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6.28)◀ (예비신자)
▶세레노(6.28)◀
이탈리아의 스폴레토(Spoleto)에서 태어난 성 세레니쿠스(Serenicus)와 성 세레누스(또는 세레노)는
형제지간으로 가족과 모든 소유물을 포기한 채 로마(Roma)를 여행하였다.
사도들의 무덤 앞에서 기도할 때 그들은 이상한 사람의 인도를 받고 로마에서 베네딕토회의 규칙에 따라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런데 그 이상한 사람은 또 다시 그들을 프랑스의 알프스를 넘어 새로운 곳으로 인도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샤르니(Charnie) 숲에 은둔소를 세웠는데, 그들을 인도한 사람은 천사였다고 한다.
그들은 외부 세계와 절연한 상태에서 엄격한 자기훈련을 했으나 그들의 성덕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짐에 따라 방문객들이 찾아들었다.
그래서 성 세레니쿠스는 더욱 고요한 곳을 찾아 사르트(Sarthe) 강변으로 갔으나 곧 큰 공동체를 이룰 만큼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결국 그는 그들의 영적 안내자가 되어 시편 전부를 매일 암송하는 법을 가르쳤고,
로마의 성무일도에다 베네딕토회의 성무일도를 덧붙여 사용하는 등 베네딕토회의 규칙을 따랐다.
성 세레니쿠스는 669년경에 운명하였다.
한편 성 세레누스는 샤르니 숲의 은둔소에서 환시, 탈혼, 기적 등의 초자연적 은혜를 받고 평생을 지내다가 연로한 나이 때문에 선종하였다.
▶플루타르코(6.28)◀
▶헤라클리데(6.28)◀ (예비신자)
▶헤론(6.28)◀
신분 : 순교자
연대 : 202년
성 헤론(Heron)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있던 오리게네스(Origenes)의 교리 학교 학생이었다.
그는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때 성 플루타르쿠스(Plutarchus), 성 세레누스(Serenus), 성 헤라클리데(Heraclides),
성 라이스, 성녀 포타미오이나(Potamioena), 성녀 마르첼라(Marcella)와 함께 순교하였다.
성 헤론은 새영세자였고, 성 헤라클리데와 성 라이스는 예비신자였다.
▶마르첼라(6.28)◀
▶포타미외나(6.28)◀
신분 : 순교자
연대 : 202년
젊고 아름다우며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이었던 성녀 포타미오이나(Potamioena)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때 잔인한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녀는 신앙과 정결을 지키기 위해 모진 고문을 받은 끝에 화형을 받았다고 한다.
성 바실리데(Basilides, 6월 30일)라는 관리가 그녀의 형을 집행했는데,
그녀의 경건함에 눌려 개종하였고 나중에 그 자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수형을 받았다.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마르첼라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오리게네스(Origenes)의 교리 학교의 학생으로
성 헤론(Heron)을 비롯한 여러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바오로 1세(6.28)◀
신분 : 교황
연대 : 767
교황 스테파누스 3세(Stephanus III)와 형제지간인 성 바오로(Paulus)는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수업하고,
로마(Rome)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후 외교 사절로 교황을 보필하였다.
그는 자신의 형을 계승하여 757년 4월 26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피핀 왕과 우호관계를 유지하였고,
교황의 세속권을 약화시키려는 비잔틴 당국에 항거하여 765년에 데시데리우스와 협정 체결에 성공하여 쌍방의 영토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
는 콘스탄티누스 고프로니무스 황제의 성상 파괴 정책에 격렬히 항거하였다.
▶베니뇨(6.28)◀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6세기
교황 펠라기우스 2세(Pelagius II)의 교서에 성 베니뇨 주교의 사임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성 베니뇨 주교는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Utrecht)로 은퇴하였다. 그는 로마 순교록에 순교자로서 기록되어 있고,
그의 유해는 996년 위트레흐트에서 발견되었다.
▶빈첸시아 제로사(6.28)◀
신분 : 설립자
연대 : 1784-1847년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Bartholomea Capitanio)가 ‘로베레의 애덕회’를 세울 때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의 정열적인 도움을 받았다.
빈첸시아는 1823-1824년 사이에 바르톨로메아와 친분을 맺고서 젊은이들의 교육과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성 빈첸시오 데 바오로의 애덕회 규칙을 따랐지만,
정부 측이 새로운 수도회 설립을 반대함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빈첸시아는 하느님의 참 정신을 가진 성녀로 불리었다. 그 결과 이 위대한 설립자는 새 수도원을 끊임없이 세워나갔다.
그녀는 자신을 비천한 피조물로 간주했으며,
십자가상의 주님의 권능과 안배를 늘 기도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십자가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더 배울 것이 없다.”
그녀는 1926년 5월 30일 복자품에 올랐고, 1950년 5월 18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아르지미로(6.28)◀
신분 : 수도승, 선교사
연대 : 858년
에스파냐 카브라(Cabra) 출신의 성 아르기미루스(또는 아르지미로)는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의 영토 어느 곳에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해고된 후 그는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 때문에 재판을 받고 참수되었다.
▶요한 사우스워스(6.28)◀
신분 : 순교자
연대 : 1654년
지역 : 영국
영국 잉글랜드(England) 랭커셔(Lancashire)의 사우스워스 출신인
성 요한(Joannes)은 프로테스탄트 분위기 속에서도 다행히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되어,
1613년에 프랑스 랭스(Reims)의 두에 대학으로 가서 21세의 나이로 사제직을 준비하였다.
사제가 된 후 약 5년 동안은 베네딕토 회원이 되려고 노력하였으나 자신의 선교사적 이상 때문에 교구사제로 머물고 말았다.
1619년 12월 13일 그는 영국 선교단의 일원으로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1623년에 돌아와서 두에(Douai)와 브뤼셀(Brussel)에서 베네딕토 수녀회의 지도신부로 활약하였다.
그 후 또다시 고향 땅에 선교하고 싶은 열망을 이기지 못해 영국으로 건너가서 1627년까지 활약하다가 랭커셔 성에 갇혔고,
62세의 일기로 순교하였다. 에스파냐 대사의 주선으로 그의 유해는 두에의 영국 대학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하임라트(6.28)◀
신분 : 신부
연대 : 1019년
성 하임라트는 농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제직 수업을 마친 뒤에 서품을 받고 자신이 태어난 영주에 속한 사제로 부임하였다.
그 후 그는 로마(Rome)와 예루살렘을 순례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빵을 구걸하고 자선을 베푼 이들에게 축복을 빌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헤르스펠트(Hersfeld) 수도원에 잠시 머물다가 그곳에 아주 정착해버렸다.
그러나 얼마 후 그곳을 떠나 헤센 나사우(Hessen Nassau)의 볼프하겐(Wolfhagen)의 숲 속에서 은신하며 엄격한 생활을 계속하여 성덕을 쌓았다.
그는 수많은 기적과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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