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슬라오(6.27)◀
신분 : 왕
연대 : 1040-1095년
지역 : 항가리
헝가리의 국왕 벨라의 아들로 태어난 성 라디슬라우스(또는 라디슬라오)는 1077년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한차례 친척들의 퇴위 요구를 받은 적이 있으나 이를 무사히 진정시켰다. 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ius)를 적극 지원하면서,
성 스테파누스(Stephanus)를 거울삼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그는 바이에른(Bayern)의 공작 웰프의 딸인 아델라이드와 결혼하였고,
쿠만족들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물리쳤으며, 자신의 나라에 그리스도교를 적극 장려하였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성당들을 세웠고, 유대인들과 마호메트인들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관대함을 보였다.
1092년의 스자볼레스 시노드(Synod)에서 그는 수도자와 사악한 사건들에 대한 일련의 법을 선포하였고,
제 1차 십자군의 지도자로 선정되었으나 출전하기에 앞서 보헤미아(Bohemia)의 니트라에 서거하였다.
그는 헝가리의 국가 영웅 중의 한사람이며 헝가리의 영토를 최대한으로 확장했던
위대한 왕임과 동시에 통치자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정의를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덕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의 사후부터 즉시 공경받기 시작한 그는 교황 코일레스티누스 3세(Coelestinus III)에 의하여 1192년에 시성되었고,
자신이 세운 나기바라드 대성당에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벤베누토(6.27)◀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232년
지역 : 구비오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구비오 태생인 벤베누투스(Benvenutus, 또는 벤베누토)는 맹세한 군인이었으나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프란치스코회의 영향이 미치자 그 역시 회원이 되었다.
그가 수도회에 입회한 날부터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자신의 모든 행동을 할 만큼 그는 단순하였다.
자신의 요청에 따라 나환자들을 돌보게 되자,
그는 그들을 우리 주님 당신으로 생각하고 상처를 싸매고 몸을 씻겨주었다. 항상 예모 있게 처신한 그는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그의 사랑이 이토록 지극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 자신이 여러 병으로 늘 고생하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온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였고, 미사 때에는 자주 아름다운 아기 예수의 환시를 보았으며,
자신도 모르게 끌어안으려고 팔을 내밀었다고 전해온다.
이처럼 단순한 그의 생활은 즉시 온 세상에 두루 퍼졌으며,
1232년에 풀리아(Puglia)에서 운명하였다.
그의 사망이 있은 지 4년이 채 못 되어서 베네치아(Venazia)와 아말피의 주교들로부터 그의 공경이 허락되었으며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다.
▶삼손(6.27)◀
신분 : 신부
연대 : 530년
성 삼손 세노도키우스(Sampson Xenodochius, 또는 삼손 세노도치오)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유명한 시민으로 의학을 공부하였고 자신의 삶을 병들고 가난한 이들의 영성적,
육체적 보호에 헌신하고자 사제가 되었다.
그는 산타 소피아(Santa Sophia) 근처에 좋은 시설을 갖춘 대형 병원을 설립하였다.
▶아넥토(6.27)◀
신분 : 순교자
연대 : 303년
성 아넥투스(또는 아넥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바로니우스(Baronius)는 로마 순교록을 정리하면서
그의 순교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일어난 것으로 기록하였다.
▶아리알도(6.27)◀
신분 : 부제, 순교자
연대 : 1066년
지역 : 밀라노
성 아리알두스(또는 아리알도) 부제는 당대 주로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행해진
성직매매에 대한 강력한 반대자요 개혁운동의 대표자로 알려졌다.
그로 인해 그는 파문되는 등 갖은 박해를 받다가 성직매매를 행한 밀라노의 대주교에 의해 살해되어 호수에 던져졌다.
그의 시신은 10개월 후 발견되었는데, 부패하지도 않았고 감미로운 향기가 났다.
그 후 그의 유해는 밀라노 주교좌 성당에 안치되었고,
1067년 교황 알렉산데르 2세(Alexander II)에 의해 순교자로 선포되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04년에 승인되었다.
▶요한(6.27)◀
신분 : 은수자
연대 : 6세기
지역 : 시농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에 의하면 성 요한(Joannes)은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출신의 이방인으로서 투렌(Touraine) 지방의 시농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의 성 막시무스(Maximus) 성당과 가까운 곳에 작은 방과 기도실을 만들고 운둔생활을 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교제를 삼가고 약간의 월계수를 심은 정원을 돌보며 그곳에 앉아 독서와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성녀 라데군다(Radegundis, 8월 13일) 왕후의 영적 조언자였다. 그는 사망한 후 자신의 작은 방에 묻혔고,
많은 순례자들이 그의 전구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였다.
▶제오르지오 므타스민델리(6.27)◀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014-1066년
성 게오르기우스 므타스민델리(Georgius Mtasmindeli, 또는 제오르지오)는 흔히 ‘블랙 마운틴의 조지’로 불린다.
젊었을 때 그는 유명한 은수자 힐라리온의 제자가 되어 시리아의 사막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성 에우티미우스(Euthymius)에 의하면 그는 성서 번역 사업을 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그는 방랑생활을 더 많이 하면서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성지들을 두루 다녔고,
아토스 산(Mount Athos) 수도원의 원장도 역임하였다.
▶조일로(6.27)◀
신분 : 순교자
연대 : 304년?
성 조일루스(또는 조일로)와 그 동료 순교자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에스파냐의 코르도바(Curdoba)에서 순교하였다.
조일루스는 지방 귀족의 아들로서 어릴 때부터 신자였는데 젊어서 순교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1083년에 성 조일루스와 성 아키스클루스(Acisclus)의 유해가 그곳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옮겨졌고,
시인 프루덴티우스(Prudentius)는 위의 두 성인을 그의 시로 찬미하였다.
▶크레센스(6.27)◀
신분 : 바오로의 제자, 순교자, 주교
연대 : 2세기
성 크레스켄스(또는 크레센스)는 사도 바오로(Paulus)의 제자로서 디모테오 2서 4장 10절에 갈라티아(Galatia)로 갔다고 언급되어 있다.
그는 갈라티아의 주교로 임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교회 전승은 그의 프랑스에서의 사도직 활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독일 마인츠(Mainz)의 주교좌를 신설했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은 그가 동방으로 돌아와서 트라야누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했다고 추가하였다.
그런데 교회 전승에 약간의 혼동이 있는데,
사도 바오로의 제자인 성 크레스켄스가 프랑스 비엔(Vienne)의
초대주교인 것은 확실하나 독일 마인츠에서 활동한 크레스켄스는
그가 참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오로의 제자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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