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인축일

[스크랩] 5월 30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6. 2.
반응형
SMALL

가비노(5.30)

크리스풀로(5.30)

신분 : 순교자

연대 : 130년

 

성 가비누스(또는 가비노)와 성 크리스풀루스(Crispulus)는 사르데냐(Sardegna)의 최초의 순교자들이다. 그들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신들이 복음을 선포하던 토레스(Torres)에서 순교하였다.

 

루카 키르비(5.30)

신분 : 순교자

연대 : 1582년

지역 : 영국

 

영국 잉글랜드(England) 요크셔(Yorkshire)의 베데일 태생인 성 루카 키르비(Lucas Kirby, 또는 루가 키르비)는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후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1576년에 두에(Douai)로 가서 사제직을 준비하였다. 그 후 다시 로마(Rome)로 가서 공부한 뒤에 1577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활동하지도 못한 채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혀 있다가,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리카르도 뉴포트(5.30)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612년


   리카르두스 뉴포트(Richardus Newport, 또는 리카르도)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중부 노샘프턴(Northampton) 출신의 교구 사제이며, 로마(Rome)에서 재교육을 받은 후 잉글랜드에서 성공적으로 사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수차례나 투옥되었고 또 두 번이나 추방되었다. 그는 런던의 성공회 주교 앞으로 끌려갔으나 끝까지 가톨릭을 옹호하여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1612년 5월 30일에 타이번(Tyburn)에서 순교하였다.

 

마델지실로(5.30)

신분 : 은수자

연대 : 655년경

 

성 마델지실루스(또는 마델지실로)는 아일랜드 사람으로서 성 푸르세우스(Furseus)와 함께 영국으로 그 다음에는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선교하였다. 그의 스승이 서거한 뒤에 그는 생리퀴에(Saint-Riquier)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고, 동료들로부터 지나친 공경을 받는 것이 불편하여 오티에 강의 몬스틀렛산의 은둔소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관상생활에 전념하던 중에, 영국인 은수자 불간의 방문으로 이 두 사람의 우정이 꽃피기 시작하였다. 그의 유해는 생리퀴에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바실리오(5.30)

신분 : 증거자

연대 : 370년

 

 성 바실리우스(Basilius, 또는 바실리오)와 성녀 엠멜리아(Emmelia)는 성 대 바실리우스(1월 2일),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 세바스테(Sebaste)의 성 베드로(Petrus, 1월 9일) 그리고 성녀 마크리나(Macrina, 7월 19일)의 부모이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추방되었다가 후에 그들이 살던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발스타노(5.30)

신분 : 평신도

연대 : 1016년

지역 : 노리치

 

성 발스타누스(Walstanus, 또는 발스타노)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노리치 근교 바우버(Bawbough) 출신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그는 부친 베네딕투스와 모친 블리다의 좋은 표양을 받고 자람으로써 그의 앞날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다. 12세 때에 이미 그는 유산을 포기하고 집을 떠나 테버햄(Taverham)에서 하인 생활을 하였다. 그는 애덕이 지극하여 자기의 음식이나 신, 옷가지들을 항상 걸인에게 주었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받는 세경조차 보속이 정신으로 남에게 주었다. 그는 독신서원을 발했으나 수도원 생활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이 일하던 목장에서 선종했는데, 잉글랜드의 하인들은 그의 무덤을 순례하고 큰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월스탄으로도 불린다.

 

시코(5.30)

팔라시노(5.30)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시쿠스(또는 시코)와 성 팔라티누스(Palatinus)는 시리아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순교자들이다.

 

아나스타시오(5.30)

신분 : 주교

연대 : 680년

지역 : 파비아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아리우스주의에 빠졌다가 개종하였고, 668년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파비아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교구를 다스렸다.

 

안드레아(5.30) (복자)

신분 : 주교

연대 : 1401년

지역 : 피스토이아

 

 안드레아(Andreas)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피스토이아의 프란치 보카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다. 뛰어난 설교가이던 그는 1378년에 고향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23년 동안이나 교구를 지혜롭게 다스렸는데, 주로 교회를 재건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사업에 힘을 쏟았다. 그러므로 주교의 직책을 수행하면서도 극도로 단순하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능한 한 규칙을 하나도 어기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임종하기 일 년 전에 주교직을 사임하고 수도원에서 죽음을 준비하였다.

 

야고보 베르토니(5.30) (복자)

신분 : 신부

연대 : 1483년

 

 이탈리아 파엔차 출신인 야고보 베르토니(Jacobus Bertoni)는 성모의 종 수도회에서 서약을 할 즈음에 부친의 중병으로 연기하였다가, 몇 년 뒤에 서약하여 가장 훌륭한 수도자의 모습을 살았던 분이다. 그는 죄를 철저히 미워하여 매일같이 고해성사를 본 사람으로 유명하다. 외관상으로 그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매우 여위었다. 사제로 서품된 뒤에 그는 수도원내의 여러 직책을 맡아 모범적으로 수행하다가, 39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엑스수페란시오(5.30)

신분 : 주교

연대 : 418년

지역 : 라벤나

 

 이탈리아 라벤나의 대주교이던 성 우르수스(Ursus)의 후임자인 성 엑스수페란티우스(또는 엑스수페란시오)는 교구민들의 현세적, 영신적 이익을 위하여 일생을 불사른 분이다. 그는 호노리우스 황제 치하에서 살았는데, 스틸리코족이 라벤나를 침략했을 때 그가 직접 군인들을 이끌고 나가 이 도시를 방어하였다. 그는 거의 20년 동안 주교직에 있으면서 위대한 사목자로 추앙받다가 418년에 운명하였으며, 유해는 지금 라벤나 대성당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엠멜리아(5.30)

신분 : 증거자

연대 : 370년

 

성 바실리우스(Basilius)와 성녀 엠멜리아는 성 대 바실리우스(1월 2일),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 세바스테(Sebaste)의 성 베드로(Petrus, 1월 9일) 그리고 성녀 마크리나(Macrina, 7월 19일)의 부모이다. 그들은 갈레리우스 막시미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추방되었다가 후에 그들이 살던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윌리엄 스콧(5.30)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612년 

 

윌리엄 스콧은 영국 잉글랜드(England) 치그웰(Chigwell) 출신으로서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홀에서 공부했는데, 이 대학에서 가톨릭 문학 서적을 읽다가 개종하였다. 그 후 그는 해외로 나가서 성 파쿤두스 수도원에 입회하여 사제가 된 뒤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 그는 런던으로 들어가는 길에 자기 자신을 가톨릭으로 인도해 준 성 요한 로버츠(Joannes Roberts)를 보았는데, 이때 성 요한은 형리들의 손에 끌려가고 있었다. 그는 그 후 꼭 3일 뒤에 체포되었다. 그 후 그는 두 차례나 추방되었으나 다시 돌아옴으로써 결국은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빌리암 스콧으로도 불린다.

 

이사악(5.30)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410년경

지역 : 콘스탄티노풀

 

아리우스파(Arianism)의 황제인 발렌스가 가톨릭을 박해할 때 이사악이란 은수자가 자기 은둔소를 떠나 이에 항의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그래서 성 이사악은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수차례에 걸쳐서 가톨릭에 대한 박해의 중지를 호소하고 경고하였다. 만일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큰 재앙이 내린다고도 하였다. 황제는 한 은수자의 이런 경고를 비웃으며 그가 이 도시를 벗어나면 가까운 수렁에 빠트려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이를 모면하고 또 다시 예언의 말을 하다가 결국은 투옥되었다. 그 얼마 뒤에 이사악의 예언대로 왕은 전투에서 참패하여 죽었다. 이때부터 그를 위대한 수도자로 또 예언자로 공경하였다. 그는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Council of Constantinople)에도 참석하였다.

 

페르디난도 3세(5.30)

신분 : 왕

연대 : 1199-1252년

지역 : 카스티아

 

중세 후기 에스파냐 북서부에 있던 레온 왕국(Kingdom of Leun)의 왕 알폰소 9세(Alfonso IX)와 카스티야의 알폰소 3세의 장녀인 베렌가리아(Berengaria)의 아들인 성 페르디난도(Ferdinandus)는 살라망카(Salamanca) 교외에서 태어나서 18세 때에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 되었다. 또 그는 1219년에 독일 남서부 슈바벤(Schwaben)의 국왕 필립의 딸인 베아트릭스(Beatrix)와 결혼하였고, 그의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레온 왕국의 국왕이 되었다. 

그는 재임 20년 동안 늘 무어인들과 싸웠으며 우베다(Ubeda), 코르도바(Curdoba), 카디스(Cadiz) 그리고 끝내는 세비야(Sevilla)에서까지 그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여 안달루시아(Andalusia) 지방 대부분을 회복하였다. 그는 지혜롭게 통치하여 뛰어난 왕으로 칭송받았으며 두 나라 간의 내적 평화를 이룩하였다. 

 그는 시메네스 대주교를 재상으로 모셨고, 1243년에는 살라망카에 대학교를 세웠으며, 부르고스 대성당(Burgos Cathedral)을 재건하고, 세비야의 회교 사원을 성당으로 개조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또 아내 베아트릭스가 죽고 난 뒤에 퐁티외의 요안나(Joanna)와 재혼하였다. 그의 장례식 때에 그에게 프란치스코의 작은 형제회의 수도복이 입혀졌고, 세비야 대성당에 안장되어 국민들의 공경을 받아온다.

 

펠릭스 1세(5.30)

신분 : 교황, 순교자

연대 : 274년


성 펠릭스는 로마인이며 그의 부친이 콘스탄티우스(Constantius)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269년 1월 5일에 교황 디오니시우스(Dionysius)를 계승하여 교황좌에 올랐고, 카타콤바의 순교자 묘지 위에서 미사를 봉헌하도록 명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는 로마 순교록에 순교자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출처 : 별을 헤는사람들
글쓴이 : 바오로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