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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9월 18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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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다(Richardis)

신분 : 황후

연대 : 895년경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의 백작 딸인 성녀 리카르다는 22세 때에 독일 왕 루이스의 아들인 찰스 팻트와 결혼하였다. 19년 후 그는 남편과 함께 로마(Rome)로 가서 교황 요한 8세(Joannes VIII)로부터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와 황후로 대관되었다. 그 후 찰스 황제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을 위하여 리카르다를 모함에 빠지게 하였고, 리카르다는 이에 대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하여 타오르는 불길 위를 지나가는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맨발로 맹렬한 불길 위를 걸어갔으나 조금도 해를 입지 않았으므로 누명을 벗었으나, 남편과는 별거키로 하고 안들로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녀는 수녀들의 생활을 그대로 실천하여 보속하면서 평화롭게 살다가 선종하였다. 리카르다는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수호성인이다.

 

메토디오(Methodius)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10년경?

지역 : 올림푸스

 

성 메토디우스(또는 메토디오)를 리키아(Lycia)의 올림푸스라고도 부르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가 소아시아의 주교이며 순교자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향연 혹은 열 동정녀의 잔치”라는 일종의 플라톤식 대화집이다. 이 주제 밑에 그는 동정의 위대성을 찬미하면서, 교회의 신랑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찬미가로 끝맺고 있다. 이 책은 1958년에 영국에서 출간되었다.또 다른 책들은 “육신의 부활”과 “자유 의지”에 관한 것이다.

 

소피아(Sophia)

이레네(Irene)

신분 : 순교자

연대 : 200년경

 

성녀 이레네(Irene)는 성녀 소피아와 함께 이집트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에우메니오(Eumenius)

신분 : 주교

연대 : 3세기

지역 : 고르티나

 

성 에우메니우스(또는 에우메니오)는 지중해 동부 크레타(Creta) 섬의 고르티나의 주교로서 유배 중에 사망하였다. 그는 많은 기적을 행하고 신비로운 은사를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에우스토르지오 I(Eustorgius I)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31년

지역 : 밀라노

 

12세기의 전설에 의하면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였던 성 에우스토르기우스(또는 에우스토르지오)는 세 명의 동방박사의 유해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밀라노로 이장했다고 전해진다.

 

요한 마치아스(John Macias)

 

신분 : 평신도, 3회원

연대 : 1585-1645년

 

 에스트라마두라의 리베라에서 태어난 성 요한 마치아스(Joannes Macias)는 귀족 가문의 후손이었지만 고아로서 삼촌의 도움으로 자라면서 양치기 노릇을 하였다. 그는 긴 하루를 그냥 보낼 수 없어서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거나 교회의 신비들을 하나하나 묵상하기 시작했고, 또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복음사가의 환시들을 보기도 하였다.

그 후 그는 신대륙으로 건너가려다가 페루에 상륙하였고, 리마(Lima)에 도착할 때부터 수도자가 될 마음을 굳히고 도미니코회의 3회원이 되었다. 그의 엄격한 생활은 하루에 1시간 정도 자는 것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영적인 지혜가 날로 깊어 그를 능가할 수도자가 없을 정도였다. 성 마르티누스 데 포레스(Martinus de Porres)가 그의 친구였다. 그는 항상 문전걸식을 하여 가난한 이들과 갑자기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다가 6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페르레올로(Ferreolus)

신분 : 호민관, 순교자

연대 : 3세기?

지역 : 비엔

 

성 페르레올루스(또는 페르레올로)는 프랑스 비엔(Vienne) 지방에 살던 군사 호민관으로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브리우드(Brioude)의 성 율리아누스(Julianus, 8월 29일)는 바로 그 도시 태생인데, 그 당시에 그의 집에 기거하고 있다가 박해가 일어나면서 제일 먼저 순교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페르레올루스 역시 신자임이 드러나 프랑스 지방의 집정관 크리스피누스(Crispinus) 앞으로 끌려갔다. 이 때 그는 아주 겸손하게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저는 돈을 과대평가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할 수 있으면 하느님을 섬기면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신앙생활을 포기하기보다는 군인 생활을 그만 두었으면 합니다.” 이리하여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 감옥에 갇혔으나 하느님의 도움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는 비엔까지 도망쳤다가 다시 잡혀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비엔의 교우들은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순교한 그 자리에 성당을 지어 그를 공경해 오고 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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