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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8월 7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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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시아노(Donatian)

신분 : 주교

연대 : 4세기

지역 : 샬롱쉬르마른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또는 도나시아노)는 프랑스 샬롱쉬르마른의 제2대 주교였다.

 

 

도나토(Donatus)

힐라리누스(Hilarinus)◀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61년

지역 : 아래초

 

성 도나투스(또는 도나토)와 성 힐라리누스(Hilarinus)가 어떻게 서로 연관을 갖고 있는지는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

성 힐라리누스는 수도승으로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통치 때 이탈리아의 오스티아(Ostia)에서 순교했다.

그리고 성 도나투스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 아레초의

제2대 주교로 로마 순교록에는 그 역시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때 아레초에서 순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 도나투스는 칼과 용과 함께 있는 젊은 또는 중년의 주교로서 그려진다.

그는 아레초의 수호성인이나 그에 대한 정확한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도메시오(Dometius)

신분 : 수도승, 순교자

연대 : 362년

 

멜키테스 사람들과 동방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성 도메티우스(또는 도메시오)의 축일을 오늘날에도 성대히 지낸다.

성인은 페르시아의 개종자로서 메소포타미아의 니시비스(Nisibis)에서 수도자가 되었다가 부제로 서품되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동굴에서 살았고, 여기서 인근 주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와서 그에게 축복을 간청하였고,

혹시나 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쳤다고 한다.

그 당시에 도메티우스는 배교자인 황제 율리아누스의 불경을 크게 꾸짖은 바 있는데,

화가 치민 황제는 이 성인을 민중들의 재판에 회부하였다.

그러나 율리아누스는 이 성인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이리하여 그는 순교하였는데, 세상에서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 또는 은수자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동방 교회에서는 큰 성인으로 공경한다

 

리치니오(Licinius)

세베리노(Severinus)

세쿤도(Secundus)

엑산토(Exanthus)

카르포포로(Carpophorus)

신분 : 군인, 순교자

연대 : 295년

 

그리스도인 군인들이었던 성 카르포포루스(또는 카르포포로),

성 엑산투스(Exanthus), 성 카시우스(Cassius), 성 세베리누스(Severinus),

성 세쿤두스(Secundus)와 성 리키니우스(Licinius)는 막시미아누스 헤르쿨리우스 황제의

통치 기간 중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의 코모(Como)에서 순교하였다

 

베드로(Peter)

율리아노(Julian)

신분 : 순교자

연대 : 260년

 

성 베드로(Petrus)와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발레리아누스와 갈리에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 중에 순교한 최소 20명의 남녀 로마 순교자들 중의 일부로 여겨진다.

빅트리치오(Victricius)

신분 : 군인, 주교, 순교자

연대 : 330-407년

지역 : 루암

 

로마 군인으로서 프랑스 지방에 주둔해 있던 성 빅트리키우스(또는 빅트리치오)는

자기 친구인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누스(Martinus)처럼 군인생활은

복음에 비길 수 없다 하여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그 후 그가 385년경에 루앙의 주교로 착좌할 때까지의 과정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넓은 지역을 정열적으로 뛰어다니는 선교사 주교로 활약하였다.

그는 395년경에 브리튼의 주교들로부터 무슨 일을 꼭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정도로 유명하였고 또 영향력이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친구는 놀라의 성 바울리누스(Paulinus)이다.

그가 기록했던 “성인들의 찬가”를 비롯하여 인노켄티우스 1세(Innocentius I) 교황이 그에게 보낸 규율적인 문서가 남아 있다.

 

알베르토(Albert)

 

신분 : 신분, 은수자

연대 : 1307년

지역 : 트라파니

 

시칠리아(Sicilia)의 알베르투스로도 알려진 성 알베르투스(Albertus, 또는 알베르토)는 이 섬의 트라파니(Trapani) 태생이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없었으므로 만일 아들을 낳게 되면

몬테 카르멜의 성모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한 뒤에 그를 낳았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카르멜 회원이 되어 사제로 서품된 뒤에는 메시나(Messina)로 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규칙 외에도 자발적인 고행을 많이 하였고, 매일 밤에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서 시편 전무를 바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만년에 그는 메시나와 가까운 곳에서 은수생활을 하였으며,

300년 후에 팟지(Pazzi)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가 카르멜을 떠나려는 유혹으로 고생할 때,

천상에 계시는 성 알베르투스에게 기도하여 유혹을 이겼다는 이야기는 그의 성덕이 탁월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카시아노(Cassian)

신분 : 순교자

연대 : 1638년

 

아가탄젤로는 1598년에 방돔에서 태어났고, 21살 되던 해에 르망(Le Mans)의 카푸친회에 들어갔으며,

1625년에 사제로 서품되면서부터 시리아로 갈 때까지 고향에서 유명한 설교자로 명성을 떨쳤다.

또 알레포(Aleppo)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상인들을 상대로 사목활동을 하였으며,

그 동안에 아라비아어를 공부하여 대화나 강론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그는 모슬렘 사회의 문맹을 퇴치하고, 터키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하는 등 당시의 교회가 위험하다고 금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1630년에 카푸친회는 카이로에 선교지를 확보하고 활동을 개시하였는데,

아가탄젤로는 1633년에 그곳의 책임자로 동분서주하였다.

이때 마르세유(Marseilles)에서 3명의 선교사들이 합류하였는데,

이들 중에 낭트(Nantes)의 성 카시아누스(Cassianus, 또는 카시아노) 신부가 가장 출중하였다.

카시아누스는 즉시 아가탄젤로 신부의 오른팔이 되어 활동을 하였는데,

그가 특히 노력한 것은 로마(Rome) 성좌와 곱트 교회간의 재일치를 도모하는 일이었다.

이들 두 선교사가 이 힘든 일을 계속하다가 에티오피아 선교를 위하여 디바루아로 갔다가,

그곳의 왕인 바실리데스 앞으로 끌려갔다가 결국은 순교하고 말았다.

교황 비오 10세(Pius X)는 이 두 분이 17세기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였다고 선포하였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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