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르펠 가다른(4.4)◀
신분 : 은수자, 증거자
연대 : 5세기경
전설에 의하면 성 데르펠 가다른은 웨일즈(Wales) 출신의 위대한 군인이었으며, 국왕 아서가 살해된 캄란에서 싸운 경력이 있을 정도로 용맹하였으나, 모든 것을 버리고 바르드시(Bardsey)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그 후 거처를 옮겨 란드펠(Llanderfel), 메리오네스셔(Merionethshire) 및 웨일스(Wales) 지방에서 독수자로 살았는데, 그의 출중한 덕행이 널리 알려져 방문객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나무로 만들어 오랫동안 공경을 받아오던 그의 성상은 1538년 스미스필드(Smithfield)에서 복자 요한 포레스트(Joannes Forest, 5월 22일)를 화형에 처할 때 토마스 크롬웰(Thomas Cromwell)의 명령에 의해 화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베네딕토(4.4)◀
신분 : 수사
연대 : 1526-1589년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아프리카 계통의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의 메시나(Messina) 근처에서 노예로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 베네딕투스는 시칠리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에 그의
주인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그가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공적으로 해를 입었을 때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그러나 그는 대단한
인내심과 놀라운 인품을 드러냄으로써 이 위기를 극복하였고, 프란치스코 은수자 그룹에 들어갔다. 1564년에 이 그룹이 해산되자 베네딕투스는
팔레르모(Palermo)의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1578년에 새 원장을 뽑을 때 평수사인 베네딕투스가
선출되었는데, 그는 단순한 수도자였고 전혀 아는 체 하지 않는 점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이 직책을
수락하여 성공적으로 원장의 직무를 수행하였고, 프란치스코회의 규칙을 글자 그대로 실행하려고 노력하였다. 후일 그는 수련장까지 겸하였다.
그의 이해심과 동정심은 치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으로 명성을 얻게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였다. 만년에는
그가 처음에 하던 부엌일을 하면서도 아주 평화스럽게 생활하였다. 그가 '흑인 베네딕투스'라 불리는 이유는 흑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누비아족(홍해
지방의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4월 4일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선종하였으며, 1743년에 시복된 후 1807년에 성인품에
올랐다.
▶베드로(4.4)◀
신분 : 주교
연대 : 1115년
지역 : 푸아티에
프랑스의 국왕 필립 1세가 아내 베르타와 인연을 끊고 수도원으로 들어왔을 때 성 베드로(Petrus)가 그 수도원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왕의 입회는 큰 파문을 불러 일으켜 시노드(Synod)까지 열렸는데, 이 시노드는 왕의 불법적인 이혼을 따지고 그를 파문하였다. 그 후 그는 로마(Rome)로 가서 이 판결의 부당성을 호소하였지만, 고위성직자들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 후 그는 쇼비니 성으로 유배되었다가 운명하였다.
▶아가토포(4.4)◀
신분 : 부제, 순교자
연대 : 303년
테살로니카(Thessalonica) 교회에서 봉사하던 성 아가토푸스(또는 아가토포) 부제와 성 테오둘루스(Theodulus) 독서자는 막시미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총독 파우스티누스에게 끌려가서 고문을 받은 후 목에 돌을 매단 채로 물속에 집어넣는 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조시모(4.4)◀
신분 : 은수자
연대 : 5세기경?
지역 : 팔레스티나
젊은 테오도시우스의 통치 때 팔레스티나에는 한 곳에서만 43년 동안 살았고, 하느님만 섬기는 성 조시무스(또는 조시모)라는 수도자가
있었다. 그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요르단으로 향하였으나 자신은 자기 수도원과 20일 간의 거리나 떨어져 있었는데 기도시간이 되어 시편을 외우고
있었다. 이때 그는 “조시무스 신부님, 나는 여자입니다. 당신의 겉옷을 던지면 나를 볼 수 있습니다”라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의 주인공이 곧 이집트의 마리아이다. 그녀는 이집트 여성으로 17년 동안이나 거리의 여성으로 살아 왔는데,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28세 때 그녀는 예루살렘으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러 가는 일단의 무리들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여행을 하는 도중에 자기의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열심한 순례자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예루살렘에 당도하여
성당에 들어가려 하니,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듯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서 있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윽고 눈을 들어 마리아상을 바라보니, 그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고 한다. 그때서야 그녀는 밝은 마음으로 성당으로 들어갔고 깊이
통회하니, “너는 요르단으로 가서 여생을 지내라”고 명하여 이렇게 사막에 산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요르단 사막에서 47년 동안이나 사람 한 사람
구경하지 못하고 살았다.
조시무스는 그녀를 위해 성체를 영해 주고, 다음 해에 만나기로 하고 돌아왔다. 다음 해에 그가 다시
만나 성체를 영해 주고 그녀가 약속한 두 번째 지점으로 갔으나 그녀는 이미 운명하고 있었다. “조시무스 신부님, 가련한 마리아를 장사지내
주십시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는 이 사실을 자기의 모든 형제들에게 이야기 해 주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테오둘로(4.4)◀
신분 : 독서자, 순교자
연대 : 303년
테살로니카(Thessalonica) 교회에서 봉사하던 성 아가토푸스(Agathopus) 부제와 성 테오둘루스(또는 테오둘로) 독서자는 막시미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총독 파우스티누스에게 끌려가서 고문을 받은 후 목에 돌을 매단 채로 물속에 집어넣는 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티제르나크(4.4)◀
신분 : 주교
연대 : 549년
지역 : 클로거
성 티제르나크는 왕손으로 킬데어(Kildare)의 성 콘레트(Conleth)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며, 성녀 브리지다(Brigida)는 세례 때 그의 대모(Godmother)였다. 소년 때에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렸으나 후일 그는 자유를 얻었다. 그때부터 그는 스코틀랜드의 로스낫(Rosnat) 수도원에서 모넨노의 제자가 되었으며, 로마(Rome) 순례 뒤에는 아일랜드로 가서 클로거 교구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늙어서 그는 시력을 상실했지만 그의 기도와 관상생활은 끊이질 않았다. 티에르니(Tierney) 또는 티에리(Tierry)로도 불린다.
▶플라토(4.4)◀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813년
지역 : 사쿠디온
콘스탄티노플에서 출생한 성 플라토는 13세 이전에 그 지방을 휩쓴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왕궁의 재무상이던 삼촌 밑에서 교육을 받고
그의 보좌관이 되었다. 그러나 22세 때에 그 중요한 직책을 사임하고 수도생활로 들어섰다.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팔아서 이등분한 후 자신의 두
여동생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자기는 올림푸스 산의 심볼레온(Symboleon) 수도원으로 가기 위하여 소아시아 북서부 지방인
비티니아(Bithynia)로 떠났다.
그는 여기서 철저한 보속생활을 실천하면서 교부들의 저서 사본을 만드는 작업에
전념하였다. 770년에 원장 테옥티스투스(Theoctistus)가 서거할 때 그가 후임자로 뽑혔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36세였다. 그 후
그는 심볼레온을 떠나 사쿠디온으로 가서 20년 동안 원장으로 있다가 사임한 일도 있었다. 그 후 정치적인 이유로 니케포루스
1세(Nicephorus I) 황제가 그를 보스포루스(Bosporus)의 한 섬으로 추방했는데, 이때 그는 늙고 병든 몸이었다. 811년 미카엘
1세 황제는 그를 석방하고 크게 존경하였다. 그는 평온하게 운명하였고, 그의 조카인 성 테오도루스(Theodorus)가 그의 장례를
주관하였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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