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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스크랩] 5월 3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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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도로(5.3)

로도피아노(5.3)

신분 : 부제, 순교자

연대 : 4세기초?

 

성 디오도루스(또는 디오도로)와 성 로도피아누스(Rhodopianus) 부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소아시아의 카리아(Caria)에서 순교하였다

 

마우라(5.3)

티모테오(5.3)

신분 : 순교자

연대 : 286년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이집트 북부에서는 아리우스파(Arianism)에 의한 혼란이 더욱 극심하였다. 이 혼란 중의 희생자들 가운데 성 티모테우스(Timotheus)와 성녀 마우라 부부가 있었다. 이 젊은 부부는 성서를 함께 공부하는 학생이었으며, 특히 티모테우스는 교회 일에도 봉사하던 중이었다. 결혼한 지 겨우 20일 되던 날 티모테우스가 먼저 체포되어 성서를 내 놓으라는 강요를 받았다. 그 다음에 아내인 마우라가 끌려갔으나 죽음으로써 교회의 거룩한 책을 보전했던 것이다. 이 부부는 벽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안토니나(5.3)

알렉산데르(5.3) (군인)

신분 : 순교자

연대 : 313년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성녀 안토니나는 지방총독 페스투스에 의해 매춘굴로 보내지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리스도 신자였던 군인 성 알렉산데르(Alexander)에 의해 비밀리에 탈출할 수 있었다. 성 알렉산데르는 성녀 안토니나에게 외투를 갈아 입혀 탈출시키고 자신은 그녀의 자리에 남아 있었다. 성녀 안토니나는 얼마 후 발견되어 성 알렉산데르와 함께 두 손이 잘리는 고문을 받고 불속에 던져졌다.

 

알렉산데르 1세(5.3)

 

신분 : 교황, 순교자

연대 : 113년경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교황 성 알렉산데르 1세와 두 명의 사제 성 에벤티우스(Eventius)와 성 테오둘루스(Theodulus)는 오랜 투옥 생활 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재판관 아우렐리아누스의 사주에 따라 불로써 온갖 고문을 받고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교황 성 알렉산데르는 감옥에 있는 동안 성 퀴리누스(Quirinus, 3월 30일)와 그의 딸 성녀 발비나(Balbina, 3월 31일)를 신앙에로 인도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유해는 로마 근교 노멘타나(Nomentana) 가도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오늘날 도미니코회에 속한 성녀 사비나(Sabina) 성당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비록 로마 순교록에는 오늘 기념하는 순교자를 교황 알렉산데르라고 되어 있으나, 이 명단은 알렉산데르라는 군인 순교자를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에벤시오(5.3)

테오둘로(5.3)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113년경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교황 성 알렉산데르 1세(Alexander I)와 두 명의 사제 성 에벤티우스(또는 에벤시오)와 성 테오둘루스(Theodulus)는 오랜 투옥 생활 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재판관 아우렐리아누스의 사주에 따라 불로써 온갖 고문을 받고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교황 성 알렉산데르는 감옥에 있는 동안 성 퀴리누스(Quirinus, 3월 30일)와 그의 딸 성녀 발비나(Balbina, 3월 31일)를 신앙에로 인도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유해는 로마 근교 노멘타나(Nomentana) 가도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오늘날 도미니코회에 속한 성녀 사비나(Sabina) 성당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비록 로마 순교록에는 오늘 기념하는 순교자를 교황 알렉산데르라고 되어 있으나, 이 명단은 알렉산데르라는 군인 순교자를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유베날리스(5.3)

신분 : 주교, 의사

연대 : 376년

지역 : 나르니

 

성 유베날리스(Juvenalis)는 동방에서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 나르니로 이주해온 사람으로 사제이며 동시에 의사였다. 교황 다마수스 1세(Damasus I)는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나르니 교구를 설정하고 그를 초대주교로 축성하였다. 어느 날 그는 바카스 신에게 봉헌된 신전 앞을 지나다가 이교 사제로부터 봉변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웅적으로 이를 극복하여 이 사건이 그 지방의 전교에 큰 전환점이 되게 하였다. 

또 그의 재임 5년째 되던 해에 리구리아인(Ligurians)과 사르마트인(Sarmatians)이 나르니를 공격했을 때,그는 성벽에 올라가서 시편 34편과 기도를 하고 주민들은 ‘아멘’으로 응답하였다.그러자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서 3,000여 명의 침략자들이 패주해버렸다 그는 그 후 7년 동안 교구장직에 있다가 376년에 선종하였다.그는 나르니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아 왔으나 그에 대한 공경은 1969년 지역 교회력에서 확정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출처 : 별을 헤는사람들
글쓴이 : 바오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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