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시오(4.8)◀
신분 : 주교
연대 : 180년
지역 : 코린토스
코린토스의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주교는 2세기의 감동적인 설교가이자 뛰어난 교회의 지도자였다. 오늘날 그는 가르치고
훈계하며 위로를 주려했던 교회작가로 부각되어 기려진다. 여러 교회에 보냈던 몇 개의 편지가 현재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로마에서 발생한 사도 베드로(Petrus)와 바오로(Paulus)의 순교 기록이다. 코린토스에 신앙을 퍼뜨린 후 두 사도들은 이탈리아로 갔고
그곳에서 그들의 증언을 피로써 보증했다.
교회 역사가인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다른 교회에 보낸 교훈적인 편지들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는 교황 성 소테르(Soter, 4월 22일)의 재임 기간 중 로마 교회에서 받은 전통적 지원금에 대해 로마 교회에 쓴 감사
편지이다. 그 편지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시초부터 모든 곳에 지원금을 주어 많은 교회들이 존재할 수 있는 윤택함을 주는 것이 로마 교회의
관습이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교부들의 예를 따라 광산에서 일하는 이들의 필요에 적절한 위안을 주었습니다. 로마 교회의 복된 주교 소테르는 그런
점에서 조상들의 전통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 위로와 조언을 차치하고라도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부드러운 음식의 보고를 주시며
모든 이가 그에게 다가오도록 해 주십니다. 오늘 주님의 날을 함께 경축하며 클레멘스(Clemens)가 우리에게 보내셨던 편지를 읽었던 것과
동일하게 교황님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성 디오니시우스는 오히려 성서의 잘못에서 기인하는 그릇된 학설보다 이교도적
철학 원리를 수용하면서 생기는 과격한 이론(異論)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교적 오류의 근원과 철학적 분파에서 생기는 각각의
오류들을 지적해내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성 디오니시우스가 평화롭게 선종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위해 많은 싸움을 했기에
순교자로 섬기고 있다. 라틴 교회는 그를 증거자로서 공경한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는 그의 유해를 파리 근처에
있는 생드니(Saint-Denis) 대수도원으로 옮겼고, 그곳의 수도자들은 그를 아레오파고(Areopagos)의 성 디오니시우스(10월 9일)로
믿었었다.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1월 20일이나 29일에 지낸다.
▶레뎀토(4.8)◀
신분 : 주교
연대 : 586년
지역 : 페렌티노
이탈리아 로마 남쪽 도시인 페렌티노의 주교인 성 레뎀투스(또는 레뎀토)는 자신의 고결함을 증언해준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Gregorius, 9월 3일)의 친구였다.
▶마카리아(4.8)◀
▶막시마(4.8)◀
▶야누아리오(4.8)◀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성녀 막시마(Maxima)와 성녀 마카리아는 아프리카 순교자들로 그 이상 알려진 내용은 없다.
▶발테르(4.8)◀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095녀
지역 : 퐁투아즈
성 발테르는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y) 출신으로 학문의 여러 전당에서 공부하여 철학과 수사학의 저명한 교수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러베앙브리(Rebais-en-Brie)의 베니딕토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국왕 필립 1세로부터 천거되어 퐁투아즈 새 수도원의 원장으로
뽑혔다. 그 당시의 관습에 따라 그가 통치자로부터 주교직을 받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지 폐하의 사람이 아니며,
교회로부터 직책을 수여받습니다.” 용기 있는 그의 이 말로 인하여 국왕 필립은 그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퐁투아즈를 몰래 떠나 클뤼니(Cluny) 수도원으로 가서 숨은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에게 발견됨으로써 다시 원래 원장으로
되돌아왔으나 재차 도망하여 로와르 섬의 어느 은둔소로 피신했다가 또 다시 돌아와야 했다. 이윽고 그는 교황에게 이 짐을 풀어달라고 요청하자
교황은 그의 탁월한 능력을 다른 곳에 바치도록 허락했다.
그가 은둔소에서 철저한 고행을 하면서 당한 고통은 성직 매매자들의
반대에서 오는 고통에 비기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떤 때에 그는 같은 성직자들로부터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은 경우도 있었다.만일 어떤
수도자가그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맞아 죽을 수도있었다. 그는 이 숨은 생활에서 1095년 성 금요일에 성무일도를 바치던 중에 탈혼에 빠졌고,
그길로 하느님 품에 안겼다. 월터로도 불린다.
▶아만시오(4.8)◀
신분 : 주교
연대 : 440년
지역 : 코모
성 아만티우스(또는 아만시오)는 성 프로비누스(Provinus, 3월 8일)를 계승해서 이탈리아 코모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코모에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아신크리토(4.8)◀
신분 : 사도들의 제자, 주교, 순교자
연대 : 1세기
지역 : 마라톤
사도 바오로(Paulus)의 친척으로 파트라스(Patras)의 주교였던 성 헤로디온(Herodion, 로마 16,11)은 마라톤의 주교인 성 아신크리투스(또는 아신크리토, 로마 16,14)와 히르카니아(Hyrcania)의 주교인 플레곤(Phlegon, 로마 16,14)과 함께 순교하였다. 사도들은 그들이 유대인들의 선동에 의해 순교했다고 언급했다.
▶에데시오(4.8)◀
신분 : 순교자
연대 : 306년
지역 : 알렉산드리아
성 에데시우스(또는 에데시오)는 소아시아 남서쪽 끝에 위치한 리키아(Lycia)에서 태어났다. 로마 순교록은 그의 행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순교자 성 아피아누스(Apphianus, 4월 2일)의 형제인 성 에디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막시미아누스 갈레리우스 황제
치하에서 하느님께 성별된 처녀들을 포주에게 넘긴 사악한 판단에 공개적으로 저항했다.” 교회 역사가인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에디시우스의
칼데아 행전은 더 상세한 증언을 남기고 있다. 이 증언들에 의하면 그는 철학자였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후에도 망토를 입곤 했다. 이것은 아마도
교육받은 이들 사이에서의 그의 지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관리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주저도 없었다. 결국 그는
수차례 투옥당했고 팔레스티나의 광산에서 복역하게 되었다.
석방된 후 그는 이집트로 피난했으나 지방장관 히에로클레스의 통치하에서
박해는 더욱 심해졌다. 성별된 처녀들을 노예로 삼고 매춘을 시킨 정부에 무척 불쾌했던 에데시우스는 장관 앞에 자진 출두했고,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가장 잔인한 형벌을 당하고 알렉산드리아에서 바다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다.
▶율리아노(성 아우구스티노의)(4.8)◀
신분 : 수사
연대 : 1606년
프랑스 기사의 후예인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 마르티넷은 메디나첼리의 카스틸리안 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그는 고향의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출입을 하다가 성소를 확인하고 수도자가 되었으나 지나친 엄격성과 특이한 신심으로 인하여 장상들로부터 정신
이상이거나 적당치 못한 지원자로 낙인 찍혔다. 그래서 그는 양복공이 되었는데 수도자들이 이 젊은 양복공의 재능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프란치스코 회원들이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길거리를 다니면서 종을 치고 소리도 질러 사람들을 모았다. 이리하여 그는
또다시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는데 그의 행동은 전과 같았다. 그는 자신의 은둔소를 짓고 고독한 가운데서 엄격한 생활을 하며 문전걸식하였다. 이
은수자의 성덕이 프란치스코회 장상들에게 알려지면서부터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율리아누스라는 이름으로 서약할 수 있었다. 그의 덕이 너무나
출중하여 필립 4세의 모친인 마가렛 황후조차 그를 만나기를 소망해서 장상의 명으로 왕궁으로 갔으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콘체사(4.8)◀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카르타고
성녀 콘체사는 카르타고에서 고대부터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클레멘스(4.8)◀ (복자)
신분 : 은수자
연대 : 1291년
지역 : 오시모
클레멘스(Clemens)는 산 엘피디오(Saint Elpidio)에서 출생하였고, 그의 이름으로 보아서 그가 머문 적이 있는 오시모와
관계가 있는 듯하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1270년과 1284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었고, 따라서 그는
이 수도회의 제2의 설립자로 높은 공경을 받아왔다.
또한 그의 덕행이 출중하였으므로 후일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가 된 베네딕투스 가예타니(Benedictus Caetani) 추기경의 고해신부로 활약했고 후일의 교황은 이미
그를 성인으로 간주하였다고 한다. 성인은 수를 다하고 운명하였다. 그의 사후 70년 후에 교황 니콜라우스 4세(Nicolaus IV)가 경당을
짓도록 명하였는데, 이곳에서는 연일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은수자 중의 은수자였다고 흔히들 말한다.
▶페르페투오(4.8)◀
신분 : 주교
연대 : 494년경
지역 : 투르
성 페르페투우스(또는 페르페투오)는 성 에우스타키우스(Eustachius)를 계승하여 투르의 주교가 된 이래 30여 년 동안 교구를 지도하여 가톨릭 신앙을 널리 전하고 규율을 강화시켰으며, 단식 규범과 축일들을 제정하여 엄격하게 지키도록 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기할 만한 것은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축일부터 성탄절까지 매주 월요일마다 단식한 것이다. 투르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는 120년 후인 자기 시대에도 그의 이 규정이 지켜지고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플레곤(4.8)◀
신분 : 사도들의 제자, 주교, 순교자
연대 : 1세기
지역 : 히르카니아
사도 바오로(Paulus)의 친척으로 파트라스(Patras)의 주교였던 성 헤로디온(Herodion, 로마 16,11)은 마라톤(Marathon)의 주교인 성 아신크리투스(Asyncritus,로마 16,14)와 히르카니아의 주교인 플레곤(로마 16,14)과 함께 순교하였다.사도들은 그들이 유대인들의 선동에 의해 순교했다고 언급했다.
▶헤로디온(4.8)◀
신분 : 사도들의 제자, 주교, 순교자
연대 : 1세기
지역 : 파트라스
사도 바오로(Paulus)의 친척으로 파트라스의 주교였던 성 헤로디온(로마 16,11)은 마라톤(Marathon)의 주교인 성 아신크리투스(Asyncritus, 로마 16,14)와 히르카니아(Hyrcania)의 주교인 플레곤(Phlegon, 로마 16,14)과 함께 순교하였다. 사도들은 그들이 유대인들의 선동에 의해 순교했다고 언급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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