서거로 말미암아 성
아퀼리누스가 그 주교직을 계승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는 비록 원하지 않았으나 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주교로 착좌하였으나,
주교보다는 은수자 생활이 더 알맞다고 느꼈으므로 항상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주교좌 옆에 움막을 짓고서 많은 시간을 보속과 고행
그리고 기도 중에서 하루의 삶을 살았다. 만년에 그는 시력을 잃었다.
▶에우스테리오(Eusterius)◀
신분 : 주교
연대 : 5세기
지역 : 살레르노
성 에우스테리우스(또는 에우스테리오)는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 살레르노의 제4대 주교였다는 기록만이 남아 있다.
▶에트비노(Ethbin)◀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6세기경
지역 : 킬데이
성 에트비누스(Ethbinus, 또는 에트비노)는 15세 때 아버지를 잃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성 삼손(Sampson)의 지도를 받고
성장하도록 배려하였다. 후일 그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에서 성 빈발로에(Winwaloe)의 지도하에 수도생활을 시작하면서
열심히 생활하였다.
어느 날 그의 스승과 함께 길을 가는 도중에 길가에 버려진 가련한 나환자 한 사람을 보았다. “이 불쌍한
벗을 위해 할 만한 일은 없겠는가?” 하고 스승이 물었다. 이때 에트비누스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했던 대로 하겠습니다. 그를 일으켜 함께
걷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스승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굳은 믿음과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신뢰심을 엿보고 만족해하였다. 그는
마침내 그 나환자를 치유하였다고 한다.
에트비누스의 수도원이 프랑크족들에 의해 파괴되자 그는 아일랜드로 피신하여 그곳의
킬데어 부근 숲속에서 거의 20년 동안 살다가 운명하였다. 그의 덕행과 기적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로마 전례력에는 그의 이름이 나오지만
아일랜드 교회력에는 나오지 않는다.
▶요한(John)◀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946년
지역 : 릴리
성 요한(Joannes)은 초창기의 불가리아 수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60여 년 동안이나 릴라 산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여기서 그는
릴라 대수도원을 세웠는데, 1947년에 공산 정부에 의하여 역으로 개조될 때까지 수세기를 이어온 유명한 수도원이었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신분 : 과부
연대 : 4세기경
지역 : 시리아
막시미누스 황제 치하의 박해 때 순교한 성 바루스(Varus, 10월 19일)의 유해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어느 신자 과부에 의하여 털로
만든 가마니에 숨겨서 아드라하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성녀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았으므로 그들은 순교자의 무덤을 중심으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성녀의 아들 요한(Joannes)이 군인이 되었을 때 그녀는 성 바루스를 공경하는 대성당을 짓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성당을 완공한 날에 그 아들이 갑자기 병을 얻어 죽어버렸다. 그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몸부림치다가 하느님께 당신의 외아들을 살려주십사고 늘
기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꿈에 성 바루스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이 내게 보여 준 사랑을 내가 잊은
듯싶은가? 내가 그대의 아들을 살려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은 듯 보이는가? 보라. 이제 그 응답이 왔다. 그는 이제 기력을 되찾았다.”
성녀는 “이제 만족합니다. 그러나 나도 이제 성인과 내 아들과 함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자, “안 된다. 나는 네 아들과 함께 있어야 하니
좀 더 기다리면 우리가 영접할 것이다." 하고 성인이 대답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성녀는 지금까지의 모든 슬픔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순교자에 대한 사랑으로 여생을 살다가 운명하였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성 바루스와 아들 요한 곁의 대성당에 안장하여 공경해 왔다.
▶토마스(Thomas)◀
신분 : 신부, 선교사
연대 : 1187-1257년
지역 : 비비유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Normandie)의 비비유 지방 태생인 토마스 엘리에(Thomas Helye)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신심이 지극했고 성장해서는 고향 마을의 교사 및 교리 선생이 되었다. 그의 교수법이나 강의 내용이 좋아서
이웃 마을 셰르부르(Cherbourg) 주민들의 초청으로 그곳 아이들도 가르쳤으나 병으로 인하여 중도에서 그만두었다.
병에서
회복된 그는 로마(Rome)와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순례한 후 사제가 되었는데 그에게는
설교의 특은이 내렸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마치 선교사인양 설교하는 일에 전념했고, 병자와 죄인들을 방문했으며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대변자로 활약하였다. 그는 인근의 아브랑슈, 바이외(Bayeux) 그리고 리지외(Lisieux) 등 수많은 지역을 무리하게 다닌 결과 중병을
얻어 결국 망슈(Manche)의 보빌(Vauville) 성에서 선종하였다.
▶프레데스빈다(Fredeswinda)◀
신분 : 수녀
연대 : 735년경
지역 : 옥스퍼드
프리데스위다(Frideswide)로도 불리는 성녀 프레데스빈다는 영국 옥스퍼드 시와 대학교의 수호성녀이지만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전해 오는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공주였으나 결혼을 피하기 위하여 왕궁을 뛰쳐나왔고, 3년 동안 평복을 입고 숨어
살았다고 한다. 결국 청혼자가 그녀와의 청혼을 포기하게 되자 성녀 프레데스빈다는 옥스퍼드에 베네딕토회 수녀원을 짓고 여생을 기도와 고행 속에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필립보 하워드(Philip Howard)◀
신분 : 순교자
연대 : 1595년
영국 잉글랜드(England) 동부 노퍽(Norfolk)의 네 번째 공작인 토마스 하워드(Thomas Howard)는 1572년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명에 의하여 참수를 당하였기 때문에 그의 아들 성 필리푸스 하워드(Philippus Howard, 또는 필립보 하워드)는
노퍽의 공작 지위를 계승하지 못하였다. 그는 12세 때에 데크르(Dacre) 경의 딸 앤(Anne)과 결혼하였다. 그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궁전으로 갔을 때, 그는 더 이상 당할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여왕의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아내를 무시하고 또 여왕의
환심을 사려고도 노력하였으나, 런던탑의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 아내와 결합하고 또 예수회원인 윌리엄 웨스턴 신부의 도움으로 교회와
화해하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재차 투옥되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플랑드르(Flandre) 지방으로 피신시키고 여왕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필리푸스 하워드는 결국 38세의 일기로 순교했는데, 10여 년 이상을 감옥에서 지냈다. 그의 개종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위였고, 틈만 나면 신심서적들을 저술하거나 번역하여 영국내의 가톨릭 운동에 기여했다. 그는 일주일에 3일씩 단식함으로써 건강이 좋지 못하였으며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기도를 바친 열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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