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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스크랩] 6월 2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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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포로(6.2)

신분 : 주교

연대 : 758-828년

지역 : 콘스탄티노풀

 

콘스탄티누스 코프로니무스 황제의 국무장관의 아들인 성 니케포루스(또는 니체포로)는 성물을 폐기하라는 황제의 칙서를 거부한 사건으로 고문을 당한 후 유배되었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웅변과 학식 그리고 국가적인 지위 때문에 결국은 황제의 지방장관으로 발탁되자, 이 기회를 이용하여 흑해 근방에 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그는 비록 평신도였으나,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806년에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로 임명되어 성 타라시우스(Tarasius)를 계승하였다. 그는 자기 교구의 개혁을 계획하여 수도원 규칙을 강화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아르메니아인 레오 황제가 즉위하면서 성상 파괴를 재개하므로 격렬히 반대하다가 자신이 세운 수도원으로 유배당하였다. 그는 여기서 15년을 지내는 동안 성상 파괴주의자들을 반대하는 몇 편의 글을 남겼고, 두 권의 역사서를 기술하였다.

그는 3월 13일 또는 6월 2일에 사망(또는 순교)한 관계로 3월 13일 또한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니콜라오(6.2)

신분 : 순례자

연대 : 1094년

 

 성 니콜라우스 페레그리누스(Nicolaus Peregrinus, 또는 니콜라오)의 생애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열심하고 단순한 마음을 지닌 그리스 사람이며, 이탈리아에서 이방인처럼 방랑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얼마 동안은 이탈리아 남동부 오트란토(Otranto)에 정착했지만, 곧 아폴리아 전역을 방랑하다가 병이 들어 트라니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키리에 엘레이손’(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을 외치며 다녔다. 그는 가끔 사과나 혹은 어린이들이 좋아할 물건들을 들고 다니면서 아이들이 모이면 함께 찬미가를 노래했다. 또 가끔은 미친 사람으로 몰려 곤욕을 치루기도 했으나 그의 죽음을 계기로 하여 그의 높은 덕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그의 무덤은 치유의 기적으로 지금도 순례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마투로(6.2)

베시오(6.2)

블란디나(6.2)

비블리데(6.2)

상토(6.2)

에파가토(6.2)

포티노(6.2)

폰시코(6.2)

신분 : 순교자

연대 : 177년

지역 : 리옹

 

 성 포티누스(Pothinus) 주교는 리옹 순교자들의 지도자였는데, 그가 순교할 때에는 이미 90세 된 병들고 힘없는 노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관리들 앞에서 똑바로 서서 재판을 받고 그리스도를 옹호하였다. 재판관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당신이 참 인간이라면 반드시 알게 될 것이요” 하고 대답할 정도로 대담하였다. 

그와 함께 순교한 이들로는 성 상투스(Sanctus), 베티우스(Vetius), 에파가투스(Epagathus), 마투루스(또는 마투로), 폰티쿠스(Ponticus), 비블리데(Biblides), 아탈루스(Attalus), 알렉산데르(Alexander)와 성녀 블란디나(Blandina) 등의 이름이 알려져 있다.

 

아탈로(6.2)

알렉산데르(6.2)

신분 : 순교자

연대 : 177년

지역 : 리옹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성 아탈루스(또는 아탈로)는 의사인 성 알렉산데르(Alexander)와 함께 프랑스 리옹의 원형극장에서 맹수들의 밥으로 던져졌다가 다시 끄집어내어 철제 의자에 앉힌 채 구워 죽이는 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사독(6.2)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260년

 

1221년의 도미니코회 총회에서 성 도미니코(Dominicus)는 제 2차 선교단을 구성하여 헝가리와 타타르족들에게 파견하였다. 헝가리 선교단의 책임자는 바오로(Paulus)라는 형제였는데, 이 파견단 중에서 가장 열렬하고 또 성공적인 선교를 담담했던 분이 사독이다. 그는 헝가리 사람인 듯하다. 그는 헝가리를 거쳐 폴란드의 산도미르까지 설교하였고, 그곳에 수도원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1260년에 그는 타타르인들에게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날 공동체의 수도자들은 ‘살베 레지나’를 노래하면서 온종일 그를 애도하였다.

 

스테파노(6.2)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1075년?

지역 : 스웨덴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가 ‘헬싱키의 사도’라는 사실 외에는 그의 생애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처음에 그는 작센(Sachsen)의 뉴코르비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중에 사제가 되었고, 성 안스카르에 의하여 스웨덴의 지역 주교로 파견되었다. 그의 선교활동은 괄목할 만큼 성공적이었는데, 처음에 그가 활동한 지역은 사운드 연안이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심는데 최선을 다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웨덴’ 신상을 파괴하는 일에 정성을 다 하던 중 그 신을 섬기던 이교인들에 의하여 헬싱그랜드의 노랄라에서 순교하였다.

 

에라스모(6.2)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03년경

지역 : 포르미에

 

성 에라스무스(또는 에라스모)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의 포르미에의 주교였으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순교하였다. 그의 전기는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했던 어느 시리아 주교와 혼동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레바논 산에서 은수자가 되었으나 곧 체포되어 황제 앞에 끌려 나와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 후 그는 감옥에 갇혔는데, 한 천사의 손에 이끌려 기적적으로 해방되어 일리리쿰(Illiricum)으로 인도되었다. 그는 여기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는데 성공하였으나 또 다시 체포되었다. 그 천사가 재차 그를 인도하여 포르미에로 갔는데, 그는 여기서 전에 입은 상처 때문에 운명하였다. 그는 14명의 거룩한 후원자 중의 한 분이고, 항해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폭풍 전후에 뱃전에 밝히는 푸른 등을 네아폴리탄 항해자들은 성 에라스무스의 등이라고 부른다. 엘모(Elmo)로도 불린다.

 

에우제니오 1세(6.2)

신분 : 교황

연대 : 657년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는 로마(Rome)의 사제로서 교회 내에 여러 직책을 통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특히 그의 애덕과 성덕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654년 8월 10일에 교황으로 축성되었다. 이때 그의 선임자인 교황 성 마르티누스 1세(Martinus I)는 황제 콘스탄스 2세의 명에 의하여 크림 반도(Krym Peninsula)의 케르소네수스(Chersonesus)로 유배되었다. 이 사건에는 많은 의혹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르티누스는 선출이 승인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에우게니우스가 황제의 꼭두각시였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에우게니우스는 베드로(Petrus)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서 인정하라는 황제의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자신의 독립을 공고히 하였다. 콘스탄스 황제는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655년의 페닉스 해전에서 황제가 패전해서 에우게니우스는 선임자의 운명을 벗어날 수 있었다. 에우게니우스는 657년 6월 2일에 로마에서 사망하여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출처 : 별을 헤는사람들
글쓴이 : 바오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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