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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축일

7월 6일 성인들

by 보리수나무 2017.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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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델리바(Godeliva)

 

신분 : 순교자

연대 : 1045- 1070년

 

성녀 고델리바는 아무런 죄 없이 고난 받는 자의 상징이자,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서는 순교자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18세 때에 플랑드르의 귀족인 베르툴푸스(Bertulfus)와 결혼하였는데,

남편은 별다른 이유 없이 그녀를 멀리하고, 터무니없는 모욕을 주곤 하였다.

그녀의 부친과 그 지방 주교의 압력에 굴복한 남편이 아내에게 돌아왔으나 태도는 전과 같았다.

한번은 남편이 출타하면서 다른 이를 시켜 아내를 살해하고는 자연사를 가장하라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남편은 유죄판결을 모면하였다. 그녀의 사후,

 남편은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끼고 베르쥬-생-위녹 수도원에서 여생을 눈물로 지내다 죽었다.

고델리바가 죽으면서부터 남편 베르툴푸스(Bertulfus)는 회개하였는데,

그의 맹인 딸이 고델리바에게 기도하여 시력을 회복한 기적은 그 당시의 사회를 크게 감동시켰다.

1084년 그녀의 유해가 성당에 모셔지자마자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는데,

순례자들은 그곳에 있는 그녀의 우물의 물을 먹으면 치유의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고델리바가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고아르(Goar)

신분 : 신부, 은수자

연대 : 575년

 

성 고아르는 아키텐(Aquitaine)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본당 사제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은수생활에 이끌리어 오베르베셀 근방의 라인 강변에 은둔소를 지었다.

그는 이곳에서 참으로 고요한 생활을 하였고, 그의 성덕이 높아짐에 따라 주변에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인근에 사는 농부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의 성덕과 인내심 그리고 놀라운 기적들이 수 없이 일어나,

한시도 조용히 생활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던 일부 성직자들이 무고로 인해 그 지방의 주교에게 소환되었지만,

곧 그의 결백이 밝혀진 일도 있었다.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왕인 지그베르트 1세(Sigebert I)는 그의 덕행에 큰 감명을 받았다.

후일 그의 수도원은 순례의 요충지가 되었다.

 

도미니카(Dominica)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303년?

 

성녀 도미니카는 서방교회에 널리 알려진 성녀이지만 정확한 생애는 잘 모른다.

다만 로마 순교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을 뿐이다.

“캄파니아에는 동정 순교자인 성녀 도미니카가 있다.

도미니카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우상의 파괴자였다.

따라서 그녀는 맹수에게 던져지는 형을 받았다.

그런데 그녀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으므로,

결국은 참수되어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성녀의 유해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의 트로페아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 관리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에서 태어났고,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고통을 당하였고, 그녀의 시신은 천사들에 의하여 트로페아로 옮겨졌다고 한다.

 

둘치시모(Dulcissimus)

신분 : 순교자

연대 : 90년 ?

 

성 로물루스(Romulus)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에 의하여 개종한 로마인 제자로 이탈리아 피에졸레(Fiesole)의 초대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성 카리시무스(Carissimus)와 둘치시무스(또는 둘치시모) 그리고 크레스켄티우스(Crescentius)와 더불어 순교하였다.

로물루스는 원래 루체르나(Lucerna)의 서자로서 유기되었으나 이리가 그를 길렀다고 한다.

 

로물로(Romulus)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90년경 ?

지역 : 피에졸레(Fiesole)

 

성 로물루스(또는 로물로)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에 의하여

개종한 로마인 제자로 이탈리아 피에졸레의 초대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성 카리시무스(Carissimus)와 둘치시무스(Dulcissimus) 그리고 크레스켄티우스(Crescentius)와 더불어 순교하였다.

로물루스는 원래 루체르나(Lucerna)의 서자로서 유기되었으나 이리가 그를 길렀다고 한다.

 

모드엔나(Modwenna)

신분 : 동정녀

연대 : 900년

지역 : 폴스위스

 

에다나(Edana) 또는 메다나(Medana)로도 불리는 성녀 모드엔나는 버톤-온-트렌토 등지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는데,

트렌토(Trento)의 안드레시라 부르는 섬에서 은수자로 생활한 듯 보인다.

한때 그녀는 킬리아비(Killeavy) 수도원의 초대원장을 지냈을 것으로 믿어지나,

그녀의 생애를 밝힐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다만 이런 노래가 전해 내려올 뿐이다.

“쿠일린 산의 모드엔나는 아름다운 기둥이네. 그녀는 승리를 얻었고 승리를 선물로 바쳤네.

그녀는 위대한 마리아 어머니의 딸이 되었네.”

 

섹스부르가(Sexburga)

신분 : 수녀원장, 과부

연대 : 699년

지역 ; 엘리

 

이스트 앵글리아의 국왕 안나(Anna)의 딸이며 성녀 에텔드레다(Etheldreda),

 에텔부르가(Ethelburga), 휘트부르가(Withburga) 그리고 성 에르콘발두스(Erconvaldus)와 형제지간인

성녀 섹스부르가는 640년에 켄트(Kent)의 왕 에르콘베르투스(Erconbertus)와 결혼하여

성녀 에르멘질다(Ermengilda)와 에르콘고타(Ercongota)를 낳았으나,

만 4년 뒤에 남편과 사별하게 되자 셔피 섬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녀가 되었다.

그 후 그녀는 엘리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던 중에 사망하였다.

 

시조에스(Sisoes)

신분 ; 은수자

연대 : 429년

지역 : 이집트

 

성 안토니우스(Antonius) 이후 이집트 사막에 살던 은수자들 가운데 가장 빛나는 분이 곧 성 시소에스이다.

이집트 태생인 그는 젊어서 세상을 등지고 스케테(Skete) 사막으로 은거하였다.

나일 강과 거의 인접한 지역까지 들어가서 성 안토니우스가 서거하신 산 속에 은신하였다.

그는 여기서 저 위대한 선배 은수자의 큰 덕을 본받으려는 일념으로 끝까지 항구하여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다.

그는 늘 안토니우스 성인이 자신에게 말씀하시고 지도하시는 듯 현장감 있는 생활을 하였던 만큼 그의 엄격한 보속행위,

철저한 침묵 그리고 열렬한 기도 정신은 인근 은둔소에 널리 알려졌다.

악습을 이기려는 그의 노력은 처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제자들이 과오를 저지르면 꾸짖거나 타이르지 않고 인내와 온화함으로써 대하여 큰 감명을 주곤 하였다.

한번은 어느 은수자가 그를 찾아와서 “스승님, 저는 주님 면전에 있기를 항상 소원하고 있습니다.

” 하고 입을 열자, 그는 “모든 창조물 앞에 겸허하게 엎드리는 것이 더 좋을 것이오. 그것도 아주 겸손하게…”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는 임종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보라, 저기 우리 주님께서 내게로 오시다니!” 그는 성 안토니우스 산에서 적어도 62년간을 은수하다가 429년경에 선종하였다.

 

카리시모(Carissimus)

신분 : 순교자

연대 : 90년

 

성 로물루스(Romulus)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에 의하여 개종한 로마인 제자로

이탈리아 피에졸레(Fiesole)의 초대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성 카리시무스(또는 카리시모)와 둘치시무스(Dulcissimus) 그리고 크레스켄티우스(Crescentius)와 더불어 순교하였다.

로물루스는 원래 루체르나(Lucerna)의 서자로서 유기되었으나 이리가 그를 길렀다고 한다.

 

크레센시오(Crescentius)

신분 : 순교자

연대 : 90년

 

성 로물루스(Romulus)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에 의하여 개종한 로마인 제자로

이탈리아 피에졸레(Fiesole)의 초대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성 카리시무스(Carissimus)와 둘치시무스(Dulcissimus) 그리고 크레스켄티우스(또는 크레센시오)와 더불어 순교하였다.

로물루스는 원래 루체르나(Lucerna)의 서자로서 유기되었으나 이리가 그를 길렀다고 한다.

 

토마스 알필드(Thomas Alfield) 

신분 : 순교자(복자)

연대 : 1585년

 

토마스 알필드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글로스터(Gloucester)에서 태어났고,

 이튼(Eton)과 케임브리지(Cambridge)의 킹스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프로테스탄트로 성장했기 때문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위하여 1576년에 프랑스의 두에(Douai)로 갔다.

그는 여기서 사제 수업을 받고 1581년에 랭스(Reims)에서 사제로 서품된 후

즉시 성 에드문두스 캠피언(Edmundus Campion)과 더불어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

그러나 1582년 봄에 그는 이미 런던탑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큰 활동은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585년 7월 6일에 런던의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출처 : 가록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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