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텔모(Drithelm)◀
신분 : 수사
연대 : 700년경
노섬브리아(Northumbria)에 살던 성 드리텔모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수덕생활을 하고 하느님을 두렵게 여기는 가정을 꾸미고 살았다. 693년 어느 날 그가 평소에 앓던 병이 위중하더니, 저녁에는 죽은 듯이 숨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 아침에 갑자기 일어나서, 죽은 자신의 육신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도망갔으나 아내만은 정신없이 서 있었다. 이때 그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겁내지 마시오. 나는 죽음에서 부활하였소. 이제부터는 그전대로 살지 않고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살 것이오.” 그런 후 그는 재산을 아내와 자식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3등분하여 나누어 준 뒤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하지 않고, 지옥을 두려워하며 천상 영복을 바라는 사람에게만 들려주었다 한다. 그가 지옥이나 천국을 보았을 것이라 하여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 후 그는 일생동안 독수자처럼 엄격한 고행을 하며 지냄으로써 수많은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였다고 한다. 성 베다(Beda)는 “그가 지금도 아일랜드에서 독수생활을 하며 놀라운 삶을 산다.”고 증언하였다.
▶로가토(Rogatus)◀
▶루스티코(Rusticus)◀
▶리베라토(Liberatus)◀
▶막시모(Maximus)◀
▶보니파시오(Boniface)◀
▶세르보(Servus)◀
▶셉티모(Septimus)◀
신분 : 수도승, 순교자
연대 : 483년
지역 : 카프사
아프리카의 반달족 왕인 후네릭은 재임 17년에 가톨릭을 반대하는 칙서를 내리고 모든 수도원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카프사 교외의 수도원에 살던 7명의 수도승인 성 리베라투스(Liberatus),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로가투스(또는 로가토), 성 루스티쿠스(Rusticus), 성 셉티무스(Septimus)와 성 세르부스(Servus)는 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아리우스파(Arianism)와 타협하려다가 용기를 내어 죽음으로써 이에 항거하였다. 이때 그들의 대표자가 성 리베라투스 수도원장이었다. 그들은 쇠사슬로 묶인 채 지하 감방에 갇혔다. 그러나 간수에게 뇌물을 준 어느 신자가 밤낮으로 그들을 방문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들은 곧 카르타고(Carthago)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마마(Mamas)◀

신분 : 순교자
연대 : 275년경
성 마마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 살던 양치기였으나, 전심으로 하느님을 섬기려는 열망이 불같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박해자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직 소년이었는데 너무나 열심하고 또 용감하여 아우렐리아누스 앞에까지 끌려가서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고 한다. 어느 전설에 따르면 그 도시의 산속에서 이리들과 같이 살았지만 아주 평화스럽게 야생동물과 지냈으며, 꿀과 우유만으로 생활했다고 하며, 순교한 것이 아니라 야생동물과 함께 사라졌다고도 한다.
▶바오로(Paul)◀
▶율리아나(Juliana)◀
신분 : 순교자 (동정)
연대 : 270년
남매 사이인 성 바오로(Paulus)와 성녀 율리아나는 전설에 의하면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에 의한 박해가 시작될 무렵 팔레스티나(Palestina)의 프톨레마이스(Ptolemais)에서 순교하였다.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신분 : 주교
연대 : 553년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시리아 출신으로 이탈리아의 페루자(Perugia) 부근에서 은수자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신원에 대한 다소의 혼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교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1518년에 로마 순교록에 등재되었다.
▶에우세비오(Eusebius)◀
신분 : 교황
연대 : 309년
그리스인으로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성 에우세비우스(또는 에우세비오)는 308년에 교황 성 마르첼루스 1세(Marcellus I)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선임자로부터 배교자 처리 문제에 관한 논쟁을 물려받았다. 선임 교황은 적당한 통회를 하고 공적으로 용서받아야만 배교자들을 교회로 다시 받아들인다는 정책을 고수했고, 에우세비우스도 이를 따랐다. 이 때문에 배교자 그룹들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게 되었는데, 그들은 헤라클리오를 대립교황으로 옹립한 뒤에 보속 없이 곧바로 다른 성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쟁이 끝없이 계속되자 황제 막센티우스가 개입하여 헤라클리우스와 에우세비우스를 시칠리아(Sicilia)로 쫓아내었다. 에우세비우스는 불과 4개월 간 재임한 후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클라라(Clare)◀

신분 : 동정녀, 수녀원장
연대 : 1308년
지역 : 몬테팔코
프란치스코회과 아우구스티니아노회 사이에는 성녀 클라라 수녀가 서로 자기 수도회의 성녀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있었다. 그 이유는 성녀 클라라(Clara)가 요안나(Joanna)의 지도를 받으면서 15년 동안 은둔소에서 살았는데, 이곳은 곧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폴레토의 주교에게 정규 수도원 생활을 간청하여 허가를 받을 때, 그 주교가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의 회칙을 주었다. 이들의 은둔소는 1290년에 수도원으로 세워졌고, 요안나가 죽고 난 뒤에 클라라는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녀의 생활은 그 엄격성과 높은 덕으로 유명하다. 하루의 대부분은 침묵으로 지냈고, 눈이 오더라도 맨발로 다녔으며, 하루에 주님의 기도를 백 번씩 바쳤다고 한다. 그녀의 말과 표양은 공동체가 완덕을 지향하는데 큰 격려가 되었고, 하느님과의 일치는 관상생활의 모범이 되었다.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수도원의 재산을 수도원 밖의 사람들도 이용하도록 배려하는 등 획기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 클라라는 우리 주님의 고난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졌다. 이 때문에 클라라는 자신의 몸에 십자가의 모상이 인각되었다고 전해온다. 성녀는 1881년에 시성되었다.
▶히야친토(Hyacinth)◀

신분 : 신부, 선교사
연대 : 1185-1257년
지역 : 크라쿠프
폴란드의 오펠른(Oppeln) 출신인 성 히야킨투스(Hyacinthus, 또는 히야친토)는 사제품을 받은 후인 1217년에 로마(Rome)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살레시아 지방으로 가는 도미니코회 선교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비롯하여 프러시아(Prussia)와 리투아니아(Lithuania) 전역을 돌며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사망하였다. 폴란드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는 그는 1594년에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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