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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스크랩] 5월 1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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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타(5.1)

신분 : 과부

연대 : 4/8세기

지역 : 베르가모

 

성녀 그라타는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성 루포(Lupo) 공(公)과 그의 아내 성녀 아델라이드(Adelaide)의 딸로, 그녀의 남편과 사별할 때까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성녀 그라타는 그리스도인이 된 후 그녀의 부모를 개종시켰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에서 거룩한 부인으로 신망을 얻었고, 특별히 순교자들의 시신을 안전하게 그리스도교 전례에 따라 매장하는데 큰 열성을 지니고 있었다. 성녀 그라타는 테반 군단의 군인 순교자인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8월 26일)의 유해를 천으로 정성껏 감싸 영예롭게 매장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성녀 그라타는 지혜와 자비심으로 베르가모를 다스렸다. 그녀의 생애에 관한 증거는 분명하나 활동 연대에 대해서는 일치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베르가모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리카르도(5.1)

신분 : 수사

연대 : 1897-1930년

 

성 리카르두스 팜푸리(Richardus Pampuri, 또는 리카르도)는 1897년 8월 2일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 근처 트리볼지오(Trivolzio)에서 태어났다. 안젤라(Angela)와 인노첸테 필리포(Innocente Filippo)의 아들인 에르미니오(Erminio)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어머니는 세 살 때 돌아가셨고 7년 후 아버지 또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1915년 에르미니오는 파비아 대학의 의대에 들어갔고, 1921년 졸업과 함께 밀라노(Milano)에서 일을 시작하였는데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의 신앙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의 후원아래 가톨릭 액션(Catholic Action)의 본당 젊은이들의 성장을 도왔다.

1927년에 브레시아(Brescia)에 있는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에 입회하여 자신의 의학 기술과 신앙을 조화시켰으며 리카드두스를 수도명으로 받았다. 그리고 다음해에 첫 서원을 했다. 그의 성덕에 대한 명성은 브레시아에 있는 수도회의 병원에서 일하면서 날로 늘어갔다. 많은 어머니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데려와 만져주고 축복해주기를 바랬다.

성 리카르두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했을 때 얻은 병으로 인해 일종의 폐병을 앓고 급속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밀라노로 치료를 받으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030년 5월 1일 32살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고향에 돌아와 묻혔으며 그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졌다. 그는 1981년 10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9년 11월 1일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마르쿨프(5.1)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558년

 

마르쿨(Marcoul)이라고도 불리는 성 마르쿨프는 프랑스 바이외(Bayeux)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고, 30세 때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처음에 그는 교구 내의 선교사로 일했지만, 항상 고독한 생활과 하느님과의 보다 친밀한 일치생활을 동경한 나머지 어떤 외딴 섬으로 은거하여 은수자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그 얼마 후 그는 국왕 킬드버트로부터 낭테이유의 거대한 토지를 하사받아 큰 공동체로 발전시켰다. 어떤 이들은 은수자로 또 어떤 이들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도록 안배했던 것이다. 그의 제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분들은 성 도마르두스와 성 카리울푸스이다. 성 마르쿨프는 피부병을 앓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브리옥(5.1)

신분 : 주교, 수도원장

연대 : 6세기

 

성 브리옥은 웨일즈(Wales)의 카디건셔(Cardiganshire)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의 트레귀엘(Treguier) 수도원의 설립자로, 그 도시는 오늘날 생 브리외(Saint-Brieuc)가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세르푸스(Cerpus)와 어머니 엘드루드(Eldrude)는 아들의 사제 수품 뒤에 개종했다고 한다.

 그는 브르타뉴로 이주하기 전에 영국의 남서 지방에서 활동하였으며, 콘월(Cornwall) 지방에 세인트 브리옥(Saint Breock)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중세의 성 브리옥의 전기에는 다수의 특별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전해지지만 역사적으로 그 근거는 희박하다. 예를 들어 브리옥이 프랑스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 주교에 의해 훈련받았다고 전해지는데 성 게르마누스 주교는 448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야기이다.
성 브리옥은 유명한 그랑드 란(Grande-Lann) 성당을 지어 좋은 평판을 얻었으며 다수의 제자들을 모았다. 트레귀엘(Treguier)에서 부유한 귀족 코난(Conan)을 개종시켰으며, 그 귀족은 아르모리카(Armorica) 북부의 수도원의 건설을 후원하였다. 그런 후 성 브리옥은 영국 땅으로 되돌아와서 그의 친척인 돔노니아(Domnonia)의 리갈드(Rigald) 왕자의 후원을 받아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성당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1210년에 지어진 성 브리옥 성당의 대리석판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그는 주교로 호칭되었는데 그가 주교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다. 아마도 그는 켈틱 전례의 대수도원장이었으며 수하에 주교를 두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844년까지 기록된 어떠한 전설도 그의 후계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 브리옥의 유해는 9세기 중엽 북방 민족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프랑스 앙제(Angers)에 있는 성 세르기우스(Sergius) 대수도원으로 옮겨졌다.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 7월 13일)가 1166년에 유해의 이동을 증명했다. 1210년에 팔과 갈비뼈 2개와 경부의 뼈는 성 브리옥 성당으로 되돌아갔다.

교회 미술에서 성 브리옥은 불타는 기둥 밑에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트레귀엘과 브르타뉴 그리고 콘월 지방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또 그의 엄청난 자선 활동에 대한 전설 때문에 기부금을 조성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불려진다.

 

시지스문도(5.1)

 

신분 : 왕, 순교자

연대 : 523년

지역 : 부르고뉴

 

프랑스 남동부와 스위스의 남서부는 부르고뉴 왕의 휘하에 있었고, 그 당시의 통치자는 아리우스파(Arianism)에 속한 군네발드(Gunebald)였다. 그가 죽기 전 왕위를 계승한 아들 성 시지스문두스(Sigismundus, 또는 시지스문도)는 그 후 정통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것은 비엔(Vienne)의 주교 성 아비투스(Avitus, 2월 5일)의 노력 때문이었다. 한때 그는 전쟁에서 패한 뒤에 은수자 생활을 하며 생모리스(Saint-Maurice) 수도원을 세웠으나 결국은 체포되어 오를레앙(Orleans)으로 끌려갔다. 성 아비투스가 중재하였으나 프랑스 국왕은 그를 처형하고 우물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의 유해는 나중에 발굴되어 보헤미아(Bohemia)의 프라하(Praha) 주교좌 성당에 안장되었고,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게 되었다.

 

아마토르(5.1)

신분 : 주교

연대 : 418년

지역 : 오세르

 

 오세르의 최고 명문가의 외동아들인 성 아마토르는 마르타(Martha)라는 처녀와의 결혼식에서 그의 장래를 예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즉 그 결혼식을 주례한 발레리아누스 주교는 모든 예식을 마치고 혼인 축복 기도문을 외우는 대신에 부제 서품식 때의 기도문을 바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부는 결혼식을 하자마자 서로 동정을 지키자고 약속한 뒤 마르타는 수녀원으로 들어갔고, 아마토르는 얼마 뒤에 사제가 된 후 오세르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믿을만한 근거에 의하면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를 사제직에 올린 사람이 곧 아마토르라 한다.

 

아사포(5.1)

신분 : 주교

연대 : 600년경

지역 : 웨일즈

 

성 아사푸스(Asaphus, 또는 아사포)는 영국 웨일즈 지방의 첫 번째 주교였다. 그는 홀리웰(Holywell) 부근에서 은수자로 살았다고 믿어진다. 그는 또한 성 켄티게른(Kentigern, 1월 13일)의 생애에서 등장한다. 그는 젊었을 때 성 켄티게른을 모셨다. 어느 날 성 켄티게른이 불을 붙이기 위해 나무를 좀 가져오라고 하자, 성 아사푸스는 자신의 앞치마에 불타고 있는 석탄을 담아왔다. 이 일로 성 켄티게른은 그의 거룩함을 깨닫게 되었다. 573년 성 켄티게른이 그 지역을 떠날 때 성 아사푸스는 주교로 축성되었다. 성 아사푸스는 성 다니엘(Daniel, 9월 11일)과 성 티실리오(Tysilio, 11월 8일) 그리고 성인으로 존경받는 다른 여러 사람들과 관계가 있었다. 그에 대한 여러 전설에 따라 중세의 저술가들이 성 아사푸스의 덕을 찬양하며, 놀라운 기적으로 많은 이들을 개종시켰다고 전한다.

 

안데올로(5.1)

신분 : 차부제, 순교자

연대 : 208년

지역 : 스미르나

 

스미르나(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의 차부제인 성 안데올루스(또는 안데올로)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 주교에 의해 프랑스로 파견되었다.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그의 행전에 의하면 그는 세베루스의 명에 의해 프랑스 론(Rhone) 강 유역 비비에르(Viviers)에서 참수를 당해 순교하였고, 그곳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오렌시오(5.1)

파시엔시아(5.1)

신분 : 순교자

연대 : 240년

 

 성 오렌티우스(또는 오렌시오)와 성녀 파티엔티아(Patientia)는 에스파냐 아라곤(Aragun) 북부 지방 우에스카(Huesca) 근교에서 살던 부부로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다. 고대 에스파냐의 전승은 그들을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8월 10일)의 부모로 생각하고 있다.

 

오리엔시오(5.1)

신분 : 주교

연대 : 439년

지역 : 오슈

 

 성 오리엔티우스(또는 오리엔시오)는 프랑스 남서부 타르브(Tarbes) 인근 라벤단 계곡에서 은수자로 남고자 했으나 오슈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목자가 되어야 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마지못해 주교가 되었다. 그는 40년 이상 오슈 교구를 다스렸다. 그는 오렌티우스(Orentius)로도 불린다.

 

테오다르도(5.1)

신분 : 주교

연대 : 893년

지역 : 나르본

 

프랑스 몽토방(Montauban) 태생인 성 테오다르두스(Theodardus, 또는 테오다르도)는 툴루즈(Toulouse)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변호사 생활을 하던 중 툴루즈 대주교의 명에 따라 시제볼드(Sigebold) 대주교의 부제가 되었다. 그리고 스승의 서거 후에 그 자신이 나르본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주교좌를 복구하고 오소나 교구를 부활시켰으며 사라센인들에게 잡혀 있던 그리스도인 포로들을 많이 석방시켰다.

 

페레그리노 라치오시(5.1)

 

신분 : 신부

연대 : 1260-1345년

 

이탈리아 포를리(Forli)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성 페레그리누스 라치오시(Peregrinus Laziosi, 또는 페레그리노)는 젊어서 한때는 로마냐의 반 교황당에서 적극 활동하다가 성 필리푸스 베니치(Philippus Benizi)를 만나면서부터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는 시에나(Siena)의 ‘마리아의 종 수도회’에 입회하여 고향으로 갔으며 그곳에다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설교, 고행, 성덕 그리고 고해신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의 발에 있던 암이 기적적으로 치유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1726년에 시성되었고 암환자의 수호성인이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출처 : 별을 헤는사람들
글쓴이 : 바오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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