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발드(Grimbald)◀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903년
지역 : 윈체스터
성 그림발드는 플랑드르(Flandre)의 생토메르(Saint Omer) 태생으로 생베르탱(Saint-Bertin)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잉글랜드(England)의 국왕 앨프레드(Alfred)를 만났는데,
왕이 그의 높은 인격을 보고 잉글랜드로 초청하므로 885년에 영국으로 건너갔다.
국왕은 그를 캔터베리의 주교로 임명하고자 하였으나 끝끝내 사양하였다.
이리하여 왕의 아들인 에드워드 왕자가 윈체스터에 뉴민스터(New Minster) 수도원을 짓고
그림발드를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매우 훌륭한 성악가였다는 설이 있다.
▶라이문도(Raymund)◀
신분 : 자선자
연대 : 1118년
지역 ; 툴루즈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난 성 라이문두스(Raymundus, 또는 라이문도)는
그곳의 성 세르닌 성당에 봉사하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는 이 성당에서 합창대원으로 활약하다가 결혼하였으나, 곧 아내와 사별하였다.
그 후 그는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하고 가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참다운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실시하는 자선단체를 만들었다.
그는 이 자선행위를 유대인들에게도 베풀어 말썽을 빚기도 했으며,
가난한 성직자들을 돕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성 세르닌 성당의 건축이다
▶순니바(7.8)◀
신분 : 동정녀
연대 : 10세기?
지역 : 노르웨이
아일랜드 왕의 딸인 성녀 순니바는 결혼 강요를 피하기 위하여
일단의 수행원들과 함께 배를 탔으나 배의 키나 선원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 노르웨이 연안의 셀지 섬에 상륙한 뒤 동굴 속에서 생활하였다.
이곳에서 그 일행들은 기도와 고행으로 일생을 살다가 모두 운명하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올라프 트리그야손 왕은 수색대와 더불어 주교를 파견하여 동굴을 파헤치니,
이때까지 성녀 순니바의 시체는 썩지 않고 생전의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고 한다.
왕은 이들을 위하여 성당을 세워주고, 유해들은 베르겐(Bergen) 대성당으로 운구하여 안장하였다.
또 셀지 섬 주민들은 지금까지도 순니바를 공경하고 있다. 순니파(Sunnifa)로도 불린다.
▶아우스피치오(7.8)◀
신분 : 주교
연대 : 475년
지역 : 톨
성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Sidonius Apollinaris, 8월 21일)는 성 아우스피키우스(또는 아우스피치오)가 프랑스 툴의 주교였다고 기록하였다.
▶아우스피치오(7.8)◀
신분 : 주교
연대 : 130년경
지역 : 트리어
성 아우스피키우스(또는 아우스피치오)는 마테르누스(Maternus) 계승하여 독일 트리어 교구의 제4대 주교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같은 날 기념하는 프랑스 툴(Toul)의 주교 성 아우스피키우스와 동일인일 수 있다.
▶아퀼라(Aquila)◀
신분 : 순교자
연대 : 1세기경
유대인으로 천막 만드는 일을 했던 성 아퀼라(Aquila)와
아내 성녀 프리스킬라(Priscilla)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 거주 금지령을 내리게 됨에 따라 로마(Rome)를 떠나야 했다(사도 18,2).
그들은 코린토스(Corinthos)로 가서 그곳에는 복음을 선포하던
사도 바오로(Paulus)와 친분을 갖게 되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그들은 바오로를 따라 에페수스(Ephesus)까지 갔다가 그곳에 머물렀다.
바오로는 그들과 함께 자신의 제 3차 전교 여행을 하였으며,
그들이 로마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들의 집을 교회로 사용케 하고 에페수스로 갔다.
그들은 로마 순교록을 보면 소아시아에서 순교하였다고 기록되었으나,
전설에 의하면 로마에서 장렬하게 순교하였다고 전해온다.
▶칠리아노(7.8)◀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689년경
지역 : 뷔르츠부르크
아일랜드 수도자이던 성 킬리아누스(또는 또는 칠리아노)는 주교로 축성된 후
11명의 동료들과 함께 로마(Rome)로 가서
교황 코논(Conon)으로부터 독일의 프랑코니아(Franconia, 바덴과 바이에른) 지방의 복음 선포에 관한 책임을 맡았다.
그는 능력 있고 열성적인 협조자 성 콜로만누스(Colomannus) 신부와
성 토트나누스(Totnanus) 부제와 함께 선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성 킬리아누스와 동료들은 순교하였다고 하는데 그 확실한 근거는 부족하다.
그는 킬리안(Kilian)으로도 불린다.
▶콜로만노(Colomannus)◀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689년
아일랜드 수도자이던 성 킬리아누스(Chilianus)는 주교로 축성된 후
11명의 동료들과 함께 로마(Rome)로 가서 교황 코논(Conon)으로부터
독일의 프랑코니아(Franconia, 바덴과 바이에른) 지방의 복음 선포에 관한 책임을 맡았다.
그는 능력 있고 열성적인 협조자
성 콜로만누스(또는 콜로만노) 신부와 토트나누스(Totnanus) 부제와 함께 선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성 킬리아누스와 동료들은 순교하였다고 하는데 그 확실한 근거는 부족하다. 그는 콜만(Colman)으로도 불린다.
▶토트나노(Totnanus)◀

신분 : 부제, 순교자
연대 : 689년
아일랜드 수도자이던 성 킬리아누스(Chilianus)는 주교로 축성된 후
11명의 동료들과 함께 로마(Rome)로 가서 교황 코논(Conon)으로부터
독일의 프랑코니아(Franconia, 바덴과 바이에른) 지방의 복음 선포에 관한 책임을 맡았다.
그는 능력 있고 열성적인 협조자 성 콜로만누스(Colomannus) 신부와 토트나누스(또는 토트나노) 부제와 함께
선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성 킬리아누스와 동료들은 순교하였다고 하는데 그 확실한 근거는 부족하다. 그는 토트난(Totnan)으로도 불린다.
▶프로코피오(Procopius)◀

신분 : 순교자
연대 : 303년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성 프로코피우스(또는 프로코피오)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스키토폴리스(Scytopolis)에서 살았으며,
교회의 지도자이자 구마자였으며 시리아어 통역사였다고 한다.
그는 매우 덕스럽고 겸손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그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카이사레아(Caesarea)로 이송되어 신전에 희생 제물을 바치라는 요구에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주인을 모시는 것은 옳지 못하고,
오직 한 분의 왕이신 주님만 섬겨야 합니다.
” 이 말이 황제를 격노케 하여 그는 그 자리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 지방의 첫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프리스킬라(7.8)◀
신분 : 사도들의 제자, 순교자
연대 : 1세기
유대인으로 천막 만드는 일을 했던 성 아퀼라(Aquila)와 그의 아내
성녀 프리스킬라(Priscilla)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 거주 금지령을 내리게 됨에 따라
로마(Rome)를 떠나야 했다(사도 18,2).
그들은 코린토스(Corinthos)로 가서 그곳에는 복음을 선포하던
사도 바오로(Paulus)와 친분을 갖게 되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그들은 바오로를 따라 에페수스(Ephesus)까지 갔다가 그곳에 머물렀다.
바오로는 그들과 함께 자신의 제 3차 전교 여행을 하였으며,
그들이 로마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들의 집을 교회로 사용케 하고 에페수스로 갔다.
그들은 로마 순교록을 보면 소아시아에서 순교하였다고 기록되었으나,
전설에 의하면 로마에서 장렬하게 순교하였다고 전해온다.
▶하드리아노 3세(Hadrian III)◀
신분 : 교황
연대 : 885년
성 하드리아노 3세(Hadrianus III, 또는 하드리아노) 교황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그가 성인으로 공경을 받는 것보다는 로마(Rome)의 심각한 기근을 해결한 역사적인 인물로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884년 5월 17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포르토(Porto)의 주교 포르모수스(Formosus)가 주도하는 로마의 귀족당에 대항하였다.
그는 찰스 황제의 승계 문제 때문에 황제의 초청으로 독일 보름스(Worms)로 가던 중에 사망하였다.
▶하드리아노 포테스큐(Hadrian Fortescue)◀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476-1539년
영국 잉글랜드(England)의 펀스본(Punsborne)에서 태어난
하드리아누스 포테스큐(Hadrianus Fortescue, 또는 하드리아노)는
잉글랜드 데번셔(Devonshire) 가문 출신으로 앤불린(Anne Boleyn)과는 사촌간이다.
그는 두 번이나 결혼하였는데,
첫 번째는 앤 스토놀과 결혼하였으나 12년 후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앤 레드와 재혼하였다.
그는 전처에게서 두 딸을, 후처에게서 세 아들을 두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도미니코회 3회원이 되었고,
궁중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바스(Bath)의 기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으며,
두 차례나 프랑스와의 전투에 참가했고,
캐서린 왕비가 칼레스로 여행할 때에는 수행원으로 그리고 앤불린의 대관식에는 귀빈으로 참석하였다.
그러나 신심이 굳었던 그는 헨리 8세의 이혼과 재혼을 반박하다가
다음 해 봄에 체포되어 1539년 2월 런던탑에 갇혔다.
그는 끝까지 국왕의 수장령을 거부하였다.
그래서 그는 런던의 타워 힐에서 토마스 딘글리(Thomas Dinglay)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는 1895년 5월 13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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