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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스크랩] 5월 14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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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마자렐로(5.14)

신분 : 동정녀, 설립자

연대 :1837-1881년

 

성녀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Maria Dominica Mazzarello)는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매우 열심하여 가능한 한 매일 미사에 참례하였고 모든 활동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한번은 그녀의 본당사제가 ‘마리아회’를 조직했는데 이 회는 마리아니스트 수녀회의 규칙을 따르는 회였으나, 돈 페스타리오 주임신부가 토리노(Torino)에서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신부를 만나게 됨에 따라 마리아는 돈 보스코 신부를 알게 되었는데 이때 그녀는 17세였다. 그러나 이 신심회는 그 후 5년 동안 시련기를 맞이했는데, 이때 그 회원들은 전염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힘이 부족함을 느끼고 마리아는 다른 친구들과 더불어 양재를 배우며 또 가르쳤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항상 돈 보스코의 영향을 받았다. 

돈 보스코가 소년들을 위하여 살레시오회를 세웠고, 1872년 5월 29일 마리아 마자렐로는 모르네세에 공동체를 만들고 원장이 되니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 수녀회’, 곧 살레시오 수녀회의 시작이다. 1878년 6명의 수녀들이 아르헨티나의 인디언들을 교육하기 위해 떠나는 살레시오회 선교단을 수행하였고, 원장인 마리아는 니차 몬페라토에 있었다. 그녀의 생존시에 이미 이 회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지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주요 임무는 교육이었다. 그녀는 불과 44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녀는 1950년 6월 2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고, 유해는 토리노의 성 요한 보스코 무덤 곁에 안장되어 있다.

 

미카엘 가리코이트(5.14)

신분 : 증거자, 설립자

연대 : 1797-1863년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는 피레네 산중의 작은 촌락에서 가난한 어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산중생활이 대부분인 그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양을 치는 평범한 목동이었지만, 가끔씩 자기는 사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하곤 하였다. 그러나 부모들은 “돈이 없다”는 식으로만 말했지만 그의 할머니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생-팔레스 본당신부께 찾아가서 손자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그 본당신부의 주선으로 그 지방의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부모는 학비를 부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본당이나 주교관에서 일해야만 하였다.

이 학생은 시골 목동이지만 매우 현명하고 또 건강했다. 더욱이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세로 노동과 공부를 했던 결과 ‘우리의 알로이시우스 곤자가(Aloysius Gonzaga)’란 별명을 들을 정도가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1823년 12월에 사제로 서품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캄보의 보좌신부로 출발한 그의 사제생활은 처음부터 얀세니즘(Jansenism)과 싸워야 했으나, 예수 성심께 대한 지극한 사랑과 자주 성체를 모시는 관습을 보급하여 극복하려고 애썼다. 그 다음 부임지는 베타람 소신학교였다. 

여기서 경험을 얻은 가리코이트 신부는 다른 2명의 사제와 함께 독단적인 봉사를 꿈꾸게 되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제 양성 계획을 구체화시킬 심산으로 3명의 동료와 함께 공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툴루즈(Toulouse)로 가서 예수회원인 러 블랑 신부를 만났는데, 그 신부는 가리코이트 신부의 마음을 활짝 열게 했을 뿐만 아니라 격려까지 잊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는 성 이냐시오의 자녀들과 같은 규칙에 근거하는 회헌을 만들고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겼다. 이것이 소위 ‘베타람의 성심 신부회’이다. 이 회는 그가 죽은 지 14년 뒤에 성좌의 인가를 받았다. 그는 1947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베드로닐라(5.14) (복녀)

신분 : 동정녀

연대 : 1355년

지역 : 몽셀

 

 베드로닐라는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방 트루아(Troyes)의 백작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과 그녀가 오아즈의 러 몽셀 수도원의 초대 원장이란 점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프랑스 혁명 때 몽셀의 클라라 회원들은 그들의 특별한 수호성인으로 베드로닐라를 공경하였는데, 프란치스코 회원들은 지금도 그녀의 축일을 거행하고 있다.

 

보니파시오(5.14)

신분 : 순교자

연대 : 307년

지역 : 타르수스

 

 4세기 초에 로마(Rome)의 어느 부유한 젊은 부인이 살았는데 그녀의 이름은 아글라에(Aglae)다.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가문 출신으로, 3번에 걸쳐서 시민들을 아주 융숭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그녀의 집사장이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였다. 그는 다소 방종하고 무절제한 사람이었지만, 자유롭고 인정이 많았으며 또 가난한 사람들을 꾸준히 돌보는 신실한 면도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보니파티우스에게 명하여 동방으로 가서 순교자들의 유해들을 수집해 오도록 하였다. 그는 그 즉시 명을 따를 준비를 했고, 긴 여행이니만큼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또 기도와 단식으로 임무를 수행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당시 서방교회는 평화를 누렸지만, 동방교회는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와 막시미누스 다이아 황제의 치하에서 박해를 받고 있었다. 

그는 타르수스에 당도하여 총독 관저로 가보니 마침 20여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고문을 받고 있었다. 그는 총독 심플리키우스 앞으로 가서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은 위대하시다! 순교자들의 하느님은 위대하시다! 나는 사탄과 싸우기 위하여 여기 왔다” 하며 소리 질렀다. 이 소리를 들은 총독은 진노하여 그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자,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은 위대하시다!”고 소리를 지르며 큰 소요를 일으켰다. 총독은 소요를 진정시킨 뒤 그의 목을 처단하여 이탈리아로 보냈다. 한편 아글라에는 그 소식을 듣고 마중 나왔다가 라티나 가도에서 만났는데, 그 자리에 성당을 짓고 거룩한 순교자의 유해를 모셨고, 자신은 15년 동안 보속생활을 하다가 순교자 옆에 안장되었다.

 

보니파시오(5.14)

신분 : 주교

연대 : 6세기

지역: 페렌티노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유스티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 중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지방 페렌티노의 주교였다. 그는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대교황에 의해 기념하게 되었다.

 

빅토르(5.14)

코로나(5.14)

신분 : 순교자

연대 : 176년

 

 성 빅토르와 성녀 코로나(Corona)는 부부 사이로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들은 아마 시리아(Syria)에서 순교한 듯하다. 그들의 순교에 대해 그들의 행전에 언급된 상세한 내용들은 별로 신뢰할만하지 못하다.

 

에렘베르토(5.14)

신분 : 주교

연대 : 672년경

지역 : 툴루즈

 

 퐁트넬(Fontenelle)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서원한 수많은 수도자들 가운데 성 에렘베르투스(Erembertus, 또는 에렘베르토)는 남달리 뛰어났다. 그는 포와시 교외 오쿠르에서 태어났으며 젊어서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수도생활을 좋아하고 또 수도원에서 지내기를 원하였으나, 그의 덕이 너무나 뛰어나서 프랑스 국왕 클로테르 3세(Clotaire III)가 그를 툴루즈의 주교로 임명하였다.

 한 번은 에렘베르투스가 자기 동생 가마르를 찾아보려고 고향으로 갔는데, 때마침 대화재가 발생하여 온 도시가 화염에 휩싸일 지경이었다. 성 에렘베르투스는 가까운 성당으로 들어가 간절히 기도한 뒤에 자기의 십자가를 꺼내들었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멈추고 불꽃은 꺼졌다. 큰 기적을 본 주민들은 모두 성당으로 몰려 와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성인을 환호하였다. 그는 자신의 건강이 나빠지자 주교직을 사임하고 죽을 때까지 퐁트넬 수도원에서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의 동생인 가마르도 이미 두 아들을 두었지만 형의 위대한 업적을 보고 퐁트넬 수도원에 들어가 훌륭한 수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에지디오(5.14)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185-1265년

지역 : 산타렘

 

포르투갈의 바오젤라(Vaozela) 태생인 에지디우스(또는 에지디오)는 산초 대왕 당시 코임브라(Coimbra)의 고관이던 로드리게스 데 바글리아디토스(Rodrigues de Vagliaditos)의 아들로 코임브라에서 공부한 뒤에 의학 공부를 위하여 프랑스 파리(Paris)로 갔다. 길을 가던 중에 그는 이상한 사람의 말을 듣고 파리 대신에 톨레도(Toledo)로 갔다. 이곳에서 그는 악마를 섬기는 마법을 공부하였고, 7년 후에야 파리로 가서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그는 오랜 동안 악마의 환시를 보고 괴로워하다가 생활을 개선하고 또 마술 서적과 부적들을 불태운 뒤에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에도 한동안 악마의 시달림을 받았으나 성모님의 환시를 본 뒤로는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그는 포르투갈의 산타렘 그리고 프랑스의 파리에서 봉사하였고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탈혼을 비롯하여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그는 질(Giles)로도 불린다.

 

유스타(5.14)

유스티나(5.14)

헤네디나(5.14)

신분 : 순교자

연대 : 130년

지역 : 사르테냐

 

 성녀 유스타와 성녀 유스티나(Justina) 그리고 성녀 헤네디나(Henedina)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의 칼리아리(Cagliari) 또는 사사리(Sassari)에서 살해당했다. 그들은 사르데냐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카르타고(5.14)

신분 : 주교, 수도원장

연대 : 637년

지역 : 피르콜

 

아일랜드 케리의 케슬메인에서 태어나 쿠바(Cuba)라고 불렸던 성 카르타고(Carthago)는 원래 돼지 치는 사람으로 성 카르타고(3월 5일) 주교의 제자가 된 후 그의 이름을 땄으며, 그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다. 590년경 그는 킬투라프(Kiltulagh)의 은수자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뱅거(Bangor)에서 성 콤갈(Comgall)의 지도를 받았다.여러수도원들을 둘러본 카르타고는 얼마동안 오팔리(Offaly)의 라한에서 정착하다가,595년에 그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8백 명이 넘는 수도자들을 지도하는 원장이 되었다그는 운문체로 규칙을 썼다. 

그는 후일 피르콜(Fircall)의 주교가 되었다. 또한 그와 그의 수도자들이 지방 영주 불란트막에 의하여 수도원에서 축출되자, 리즈모어(Lismore)에 새로운 수도원을 세우고 만년에는 근처의 동굴에서 독수자로 살았다. 그는 또한 카르타크(Carthach) 또는 모쿠다(Mochuda)로도 알려져 있다. 리즈모어 수도원은 아일랜드의 수도자 교육원으로서는 가장 유명하다.

 

폰시오(5.14)

신분 : 순교자

연대 : 3세기경

지역 : 치멜라

 

성 폰티우스(또는 폰시오)는 258년경에 치멜라에서 순교한 초기 순교자들 가운데 한 분이다. 이 치멜라는 랑고바르드족(Langobard)의 공격을 받고 무참하게 짓밟혔다가 그 뒤에 다시 재건되었는데, 지금의 프랑스 니스(Nice) 근교 리비에라(Riviera)에 있는 시미에즈이다. 


전설에 따르면 폰티우스는 로마 원로원의 아들로서 교황 성 폰티아누스(Pontianus)에 의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교육받았다고 한다. 그의 부친이 서거할 때 그는 자신의 모든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용기를 보였고, 필립 황제와 그 아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 후 그는 치멜라로 가서 살았는데 그리스도인임이 밝혀짐으로써 맹수들의 밥이 되도록 던져졌지만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집정관이 참수를 명했다고 한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출처 : 별을 헤는사람들
글쓴이 : 바오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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