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타보(Nestabus)◀
▶네스토르(Nestor)◀
▶에우세비오(Eusebius)◀
▶제노(Zeno)◀
신분 : 순교자
연대 : 362년
지역 : 가자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가 통치할 때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네스타부스(또는 네스타보), 제노(Zeno) 그리고 다른 신자 3명이 팔레스티나(Palestina) 가자 지방의 이방인 신전 파괴 사건과 관련되어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받았다. 폭도들은 원형 경기장에 모여 성소 파괴자의 처벌을 요구하였다. 이어서 그들은 대군중을 규합하여 마치 난리나 난 듯이 난동을 부리면서 감옥 문을 때려 부수고, 에우세비우스, 네스타부스, 제노를 끌어내어 돌과 막대기로 닥치는 대로 때리며 자백을 강요하였다. 위의 세 분은 참으로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길가에 버려졌다. 두개골이 깨어지는 등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도 부족하여 그들은 횃불을 밝혀들고 시체를 태웠다.
그날 밤 어느 부인이 몰래 치명자들의 유품을 골라내어, 또 다른 제노라는 사람에게 건네주고 마후마로 도망치게 하였다. 그는 이 유해를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통치 때까지 잘 간직하였고, 나중에 주교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성 에우세비우스, 네스타부스, 제노 외의 다른 순교자 3명 중의 한 명이 성 네스토르(Nestor)로 밝혀졌다. 네스토르는 폭도화된 그 군중들이 죽은 줄 알고 길가에 버렸는데, 후일 주교가 된 제노가 그를 집으로 데려가 보니 살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을 넘기기 못하고 후유증으로 운명하였다.
▶네오테리오(Neoterius)◀
▶암몬(Ammon)◀
▶테오필로(Theophilus)◀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알렉산드리아
성 암몬(Ammon),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 성 네오테리우스(또는 네오테리오)를 비롯한 25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모두 알려졌지만, 순교 날짜나 다른 정보는 전해지지 않았다.
▶디모테오(Timothy)◀
▶파우스토(Faustus)◀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티모테우스(Timotheus, 또는 디모테오)와 성 파우스투스(Faustus)는 시리아(Syria)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디시보드(Disibod)◀
신분 : 주교
연대 : 674년
지역 : 빙엔
성 디시보드는 아일랜드 사람으로 자기 고향에서 주교로 봉직하였다. 그는 매우 호소력을 지닌 설교가이자 사도였으며, 신도들의 신심을 뜨겁게 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는 7세기 중엽에 아일랜드를 떠나 독일 선교에 나섰다. 그는 빈엔 근교 나헤 계곡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이 나중에 유명한 디센베르그 수도원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여기서 인근 주민들을 사목하면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세르지오 1세(Sergius I)◀

신분 : 교황
연대 : 701년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 살던 어느 상인의 아들인 성 세르기우스(또는 세르지오)는 이탈리아의 팔레르모(Palermo)에서 태어났고, 로마에서 교육을 받은 후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687년 12월 15일에 교황 코논을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의 교황 선출에는 잡음이 많았고, 또 그가 트룰라눔에서 개최한 공의회 칙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을 때 유스티니아노 황제와 위험스런 논쟁에 말려들었다. 만일 세르기우스가 이 칙서를 인정하게 되면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와 대등한 교회 구조상의 위치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황제는 자카리아(Zacharias)란 심복을 로마로 파견하여 교황을 체포해 오도록 하였으나, 로마 시민들이 단결하여 이를 저지하고 자카리아를 축출하였다. 이 사건은 황제가 죽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689년 세르기우스는 웨식스(Wessex)의 왕인 체드왈라에게 세례를 주었고, 695년에는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에게 주교품을 주어 영국 선교와 독일 그리고 프리슬란트(Friesland)의 선교를 격려하였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세르기우스 교황은 직접 로마에 있던 음악학교(스콜라 칸토룸)를 다니면서 전례 음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미사 중에 ‘하느님의 어린 양’(아뉴스 데이)을 노래하도록 명하였다.
▶에텔부르가(Ethelburga)◀ (왕비)
▶이나(Ina)◀ (왕)
신분 :
연대 : 727-730년
지역 : 웨식스
성 이나(Ina)는 웨식스의 앵글로 색슨 왕으로 말썽꾸러기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인 성녀 에텔부르가는 왕의 권력과 소유를 올바로 사용하도록 그를 인도하였다. 그래서 성 이나는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수도원을 복구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또한 그는 726년에 그의 아내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기 위해 왕위를 양위하였다. 그리고 그 부부는 로마(Rome)에서 경건함과 참회 속에서 그들의 삶을 마감하였다.
▶코르비니아노(Corbinian)◀
신분 : 주교, 선교사
연대 : 670-725년
지역 : 프라이징
프랑스 샤트르 태생인 성 코르비니아누스(Corbinianus, 또는 코르비니아노)는 세례명이 발데지소(Waldegiso)였는데 그의 어머니가 코르비니아누스로 개명하였다고 하나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14년 동안이나 샤트르(Chatres)에서 독수자 생활을 하였는데 수많은 제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그는 수도 공동체를 세웠다. 그 다음에 코르비니아누스는 로마(Rome)로 갔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II)는 그를 독일의 선교사로 파견하였는데 아마도 그 즈음에 주교로 축성된 듯하다. 그는 바이에른(Bayern) 지방의 프라이징으로 파견되어 열렬한 선교사로서 활약하던 중 자신의 후원자이던 그리모알드(Grimoald) 공작의 결혼을 공적으로 반대하게 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왜냐하면 공작이 자기 동생의 미망인인 빌트루다와 결혼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르비니아누스는 특히 그 미망인의 원한을 사게 되었고, 그녀가 자신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발견하자마자 미란으로 피신하였다. 그는 여기서 그리모알드가 전투에서 희생될 때까지 머물렀다. 그 후 코르비니아누스는 바이에른 지방에서 선교사로서 활동하며 여생을 보냈고 오베르마이스(Obermais)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의 상징은 곰인데, 이 곰은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이 쓴 가면이었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성인축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9월 9일 성인들 (0) | 2017.09.10 |
|---|---|
| 9월 9일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0) | 2017.09.10 |
|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0) | 2017.09.10 |
| 9월 8일 빈첸시오회 창설자 성 프레데릭 오자남 (0) | 2017.09.10 |
| 9월 7일 성인들 (0) | 2017.09.07 |