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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스크랩] 4월 27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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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랄리스(4.27)

신분 : 신부, 증거자

연대 : 400년

지역 : 안코나

 

성 리베랄리스 신부는 이탈리아 안코나 인근 지역에서 아리우스파의 개종을 위해 열성적으로 사목하면서 아리우스파에 의해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그의 유해는 트레비소(Treviso)에 안장되었다.

 

모그홀드(4.27)

신분 : 주교

연대 : 498년경

지역 : 만

 

그는 아일랜드의 사도이던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에 의해 개종했는데, 성인은 그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살게 하였다. 그는 이슬레 맨 연안으로 갔는데, 이곳에서 이미 다른 두 선교사가 그를 영접하므로 이때부터 철저한 회개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만의 주민들의 요청으로 주교가 되어 설교했는데, 설교 자체보다 그의 표양이 더 많은 개종자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축일은 주로 리버풀 대교구에서 성대하게 지낸다. 마쿨(Maccul)로도 불린다.

 

베드로 아르멘가우디오(4.27)

 

신분 : 수사

연대 : 1304년

 

성 베드로 아르멘가우디우스(Petrus Armengaudius)는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Cataluna)의 과르디아에서 우르겔 백작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10대의 나이에 산적의 무리들 틈에 끼어들었다. 1258년 아라곤(Aragun)의 국왕 제임스는 이 지역의 산적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베드로의 아버지를 대장으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였다. 전투가 임박하여 아들이 적장을 살펴보니 그의 부친임을 발견하고는 큰 충격을 받고 용서를 청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보속을 하였으며, 메르체다리오 회원이 되어 포로들의 석방을 위해 맹활약하게 된 것이다. 그는 두 번이나 아프리카로 가서 무어인들에게 잡힌 포로들을 석방시켰는데, 두 번째의 여행에서 그는 돈이 부족하여 18세 된 소년을 석방시킬 수 없게 되자 자원하여 포로가 되었다. 이때 베드로는 교수형을 받았으나, 목을 묶은 끈을 풀었을 때 그가 되살아났기 때문에 무어인들은 그를 석방시켰다고 한다. 그 후 과르디아로 돌아온 그는 10여년을 더 살면서 덕을 닦다가 선종하였다. 그러나 로마 순교록에는 그가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스테파노(4.27)

카스토르(4.27)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카스토르(Castor)와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실리시아(Cilicia, 소아시아 남동부 지중해 연안)의 타르수스(Tarsus)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순교하였다. 그들은 3월 28일에 기념하는 성 카스토르와 성 도로테우스(Dorotheus)와 동일인일 수 있다.

 

안토니오(4.27) (복자)

신분 : 은수자

연대 : 1311년

지역 : 시에나

 

안토니우스 데 파트리치(Antonius de Patrizi, 또는 안토니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에 입회하여 몬테치아노의 원장이 되었다. 귀족 출신인 그는 또 다른 거룩한 은수자인 카메라타의 베드로(Petrus)와 서로 격려하며 높은 성덕을 쌓을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마치 은수자 성 바오로(Paulus)와 안토니우스의 만남에 견줄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04년에 승인되었다.

 

안티모(4.27)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03년

지역 : 니코메디아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의 니코메디아에는 특히 박해가 심하였는데, 그 이유는 황제의 칙서를 벽에 붙이면 신자들이 즉시 찢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경비가 삼엄하여 신자들은 이방신에게 희생물을 바치지 않고는 곡식과 식량조차 구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때 니코메디아의 주교인 성 안티무스(또는 안티모)는 용감하게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이 당시의 신자들에게는 왕궁 화재의 범인이라는 죄목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야고보(4.27)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485년

지역 : 달마티아

 

달마티아 출신인 야고보(Jacobus)는 프란치스코회의 평수사가 되었다. 그는 겸손과 자기 극기 그리고 관상을 통하여 높은 성덕을 쌓았다. 또한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의 은혜를 받았으며, 기도 중에는 공중으로 떠오르는 현상도 여러 번 체험하였다. 콘베르사노 수도원에 있을 때 그는 부엌일을 하였는데,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통하여 지옥의 불꽃을 수차례나 목격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이따금씩 탈혼에 빠졌다.

 

요한(4.27)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813년

지역 : 콘스탄티노풀

 

성 요한(Joannes)은 콘스탄티노플의 수도원 원장이었다. 그는 성상 공경에 대한 확고한 옹호로 인해 성상파괴주의자인 레오 황제에 의해 투옥되고 추방되었다.

 

테르툴리아노(4.27)

신분 : 주교

연대 : 490년

지역 : 볼로냐

 

  성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또는 테르툴리아노)는 이탈리아 볼로냐 교구의 제8대 주교였다.

 

테오도로(4.27)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368년

지역 : 타벤니시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는 성 파코미우스(Pachomius)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은수자였다. 그는 이집트 테베(Thebes, 오늘날의 룩소르 Luxor 근방)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21세와 22세 사이의 주님 공현 축일에 성 파코미우스의 명성에 끌려 타벤니시로 갔다. 스승은 그에게 사제품을 주고 파보의 작은 수도원에 살게 하면서 타벤니시 수도원의 운영을 맡겼다. 위대한 스승 파코미우스가 서거한 뒤 베드로니우스(Petronius), 오르시에시우스(Orsiesius)가 원장으로 계승하였으며 테오도루스는 제4대 원장이 되었다. 그는 사막의 은수자들을 모으고 일치와 애덕을 강조하였다.그는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도 가까운 사이였다.

 

테오필로(4.27)

신분 : 주교

연대 : 427년경

지역 : 브레시아

 

 성 테오필루스(또는 테오필로)는 성 가우덴티우스(Gaudentius, 10월 25일) 주교를 계승하여 브레시아의 주교가 되었다.

 

플로리베르토(4.27)

신분 : 주교

연대 : 746년

지역 : 리에주

 

성 플로리베르투스(Floribertus, 또는 플로리베르토)는 아버지 성 후베르투스(Hubertus)와 어머니 플로리반(Floribane)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의 이야기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18년 동안이나 벨기에 리에주 교구를 관장했던 그의 부친 성 후베르투스를 계승하여 주교가 되었다. 그는 가장 겸손한 사람, 가난한 자의 진정한 이웃 등의 별명으로 불릴 만큼 높은 성덕과 애정을 지닌 성인이었다.

 

호산나(4.27) (복녀)

신분 : 동정녀

연대 : 1493-1565년

지역 : 카타로

 

카타리나 코지에(Catharina Cosie)는 몬테네그로(Montenegro)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양치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장성한 그녀는 부모의 허락을 받고서 카타로에 있던 어느 가톨릭 부인 단체에 가입하여 봉사하기 시작하였다. 7년 뒤에 그녀는 은둔생활을 시작하면서 성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성당과 인접한 곳에 움막을 지었다. 이때 그녀는 도미니코회 3회원이 되면서 이름도 만투아(Mantua)의 복녀 호산나를 따라 호산나 안드레아시(Hosanna Andreassi)로 개명하였다. 

그녀 주위에는 처녀와 과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호산나가 지도자로 등장하였다. 주민들은 터키인과 다른 침략자들이 호산나의 기도의 힘으로 물러갔다고 믿고 있다. 그녀가 받은 무수한 초자연적 은혜 중에서 예언의 은혜가 가장 빛난다. 그녀는 약 2개월에 걸친 중병 끝에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그녀는 1934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다. 오산나(Osanna)로도 불린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출처 : 별을 헤는사람들
글쓴이 : 바오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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