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팔 데 보노(Caspar de Bono)◀ (복자)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530-1604년
카스파르 데 보노(또는 가스팔)는 1530년에 에스파냐의 발렌시아(Valencia)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너무나 가난하고 또 평범한 분들이었다. 그가 성장하자 가계를 도우기 위해 비단 장사를 떠났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장사를 그만두고 군인이 되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성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였으며, 많은 시간을 기도와 묵상으로 지냈다. 이리하여 그는 주님의 은총으로 확신을 얻고, 수덕생활을 목표로 삼고 군대를 떠나려 하였지만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어느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였는데, 이때 그는 회복되기만 하면 미님스회에 입회하기로 결심하고, 나중에 회원이 되었다.
이 수도회는 대단히 엄격하였지만, 그의 장상이자 설립자인 바울라의 성 프란치스코는 가스팔의 높은 성덕을 즉시 알아보았으며, 또 그를 다음 해에 사제로 서품하였다. 수도생활을 하면서 그는 늘 육체적인 여러 고통으로 괴로움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발적인 고행을 배가하였다. 그는 1604년에 발렌시아에서 운명하였고, 1786년에 시복되었다.
▶니고데모(Nicodemus)◀
신분 : 수사
연대 : 1748-1809년
지역 : 아토스 산
성 니코데무스(또는 니고데모)는 1775년에 아토스 산의 디오니시우에서 수도자가 되었는데, 당대의 최고 저술가로 알려진 분이다. 그는 주로 교회법전, 성인전, 전례, 수덕신비 신학 등에 관한 저서를 남겼다. 그가 그리스어로 쓴 “라우렌티우스 스쿠폴리의 영적 전쟁”은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 수련”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코린토스(Corinthos)의 성 마카리우스(Macarius)와 공동 편저한 “필로칼리아”인데, 이 책은 1782년에 베네치아(Venezia)에서 출간되었다. 또 그리스 교부들과 수도자들의 저서들을 집대성한 전집도 유명하다.
▶데우스데디트(Deusdedit)◀
신분 : 주교
연대 : 664년
지역 : 켄터베리
남(南) 색슨 사람인 성 데우스데디트를 프리토나라고도 부르는데, 앵글로 색슨족으로서는 처음으로 고위 성직자가 된 분이다. 그는 653년에 캔터베리의 대주교로서 호노리우스(Honorius)를 승계하였다. 그 외의 자세한 이력과 활동은 알 수 없다.
▶리카르도 랭고른(Richard Langoharne)◀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679년
영국 잉글랜드(England)의 베드퍼드셔(Bedfordshire)에서 좋은 가문의 후예로 태어난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는 1654년에 법조계로 진출하여 정의롭고 신심 깊은 뛰어난 법률가라는 명예를 얻었다. 그는 런던 대화재 사건 이후인 1667년에 체포되었다. 그는 1679년 7월 14일 타이번(Tyburn)에서 형을 받을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주 예수여, 저는 당신의 손에 내 영혼을 맡겨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에 천국에 들게 하소서. 저는 예수님과 함께 있기가 소원입니다.” 그리고 교수형 집행자에게 “나는 준비가 되었소. 나 때문에 지체할 필요는 없소”라고 당당히 말하였다.
▶마르첼리노(Marcellinus)◀
신분 : 선교사
연대 : 762년
마르첼모(Marchelm), 마르쿨프(Marculf)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성 마르첼리누스(또는 마르첼리노)는 프리슬란트(Friesland)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성 빌리브로르드(Willibrord)를 따라 네덜란드로 갔던 영국인이다. 그는 위트레흐트(Utrecht)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와 합류하여 15년 동안이나 프리슬란트와 구엘더랜드에서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성 그레고리우스가 순교하자 그의 관할 구역이 성 레부인(Lebuin)의 수하에 들어가게 되었으므로, 그는 그 성인의 명에 따라 오브리셀의 이방인들에게 가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의 유해는 나중에 데벤터로 이장되었다.
▶보니파시오(Boniface)◀ (복자)
신분 : 주교
연대 : 1270년
지역 : 사부아
사부아의 백작 토마스의 아들인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젊어서 대 샤르트르회에 들어갔다가 카르투지오 회원이 되었으며, 1234년부터 1241년까지 벨리 교구의 관리자로서 봉사하였다. 1241년 그는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의 황후가 된 조카의 영향력에 힘입어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로 선출되었으나, 1244년까지 자신의 주교좌에 부임하지 않을 정도로 강직하였다. 그는 교구를 개혁하고 과중하게 부과되는 상납금 등을 개혁하려고 시도하여 수많은 반대자들을 만들었다. 그는 국왕이 출타 중일 때에는 헨리 왕의 섭정을 맡았으며, 프랑스에 대한 외교사절직도 수행하곤 하였다. 그는 에드워드 1세와 더불어 십자군을 둘러보러 가는 도중에 사망하였다.
▶옵타시아노(Optatian)◀
신분 : 주교
연대 : 505년
지역 : 브레시아
성 옵타티아누스(Optatianus, 또는 옵타시아노)는 이탈리아 브레시아의 주교로서 451년부터 죽을 때까지 50년 이상 교구를 다스렸다.
▶울릭(Ulric)◀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020-1093년
지역 : 클뤼니
이교도로 태어난 성 울릭은 젊어서 궁성에서 지냈으나 그의 삼촌인 독일 프라이징(Freising)의 주교 노트케르(Notker)를 만난 뒤에는 세속적인 야심을 모두 버렸다. 그 후 그는 사제가 되었으나 크게 만족하지 못하고 로마(Rome)와 예루살렘을 순례하였는데, 이때 더욱 엄격한 생활을 하고자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1052년에 성 후고(Hugo)로부터 클뤼니 수도원의 수도복을 받았다.
그는 재능이 뛰어난 수도자였기 때문에 새 수도원의 건축이나 교황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화합을 위하여 늘 동분서주하였다. 그러나 그는 수도원 생활의 엄격성을 회복하는데 기울인 노력 때문에 더욱 위대한 수도자로 추앙을 받고 있다. 한번은 어느 수도자가 울고 있는 그를 보았다. “나는 내 죄 때문에 웁니다.” 또한 그는 클뤼니 수도원의 회헌을 비롯하여 3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러나 만년의 2년 동안은 맹인으로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유스토(Justus)◀
신분 : 군인,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로마
로마군의 베테랑 군인이었던 성 유스투스는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의 순교 장소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일 수도 있다.
▶치로(Cyrus)◀
신분 : 주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카르타고
카르타고의 주교인 성 키루스(또는 치로)는 아마 혼동이나 필사자의 실수의 결과로 보인다.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생애를 기록한 성 포시디우스(Possidius)는 이 카르타고의 주교가 성 키루스의 축일에 대한 강론을 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성 키루스가 아닌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9월 16일)에 대한 강론이라는 것이 더욱 사실같이 보인다.
▶펠릭스(Felix)◀
신분 : 주교
연대 : 390년
지역 ; 코모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 코모의 초대주교이며, 밀라노(Milano)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포카(Phocas)◀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117년
지역 : 시노페
흑해 연안 시노페의 주교인 성 포카는 트라야누스 황제 때에 순교하였다. 그는 9월 22일에 기념하는 정원사이자 순교자인 성 포카의 삶으로부터 유래된 전설적인 인물로도 보인다.
▶프로코피오(Procopius)◀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980-1053년
체코 서부 보헤미아(Bohemia) 출신인 성 프로코피우스(또는 프로코피오)는 프라하(Praha)에서 공부하여 사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은수생활을 더 원하였으므로 프라하의 사자바(Sazaba)에 있는 바실리우스(Basilius) 수도원에서 지냈는데, 그의 덕이 너무나 출중하여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음)의 수호성인이며, 1204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로부터 시성되었다.
▶헤라클라(Heraclas)◀
신분 : 주교
연대 : 180-247년
지역 : 알렉산드리아
이집트 사람인 성 헤라클라와 그의 동생 성 풀루타르쿠스(Plutarchus)는 오리게네스(Origenes)의 첫 번째 제자로서 알렉산드리아의 교리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오리게네스의 협조자가 되어 사제로 서품되었고, 231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데메트리우스(Demetrius)가 오리게네스를 비난할 때 그를 계승하여 그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데메트리우스 주교를 계승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훔베르토(Humbert)◀ (복자)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193-1277년
지역 : 로망스
프랑스 도피네(Dauphine)의 로망스 태생인 훔베르투스(Humbertus, 또는 훔베르토)는 파리(Paris)로 공부하러 가서 법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1224년에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다. 그는 리옹(Lyon) 수도원에서 교수하는 한편 원장도 겸임하였고,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한 뒤에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의 관구장이 되었다. 그는 형제들을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로 보내어 아랍어를 익히게 한 뒤에 쿠만족(Cumans)와 타타르족(Tatar)에게 보내어 선교하도록 하였고, 저술에도 능하였으므로 신심에 관한 글을 남겼다. 그 후 그는 총장으로 임명되었으나 1263년의 런던 총회에서 사임하고, 발랑스(Valence)의 원장으로서 학문과 설교에만 전념하였다.
▶흐로즈나타(Hroznata)◀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160-1217년
지역 : 보혜미아
흐로즈나타는 보헤미아의 오토카르 1세 궁중의 귀족으로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즐기며 살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병들어 죽고, 그 얼마 후 그의 어머니마저 사망하자 그는 이 모든 것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여 궁중을 떠나 십자군이 되기로 서약하고 성지로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의 뜻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이라고 단정하여 십자군 되기를 포기하고, 교황 코일레스티누스(Coelestinus III)의 도움을 청하였다. 마침내 그는 서부 바이에른(Bayern)의 테플(Tepl)에 적당한 땅을 구하여 대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그는 정체모를 사람들로부터 납치되어 알트-킨스부르크의 어느 지하 감방에 갇혔다가 운명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는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97년에 승인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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