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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스크랩] 4월 30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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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파르도(4.30)

신분 : 은수자

연대 : 1127년

 

1096년경에 일단의 독일계 마구 상인들이 베로나(Verona)에 들어왔는데, 이때 성 괄파르두스(또는 괄파르도)는 아예 베로나에 눌러 살기로 작정하였다. 장사를 잘한 탓인지 상당한 재산을 모은 그는 갑자기 자기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 뒤에, 자신이 늘 그리워하던 성스런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성인으로 존경받기 시작한 것을 눈치 챈 그는 남몰래 베로나를 떠나 아디게 강가의 숲 속으로 들어가서 은수자로 살았다. 그는 어느 뱃사람에게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베로나 주민들이 달려와서 그를 모셔갔다. 할 수 없이 그는 그 도시의 카말돌리 수도원의 은수자가 되어 일생을 살았다. 볼프하르도(Wolfhard)로도 불린다.

 

도나토(4.30)

신분 : 주교

연대 : 4세기말

지역 : 에우레아

 

그리스북서부 에피루스(Epirus) 지방 에우레아의 주교인 성도나투스(또는 도나토)의 고결함에 대해서는 역사가인 소조멘(Sozomen)과 그리스의 작가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라우렌시오(4.30)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397년

지역 : 노바라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 신부는 서부 에스파냐나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왔다. 그는 피에몬테(Piemonte) 지방 노바라의 주교인 성 가우덴티우스(Gaudentius, 1월 22일)의 협력자였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던 예비신자 교리반 어린이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루도비코(4.30)

베드로(4.30) (수도승)

아마토르(4.30) (신부)

신분 : 순교자

연대 : 855년

 

 성 아마토르(Amator)는 에스파냐 남부 코르도바(Curdoba) 부근 마르토스(Martos)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수학하고 사제로 수품되었다. 그는 수도승인 성 베드로(Petrus)와 평신도 친구인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와 함께 설교자로 활동하다가, 코르도바에서 복음선포자들을 깨끗이 쓸어버리려는 사라센제국에 의해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마리아(강생의)(4.30) (복녀)

 

신분 : 과부

연대 : 1618년

 

 바르바라 아카리는 고위 관리의 딸로서 17세 때에 베드로 아카리와 결혼하였는데, 남편은 신심이 깊고 또 애덕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마리아는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들 중 딸 셋은 카르멜 수녀가 되었고, 아들 셋은 사제가 되었다. 그러던 집안에 큰 재앙이 생겼다. 그녀의 남편은 가톨릭 단체의 뛰어난 후원자였는데, 불행하게도 막대한 재정을 책임져야 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앙리 4세가 즉위하자마자 그는 파리(Paris)에서 추방되고 재산은 몰수당하였다. 일종의 모반 혐의였다. 

1613년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카르멜회 입회를 청하여 허락을 받았으나, 만 4년밖에 살지 못하였는데 그녀는 기혼자로서 뛰어난 성덕의 소유자로 인정받았다. 이때 그녀는 ‘강생의 마리아’란 수도명을 받았고, 앙미앙 수녀원에서 지냈는데 이곳에는 그녀의 장녀가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임종 때에 “주님, 제가 저지른 온갖 나쁜 표양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마리아노(4.30) (독서자)

야고보(4.30) (부제)

신분 : 순교자

연대 : 259년

 

성 마리아누스(Marianus, 또는 마리아노)와 야고보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누미디아(Numidia)의 람베사에서 순교하였다. 마리아누스는 독서자였고, 야고보는 부제였는데 치르타에서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자신들의 박해 내용을 글로 남겼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구비오(Gubbio) 대성당은 이 두 성인에게 봉헌되었다.

 

마일스 제라르드(4.30)

신분 : 순교자

연대 : 1590년

 

 영국 잉글랜드(England) 북동부 요크셔(Yorkshire)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집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디켄슨(Franciscus Dickenson)은 프랑스 랭스(Reims)로 가서 사제 수업을 받고 1589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잉글랜드 북서부 그레이터맨체스터(Greater Manchester)의 위건(Wigan) 근방에서 태어난 마일스 제라르드는 프랑스 랭스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학업을 마치고 1583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들은 1589년 제라르드 신부가 서품 6년째 되던 해에 영국 선교 길에 올랐으나, 그들이 탄 배가 좌초되어 승객들이 켄티쉬 해안에 상륙하게 되었다. 이 때 그들은 가톨릭 사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체포되어 1590년 4월 30일 로체스터(Rochester)에서 함께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이들은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막시모(4.30)

신분 : 순교자

연대 : 251년

지역 : 에페수스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당시 소아시아의 에페수스에는 작은 사업을 하지만 하느님께 충실한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집정관 옵티무스 앞에 가서 심문을 받았다. “무슨 일을 하느냐?” “장사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냐?” “예, 하지만 변변치 못한 신자입니다.” 이런 식으로 심문하다가 옵티무스는 “신들에게 희생을 바쳐라.” 하고 다그쳤다. 이때 그는 “저는 하느님께만 희생을 바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네가 희생을 바치면 풀어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으리라.” “저는 그것이 소원입니다. 이 비천한 삶을 영원한 삶과 바꾸고 싶습니다.” 무식해 보이는 이 사람을 쉽게 배교시키리라 자신하던 옵티무스는 진노하여 그를 즉각 처단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는 그 도시 밖으로 끌려가서 살해당하였다.

 

베네딕토(4.30)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625년

지역 : 우르비노

 

 파시오니가의 후손인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의 원래 이름은 마르티누스(Martinus)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탈리아의 페루자(Perugia)와 파도바(Padova)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젊은 법률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에 로마(Rome)로 갔으나 법조계에서 만족할 수 없음을 알고 포솜브론의 카푸친회에 입회하였으나, 집안의 반대가 극심하여 1584년에야 파노 수도원에서 서약할 수 있었는데, 이때 베네딕투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 후 그는 당시의 총장이던 브린디시(Brindisi)의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를 수행하여 오스트리아와 보헤미아(Bohemia) 등지를 3년간 순방하면서 이단자와 타락한 가톨릭을 상대한 설교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여 높은 명성을 얻었다. 특히 그는 하느님의 집을 보살피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고 주로 주님의 수난을 설파하였다. 그는 하루 한 시간씩 땅에 엎드려 묵상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밟으신 이 땅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1625년 그는 매우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소코르바로에서 사순절 설교를 하여 건강이 악화되더니,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베네딕투스가 즐겨 한 말은 “하느님께 희망과 신뢰를 두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다.

 

소피아(4.30)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250년

지역 : 페르모

 

 성녀 소피아는 이탈리아 중부 페르모의 처녀로 데키우스 황제 때 순교하였다. 그녀는 머리 유해는 화려한 성해함에 담겨져 페르모의 주교좌성당에 모셔져 있고, 그곳에서 오늘날까지도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아주토르(4.30)

신분 : 수도승

연대 : 1131년

 

노르만(Norman) 기사이자 베르농쉬르센느(Vernon-sur-Seine)의 영주인 성 아주토르는 1095년의 첫 번째 십자군에 가담하였다가 모슬렘에 의해 체포되었다. 감옥생활 중에 그는 신앙을 버리라는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극심한 고초와 고문을 받았다. 마침내 그는 감옥을 탈출하여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는 하느님의 도움이라 믿고 자신을 성화하기 위해 티론(Tiron)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여기서 만년을 은수자로서 살다가 사망하였다.

 

아프로디시오(4.30)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아프로디시우스(또는 아프로디시오)는 이집트의 사제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신자 30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에르콘발도(4.30)

신분 : 주교

연대 : 639년

지역 :  런던

 

 675년 캔터베리(Canterbury)의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9월 19일)는 성 에르콘발두스(또는 에르콘발도)를 에식스(Essex)의 주교로 임명하였다. 성 바오로(Paulus) 대성당에 있는 그의 경당은 중세 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전기는 체트시(Chertsey)에 수도원을 세웠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인 성녀 에텔부르가(Ethelburga, 10월 11일)를 나중에 그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였고, 성 테오도루스(Theodorus)와 요크(York)의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10월 12일)와의 화해를 중재한 인물로 유명하다.

 

에우트로피오(4.30)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세기경

지역 : 생트

 

 프랑스의 생트 지방은 성 에우트로피우스(또는 에우트로피오)를 그곳의 초대주교로 공경하고 있다. 그는 원래 교황 성 클레멘스 1세(Clemens I)에 의해 로마(Rome)에서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이 지방 사람들이 그를 추방하였는데, 이때 그는 멀리 가지 않고 인근 산의 동굴에 기거하면서 기도와 설교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이 지역의 선교에 성공을 거두게 된 계기는 이 지방을 다스리던 로마 관리의 딸인 에우스텔라를 개종시키고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 소녀의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는 에우트로피우스를 살해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는 도끼에 맞아 죽었는데, 그가 살던 방에서 에우스텔라가 기도에 전념하면서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포란난(4.30)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932년

 

 성 포란난은 한 천사가 꿈에 나타나 아름다운 계곡을 가리키면서 이곳이 곧 너의 집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고향을 떠났다. 그는 12명의 일행과 더불어 아일랜드를 떠나 벨기에 뫼즈(Meuse) 강 입구까지 와서 다시 월소트(Waulsort)로 올라갔다. 나무르(Namur)와 기벳 사이의 강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들은 이곳의 절경에 감탄하는데, 포란난 성인은 이곳을 발리스 데코라로 생각하였다. 그는 그곳에 있던 은수자들의 환영을 받았고 962년에 월소트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회칙에 따라 수도자들을 교육시켜 성공을 거두었고, 그의 성덕은 많은 이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폼포니오(4.30)

신분 : 주교

연대 : 536년

지역 : 나폴리

 

성폼포니우스(또는 폼포니오)는 508년부터 536년까지 이탈리아 나폴리의 주교였다.그는 이탈리아를 점령했던 동고트족(Ostrogoths)의 왕 테오도리쿠스(Theodoricus)의 후원을 받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 대한 강력한 반대자였다.

 

프란치스코 티켄슨(4.30)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590년

 

 영국 잉글랜드(England) 북동부 요크셔(Yorkshire)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집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디켄슨(Franciscus Dickenson, 또는 프란체스코)은 프랑스 랭스(Reims)로 가서 사제 수업을 받고 1589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잉글랜드 북서부 그레이터맨체스터(Greater Manchester)의 위건(Wigan) 근방에서 태어난 마일스 제라르드(Miles Gerard)는 프랑스 랭스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학업을 마치고 1583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들은 1589년 제라르드 신부가 서품 6년째 되던 해에 영국 선교 길에 올랐으나, 그들이 탄 배가 좌초되어 승객들이 켄티쉬 해안에 상륙하게 되었다. 이 때 그들은 가톨릭 사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체포되어 1590년 4월 30일 로체스터(Rochester)에서 함께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이들은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힐데가르데(4.30) (복녀)

신분 : 왕비

연대 : 754-783년

 

 아마도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듯한 힐데가르데(Hildegardis)는 샤를마뉴(Charlemagne)가 헤르멘가르데(Hermengardis)를 배격하고 결혼한 인물이다. 그녀는 12년의 결혼생활 중에 일곱 자녀를 낳고, 프랑스 티옹빌(Thionville)에서 운명하였다. 그녀는 수녀와 수도자들의 은인으로 공경을 받을 만큼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덕이 뛰어나 위대한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녀의 무덤은 켄프텐(Kempten) 수녀원에 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출처 : 별을 헤는사람들
글쓴이 : 바오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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